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육포는 미국 음식인 줄 알았다. 육포란 아빠의 미국 출장 기념품이거나 미국 식료품점 코스트코 쇼핑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역사 시간에 몽고군 전투식량으로서의 육포를 배우고, 싱가포르 육포 브랜드 비첸향이 한국에 진출하며 육포가 미국 음식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나라 전통음식과는 연관 짓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오랫동안 육포를 만들어 왔다. 육포에 대해서는 삼국시대의 문헌에도 기록이 남아있으며, 폐백이나 잔칫상에 많이 올랐다.

▲ 인삼과 대추로 수놓아 개별 포장한 명인의 육포

육포는 특정 나라의 음식이라기보단, 음식을 장기 보관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계 각지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고기에 소금을 첨가하고 훈제를 하는 방법을 기본으로 해서, 지역에 따라 조금씩의 변형이 있다. (참고로 비첸향 육포는 엄밀히 말하면 육포가 아니다. 양념한 고기를 바짝 굽는 중국 푸젠성 지방의 전통 음식 '박과' 다.) 한국에도 여러 가지 육포 레시피가 있지만, 솜대리는 육포 전통식품명인 임화자님을 통해 한국의 육포를 체험해 보았다.

임화자 명인은 최대한 고기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법으로 육포를 만들고 있다. 여러 가지 향신료와 설탕을 쓴 시중의 육포와 달리, 고기 외에는 소금과 천초 두 가지 부재료만 사용한다. 천초는 잡내를 없애기 위해 추어탕 등에 사용하는 향신료인데 그나마도 잠깐 버무렸다 씻어낸다. 명인의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소고기 살코기를 포를 뜬 후, 소금과 천초에 2시간 절인다. 양념을 찬물에 한 번 씻어 내고 소금만 써서 다시 2시간 절인 후 이번에는 씻어내지 않고 살짝 물기만 말린다. 그리고 대나무로 지지대를 만들어 이 고기를 실에 꿰어 걸고, 아래 화로 두어 불을 피운다. 이때 지지대 주변을 천으로 막아 연기가 새지 않게 하고, 화로에는 솔잎을 넣어 육포에 솔향을 입힌다. 완성된 후에는 다듬이 돌로 눌러 포를 평평하게 편다. 지금은 냉장고에 육포를 보관하지만, 예전에는 한지와 광목천에 이중으로 싸서 소금독에 묻어 보관했다. 육포는 흔히 결대로 찢어 먹지만, 명인은 결 반대 방향으로 저며 참기름을 발라 구워 먹는다.

▲ 고기는 숯과 솔잎을 넣은 화로의 연기로 훈연한다 (사진출처: 식품명인체험홍보관 블로그)

솜대리를 비롯한 체험수업 참가자들도 같은 방법으로 명인의 육포를 먹어보았다. 명인이 만들어 온 육포의 맛은 이제까지 먹은 어떤 육포와도 달랐다. 시중의 육포는 입이 심심할 때 먹는 가벼운 간식 같다면, 명인의 육포는 두께감과 육향 때문에 더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진한 육향은 야생의 맛이 이런 걸까 생각하게 했다. 그렇다고 거북한 향이라기 보단 잘 숙성되어 치즈 향이 나는 드라이에이징 고기가 연상되는 정도였다. 명인의 육포를 저미고 참기름을 발라 굽는 색다른 서빙 방법은 일반 육포보다 더 무거운 식감과 향의 이 육포에 딱 맞았다.

▲ 육포를 결 반대로 저며내면, 씹기도 더 편해지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고기 본연의 맛을 살리는데 치중한 가공 방법인만큼 재료의 질이 중요하다. 명인은 전남 함평에서 4대 째 육포를 만들고 있다. 함평은 소고기로 유명한 지방 중 하나로, 1903년부터 큰 우시장이 운영되어 왔는데 전남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일반인 몇 명을 대상으로 한 체험일 뿐인데 명인은 함평 우시장에서 통고기를 떼다 서울까지 들고 왔다. 육포는 무엇보다도 고기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홍빛의 고기는 누가 보기에도 뛰어났다. 이렇게 좋은 재료라면, 고기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는 조리법이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육포는 무엇보다도 좋은 고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귀한 우리 육포는 여전히 폐백음식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다. 장식이 많이 들어가는 폐백 음식 특성에 맞추어 대추와 인삼으로 수를 놓아 판매한다. 모양이 예쁜 데다 외국에도 육포가 있어 거부감이 없고 그 나라 육포와 비교하는 재미도 있으니 외국 손님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 체험은 농림식품부에서 운영하는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진행되었다. 매주 식품명인 혹은 그 전수자를 초청해 2시간 가량 전통식품에 대한 소개 및 간단한 체험을 제공한다. 토요일 프로그램도 자주 있어, 솜대리 같은 직장인이 전통식품을 체험하기에 적합하다. 프로그램 확인 및 예약은 해당 블로그에서 가능하다.

[솜대리는?] 먹기위해 사는 30대 직장인이다. 틈만 나면 먹고 요리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음식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식, 그 중에서도 전통식품에 대해 체험하고 공부해볼 예정이다. 이 칼럼은 익숙하고도 낯선 한국 전통식품에 대한 일반인 저자의 탐험기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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