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환 밥소믈리에

[칼럼니스트 박성환] 밥이란 쌀에 물을 넣고 가열하여 쌀 전분을 익히는 것으로 ‘쌀 전분의 호화’ 또는 ‘알파화’라 한다.

이것은 넣은 물이 쌀에 전부 흡수되는 밥 짓기 방법으로 가수량과 가열량의 적절한 조율이 중요하다. 이렇듯 밥은 쌀, 물, 불의 아주 단순하며 미묘한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주식이기에 쌀이 밥맛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우리는 음식을 먹는다. 고기는 어디 부위 어떤 등급인지를 따지고, 커피는 원두가 브라질 산토스인지, 콜롬비아 수프리모인지,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인지 골라서 마신다.

와인은 라벨 보는 방법까지 공부해서 샤또인지 도메인인지 품종은 까베르네쇼비뇽, 메를로, 피노누아인지를 가려서 마신다. 그리고 이제 이 정도 포도 품종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쌀은 아직도 경기미, 이천쌀이라고 말하는 수준이다.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국제 벼 연구소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약 9만여 종의 쌀이 보관되어 있다. 그 외 국가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벼 종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전 세계 수십만 종은 충분히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어떤 쌀들이 있을까? 우리도 무수히 많은 쌀 종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확인이 가능한 것은 국립종자원 국가품종목록에 등재된 품종으로 2015년 4월 기준, 총 292종이 있다. 292종이나 되는 품종 중 우선 국립종자원의 정부보급종 품종(총 22종)에 대해 알아보자.

벼를 구분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지만, 여기서는 수확 시기에 따라 조생종, 중생종, 중만생종으로 구분한다. 우선 조생종은 오대, 운광, 고시히카리가 있고 중생종은 삼덕, 하이아미, 맛드림, 대보가 있다.

가장 수확 시기가 늦은 중만생종으로는 새누리, 신동진, 칠보, 영호진미, 미품, 추청, 일품, 동진쌀, 진수미, 삼광, 일미, 대안, 호평, 황금누리, 새일미, 남평, 소다미가 있다.

▲ 벼 보급종에 대한 정부 보급종 종류 <사진=국립종자원>

다음은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밥쌀용 최고품질 벼가 있다.

총 13종으로 조생종에 운광, 중생종에는 고품, 하이아미가 있고, 중만생종에는 삼광, 호품, 칠보, 진수미, 영호진미, 미품, 수관, 대보, 현품, 해품이 있다.

얼마나 밥맛이 좋으면 밥쌀용 최고품질 벼로 선정될 수 있을까?

선정 기준은 쌀 수량, 쌀 외관 품질, 밥맛, 병충해 저항성 등 4가지 항목으로 그 내용은 쌀 수량은 500kg/10a 이상, 쌀 외관 품질은 추청벼 수준, 병충해 저항성은 2개 이상 복합 내병성, 밥맛은 일품벼 이상이 요구된다.

좀 더 세부적인 내용에는 가공특성, 도정수율, 관능 검정치 등의 내용이 있지만, 위 4가지 항목도 일반 소비자에겐 어려운 내용이다.

일반 소비자들이 추청벼의 외관과 일품벼의 밥맛을 알고 있을까? 소비자, 농민, 유통업자 모두를 위한 기준을 만들려다 보니 위와 같은 기준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다들 밥맛 하면 ‘경기미’ 그리고 ‘경기미’ 하면 ‘고시히카리’를 떠올리는데 왜 그럴까? 왜 ‘고시히카리 = 경기미’가 되었을까?

밥맛이 우수한 품종으로 ‘고시히카리’와 ‘히토메보레’가 있다. 이 두 품종 모두 일본 품종이지만 경기미의 품질향상을 위해 경기도에서 도입하여 국립종자원에 품종등록이 되어 있다. 이 말은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재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고시히카리’는 모두가 아는 품종이고, 다들 맛있다고 하는 품종인데 왜 이렇게 재배를 많이 하지 않을까? 정부보급종은 국립종자원에서 각 지역도민의 희망 품종을 신청받아 종자를 생산하여 자기 도에 우선으로 공급한다.

‘고시히카리’는 국립종자원 경기도지원에서만 생산하기에 경기도 지역에 우선으로 공급한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는 ‘고시히카리’ 보급종 종자를 신청할 수가 없다. 결국, 경기도만 생산하는 품종이 되었다.

‘히토메보레’ 품종 역시 경기도에서 도입하여 농가에 공급하였지만, 보급종을 생산하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히토메보레’ 품종은 국립종자원에서 관리하여 보급한 것이 아닌, 농가 간 자율교환으로 전국에 퍼져 재배되는 품종이다. 그래서 도입 이후 순도관리 등이 체계적이지 않아 ‘고시히카리’에 비해 종자의 순도를 보장받을 수 없다. 하지만 ‘히토메보레’ 품종의 쌀은 매우 밥맛이 좋다.

한 여름철 먹는 수박의 가격을 알고 있는가? 저렴한 것은 5,000원이면 살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네모난 수박이나 무등산 수박은 50만 원이나 한다. 가격 차이가 무려 100배나 된다.

그리고 열대 과일 파인애플은 저렴한 통조림의 경우 3~4,000원이면 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영국 ‘헬리건의 잃어버린 정원 파인애플’은 1개가 무려 190만 원이나 한다. 약 600배나 가격 차이가 난다.

쌀에서도 이런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품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환상적인 밥 맛이 나는!!

칼럼관련문의 박성환 밥소믈리에  honeyric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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