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마실 때 붉은 빛의 강렬함을, 풍부한 아로마와 부케를, 또 미세한 맛의 변화를 느끼기 위해 우리는 투명한 크리스탈 와인 글라스를 선택한다. 와인이 갖고 있는 고유의 스타일에 맞춰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 글라스, 부르고뉴 스타일의 와인 글라스 등으로 나뉘며, 크기가 크면 레드, 작으면 화이트에 와인을 따라 마신다. 와인을 따르고 잔을 보면 향을 맡기도 전에 어떤 향이 올라올지 기대된다. 또한 끊임없이 올라오는 스파클링 와인의 기포를 즐기기 위해 길쭉한 플루트(Flute)에 따라 마신다. 동시 다발성으로 와인의 기포가 올라오면 아쉬움이, 몇 열의 행군을 하듯 기포가 곧게 올라오면 맛을 보기도 전에 설렌다.

잔이란, 우리가 마시고자 하는 음료의 매력을 발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비어 헌터 이기중씨의 유럽맥주견문록을 보면 “모든 맥주에는 어울리는 전용 잔이 있다.”라고 하며 꼭 어울리는 잔에 따라 마셔야 그 본연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맥주는 맥주잔에 따르면 거품이 일어난다. 이 맥주 거품은 맥주가 직접 산소와 접촉하여 산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탄산이 적당히 방출되어 입맛에 알맞은 상태가 된다. 맥주 특유의 아름다운 색이나 기포의 생생한 모습, 거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라며 꼭 잔에 따라 맥주를 오감으로 즐겨야 한다고 했다.
 

▲ 물은 어떤 잔에 따라 마시느냐에 따라 섬세한 특징들이 잘 드러나기도,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사진=Jackson Springs>

그렇다면 물은 어떨까?

먼저, 물은 무색 무취다. 물은 색이 투명하다. 색을 즐기진 않지만 탄산수 같은 경우는 기포를 즐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워터글라스는 투명할수록 좋으며 탄산수냐 일반 스틸 워터냐에 따라서 적합한 잔의 모양이 다르다.

보통 와인글라스는 가운데가 볼록한 모양이고 림 부분이 좁다. 그 이유는 와인의 글라스 안에서 공기를 만나 확산하고 코가 닿는 림 쪽에 향을 모아주기 위함인데 향을 즐기는 와인과는 다르게 물은 향을 즐기진 않는다. 물론 테이스팅할 때엔 미묘한 향 차이를 위해 필요하겠지만, 마실 땐 거의 중요하지 않다.

향은 간혹 해양심층수에선 특유의 짠내가 슬금 올라오기도 하고, 광천수에서는 흙냄새가 나기도한다. 하지만 물에선 보통 짠내와 흙냄새를 즐기진 않는다. 오히려 마실 땐 그 미묘한 향이 음식에 방해를 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향을 담는 둥그런 모양은 와인에서만큼 필요하지 않다. 대신 맛을 볼 때 시원한 느낌이 코로도 전달이 되기 때문에 잔의 림 부분은 넓으면 좋다. 탄산수의 경우 기포가 터지는 느낌이 기분을 좋게 해주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마시기 전부터 청량감이 느껴진다.
 

▲ 워터글라스는 와인글라스처럼 별도 모양의 잔이 존재한다. 아직 크게 상용화되진 않았지만, 물에 따라 전용잔을 찾아 마시는 것도 큰 재미다. <사진=김하늘 워터소믈리에>

이렇기 때문에, 보통 테이스팅을 위해선 와인글라스에 서비스하고, 워터를 즐기기 위해선 워터 글라스가 존재한다.

그래서 명품 글라스 브랜드인 리델(Riedel)이나 잘토(Zalto), 슈피겔라우(Spiegelau), 보르미올리 로꼬(Bormioli Rocco) 등에서도 워터 전용 글라스를 출시하여 판매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프리미엄 워터 글라스라고해서 한 상품당 40 ~ 85불에 판매되고 있다. 우리가 평소에 5달러도 안하는 물을 마시기 위해서 85불이라고 하는 금액은 굉장히 부담스럽다. 워터 전용글라스는 20불 아래에서도 충분히 퀄리티 좋은 잔을 구매할 수 있다.
 

▲ 전세계의 다양한 프리미엄 워터들의 전용잔들 <사진=Nils Segers>

또한 각 워터 브랜드에서 나오는 추천하는 전용잔이 있다. 흔히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에서는 이런 전용 잔을 기획상품으로 묶어 출시하기도 하는데, 물도 마찬가지다. 각 회사에서 자신들의 물의 장점을 잘 살려 잔에 특징을 적용시킨다.

국내에서는 이런 프리미엄 워터 글라스가 많이 알려져있지 않고, 많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집이 취미인 애호가분들은 이런 글라스에 주목하셔도 좋을 것 같다.
 

▲ 김하늘 워터소믈리에

김하늘 워터소믈리에는? 2014년 제 4회 워터소믈리에 경기대회 우승자로 국가대표 워터소믈리에다. 2015년 5회 대회 땐 준우승을 차지하며 연속 입상했다. 다수의 매체와 인터뷰 및 칼럼연재로 ‘마시는 물의 중요성’과 ‘물 알고 마시기’에 관해 노력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하늘 skylin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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