성현도 넘어서지 못한 것

수레 밀고 북쪽 상동문(上東門)으로 가니
멀리 성 북쪽에 무덤들이 보이는구나.
백양나무는 어찌나 쓸쓸한지!
넓은 길 양쪽에는 소나무 잣나무 늘어섰구나.

그 아래에 오래 전에 죽은 이 있나니
캄캄하게 기나긴 밤을 맞았구나.
황천 아래에서 깊이 잠들어
천 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는구나.

세월은 거침없이 흐르고
인간의 수명은 아침이슬 같구나.
인생은 나그네 길처럼 순식간이라
수명은 쇠나 돌처럼 단단하지 않지.

예로부터 지금까지 번갈아 보내나니
성현이라도 그것을 초월한 이는 없었지.
복식(服食)으로 신선의 길을 추구하지만
대부분 약물에 몸만 망쳤을 뿐.

차라리 좋은 술 마시고
알록달록 비단옷 입고 즐기는 게 낫지!

 

驅車上東門, 遙望北郭墓.
白楊何蕭蕭, 松柏夾廣路.

下有陳死人, 杳杳卽長暮.
潛寐黄泉下, 千載不覺寤.

浩浩陰陽移, 年命如朝露.
人生忽如寄, 壽無金石固.

萬嵗更相送, 賢聖莫能度.
服食求神仙, 多爲藥所誤.

不如飲美酒, 被服紈與素.

이것은 유명한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 가운데 하나인 〈구거상동문(驅車上東門)〉이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다듬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 시가 완성된 때는 대개 동한(東漢) 말엽으로 보고 있다. 당시는 정치적으로도 대단히 혼란하고 환관(宦官)의 전횡 속에서 관료들의 부패도 극에 달해 있었다. 민생은 이미 황건기의(黃巾起義)가 임박했을 정도로 절망적인 파탄 상태에 빠져 있었고, 실의에 찬 지식인들도 대부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시기였다. 낙양(洛陽) 북쪽의 공동묘지인 북망산(北邙山)을 보며 노래한 이 작품은 이런 상황이 만들어낸 비관적인 인생관을 극단적으로 표출한다.

거침없이 흐르는 세월 앞에 아침이슬 같은 수명을 가진 인간의 삶은 여관을 들르듯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나그네 같다. 물론 천지만물을 ‘일기(一炁)’의 변화 과정으로 간주하는 도가에서는 기가 모이면 태어나서 기가 흩어지면 죽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열자(列子)에서는 “삶과 죽음의 관계는 한 번 갔다가 한 번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은 이가 저기 살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列子》 〈天瑞〉: 死之與生, 一往一反, 故死於是者, 安知不生於彼.)”라고 했고, 장자(莊子)도 “삶이란 죽음과 같은 무리이고 죽음은 삶의 시작이니, 뉘라서 그 벼리를 알겠는가?(《莊子》 〈知北遊〉: 生也死之徒, 死也生之始, 孰知其紀.)”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물(齊物)’의 세계관을 모르거나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평범한 이들에게 짧은 인생이 아쉽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심지어 ‘성인’조차도 그 한계와 제약을 ‘헤아려 넘어서지[度=渡]’ 못했다. 그러니 몸만 망치는 저 어리석은 ‘복식(服食)’ 행위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한나라 때에 ‘복식’ 특히 ‘오석산(五石散)’──대개 종유석(鐘乳石)과 유황(硫黃), 백석영(白石英), 자석영(紫石英), 적석지(赤石脂)라는 5가지 광물을 기본으로 하여 다른 몇 가지 약재를 배합한 것으로 값이 대단히 비쌌다고 알려져 있음──이라는 독극물에 가까운 약을 먹는 것을 유행시킨 사람으로 흔히 동한 명제(明帝) 때의 하안(何晏: ?~249)을 꼽는다. 얼굴이 마치 분을 바른 것처럼 새하얗고 잘 생겼다고 알려진 그는 이것을 복용하고도 당장 중독되어 죽는 것을 막아주는 ‘산발(散發)’이라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즉 이 약을 먹은 후에 즉시 산보를 해서 약의 독기를 발산하는 ‘행산(行散)’을 하고, 가벼운 옷차림에 찬 음식을 먹고 냉수로 샤워를 해야 했다. 이 때문에 오석산은 ‘한식산(寒食散)’이라고도 불렸다. 다만 술의 경우에는 굳이 차가운 것을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고 한다. 이런 현상들은 오석산을 먹으면 열이 나고 피부가 약해지기 때문에 두텁고 끼이는 옷보다는 얇고 헐렁한 옷을 입어야 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는데, 루쉰[魯迅]은 진(晉)나라 때 사람들이 가볍고 헐렁한 옷차림이 많은 이유가 당시 사람들의 소탈하고 고상한 인격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런 약을 먹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행동이었다고 한껏 비웃은 바 있다.(魯迅, 〈魏晉風度及文章與藥及酒之關係〉──九月間在廣州夏期學術演講會의 강의 원고)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그 약을 먹으면 얼굴에 발그레한 혈색이 돌고 (땀 때문에) 피부가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것처럼 보였을 테고, 일시적이긴 하지만 몸에 활력이 생기는 듯한 착각도 들었을 테니, 그야말로 젊음과 건강을 가져다주는 ‘주안(朱顔)’의 명약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피부가 약해지니 양말과 신을 신기에도 불편하여 맨발로 나막신을 신어야 했고, 옷도 새 옷보다는 헌 옷을 입고 자주 빨지도 못해서 이[虱]가 득실거렸다고 한다. 이런 정도는 아니었지만 ‘서성(書聖)’으로 유명한 왕희지(王羲之: 303?~361?)와 그의 아들 왕헌지(王獻之: 344~386)의 경우에도 ‘복식’으로 인해 생긴 갖가지 합병증으로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 폐해가 청나라 때의 아편에 못지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복식’의 폐해가 이미 〈구거상동문〉이 완성되던 동한 말엽에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소위 ‘지식인’들이 저지른 황당한 짓은 거의 부조리한 희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 노래의 작자(들)는 혼란한 현실과 덧없는 인생에 대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차라리 술을 마시며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즐기는 게 낫겠다고 선언한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의 세계관이 기독교 세계에 비해서 대단히 세속적 혹은 현실적이라고 여겨지고 있는데, 그런 ‘세속성’ 혹은 ‘현실성’이 이런 자포자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현실적 삶에 내재된 절망적 씁쓸함은 저 특정한 시기의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사실상 전 인류, 아니 모든 생명체가 타고난 원죄가 아닐까? 어떤 역사적, 자연적, 물리적, 사회경제적, 정치적 상황에서도 태어난 이상 생명체는 살아야 하고, 나아가 본능적으로 그 목숨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의 삶’에 대한 철학──구체적으로 존재론──적인 성찰이 없이도, 그 삶의 가치가 무겁거나 가볍거나 상관없이 목숨은 모든 생명체들에게 공히 소중한 것이다. 다만 인간은 그 소중한 목숨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이성과 지혜를 가지고 있고 또 파멸하고 죽일 수 있는 잔인함과 냉혹함도 지니고 있음으로 인해 목숨의 존재와 소멸에 관한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불편한 삶’ 또한 이러한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능력이 만들어낸 불쾌한 현실이다.

그래도 양주(楊朱)가 강조하는 ‘제물’은 오히려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하는 듯하다.

십년을 살아도 죽고 백년을 살아도 죽는다. 어진 성인도 죽고 흉악한 바보도 죽는다. 살아서 요‧순이라도 죽으면 썩은 해골이요, 살아서 걸왕(桀王)이나 주왕(紂王) 같은 폭군일지라도 죽으면 썩은 해골이다. 똑같이 썩은 해골이니 그 차이를 누가 알겠는가?

十年亦死, 百年亦死. 仁聖亦死, 凶愚亦死. 生則堯舜, 死則腐骨, 生則桀紂, 死則腐骨. 腐骨一矣, 孰知其異.

 

▲ 백운재 교수

[칼럼니스트 소개] 백운재(필명)교수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1999)를 취득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하늘을 나는 수레(2003),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2010), 전통시기 중국의 서사론(2004)등의 저서와 두보, 이하 등의 중국 시와 베이징(1997), 서유기(2004), 홍루몽(2012), 유림외사(2009), 양주화방록(2010)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칼럼문의 백운재 peking00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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