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잊었노라

훨훨 나는 삼청조야
아름다운 깃털 사랑스럽구나.
아침엔 서왕모 심부름하고
저녁이면 삼위산으로 돌아가지.
나는 이 새를 통해
서왕모께 말씀 전하고 싶구나.
이 세상에선 바라는 것 없고
그저 술과 더불어 오래도록 살고 싶노라고!

翩翩三靑鳥, 毛色奇可憐.
朝爲王母使, 暮歸三危山.
我欲因此鳥, 具向王母言.
在世無所須, 惟酒與長年.

이것은 도잠(陶潛: 352?~427, 자는 元亮)의 〈《산해경》을 읽고[讀山海經]〉라는 총 13수의 연작시 가운데 제5수이다. 이 연작시는 시인이 벼슬을 버리고 전원에 은거한 후 평온한 마음으로 드넓은 자연과 우주를 관조하며 그 안에 사는 인생의 의미를 사색한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첫 구절의 ‘삼청조’는 일반적인 인간 세상의 새가 아니다. 서왕모에게 편지 심부름을 보내야 하니 그것은 당연할 터인데, 《산해경(山海經)》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있다.

삼청조가 있는데 머리는 붉은 색에 눈은 까맣다. ‘대려’, 또는 ‘소려’, ‘청조’라고도 한다. 〈大荒西經〉: 有三靑鳥, 赤首黑目, 一名曰大鵹, 一名曰少鵹, 一名曰靑鳥.

또 서쪽으로 220리 떨오진 곳에 삼위산이 있는데 삼청조가 거기에 산다.
〈西山經〉:又西二百二十里, 曰三危之山, 三靑鳥居之.

속세의 부귀공명을 접고 전원에 들어가서 “밭도 갈고 씨도 뿌렸으니 이따금 마음에 드는 책이나 읽고, ……순식간에 우주를 다 둘러보니 즐겁지 않을 수 있으랴!(제1수: 旣耕亦已種, 時還讀我書……俯仰終宇宙, 不樂復何如)” 하는 삶을 즐기고 있는 그에게 이제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런데 그저 술이나 마시며 오래도록 살고 싶을 뿐이라는 화통한 선언 뒤에는 묘한 욕심이 숨어 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말을 굳이 삼청조를 통해 서왕모에게 전했기 때문인데, 그는 불로장생하는 신선 서왕모가 즐겨 마시는 술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연작시의 제3수는 다음과 같다.

옥대에 노을 속에 빼어나고
서왕모 고운 얼굴에 기쁨이 어렸구나.
천지와 함께 태어났으니
그 나이 얼마나 되었을까?
신령한 조화는 끝이 없고

사는 집은 어느 산 한 곳이 아니지.
거나하게 취해 새 노래 부르나니
어찌 속세의 말 흉내 내랴?

玉臺凌霞秀, 王母怡妙顔.
天地共俱生, 不知幾何年.
靈化無窮已, 館宇非一山.
高酣發新謠, 寧效俗中言.

그러니까 세상에 바랄 건 없고 “그저 술과 더불어 오래도록 살리라.[惟酒與長年]”라고 한 속셈은 서왕모에게 불로장생의 술을 좀 나눠달라는 바람을 내비치기 위한 수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도잠의 이 장난스러운 수작이 속세의 목숨에 연연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 듯하니, 그것은 〈여럿이 함께 주씨 집안 묘지의 측백나무 아래에 나들이를 가다[諸人共遊周家墓栢下]〉라는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늘은 날씨 좋아서
맑은 피리소리와 거문고 소리 어울리는구나.
저 잣나무 밑에 누운 사람 생각하니
어찌 즐겁게 놀지 않을 수 있나?
청아한 노래는 새로운 가락 퍼뜨리고
새로 빚은 초록빛 술에 얼굴이 꽃처럼 활짝 핀다.
내일 일이야 모르는 터지만
내 마음은 이미 시원하게 풀려 버렸다.

今日天氣佳, 淸吹與鳴彈.
感彼栢下人, 安得不爲歡.
淸歌散新聲, 綠酒開芳顔.
未知明日事, 余襟良已殫.

이 시 역시 그가 전원으로 돌아간 뒤에 지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진서(晉書)》에 기록된 도잠의 전기를 토대로 이날 주씨 집안의 묘지에 함께 나들이 갔던 이들을 추측해보면 시골 친척인 장야(張野) 및 자주 어울리던 양송령(羊松齡)과 방준(龐遵) 등 소수였던 듯하다. 주씨 집안의 무덤은 도잠의 조부 도간(陶侃: 259~334, 자는 士行 또는 士衡)의 친한 벗이었던 주방(周訪: 260~320, 자는 士達)의 집안 묘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역시 《진서》에 기록된 주방의 전기에 따르면 도간이 벼슬을 얻기 전에 어느 노인의 도움으로 부친의 무덤을 만들 명당자리를 얻게 되었고, 그 다음으로 좋은 명당자리를 친구인 주방에게 주었다고 했다. 이후 도간은 시중(侍中) 겸 태위(太尉)로서 형주(荊州)와 강주(江州) 두 곳의 자사(刺史)를 맡아 8주(州)의 모든 군사업무를 지휘했으며, 장사군공(長沙郡公)에 봉해졌다. 또 죽은 뒤에는 대사마(大司馬)에 추증되고 환(桓)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벗 주방은 안남장군(安南將軍) 겸 양주자사(梁州刺史)까지 올라 출세가도를 달렸다. 이후 주방은 자신의 딸을 도간의 아들과 결혼시켰고, 이후 3대에 걸쳐서 사돈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도잠 등이 그렇게 좋은 날씨에 풍악까지 울리며 나들이를 간 곳이 쓸쓸한 묘지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곳에서, 내일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상황[未知明日事]에서 풍악을 울리며 신나는 잔치를 벌이고 거나하게 취해 마음의 앙금을 ‘죄다 없앤[殫]’ 것은 예사로운 사고방식과 감정 구조를 가진 평범한 이로서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연민, 삶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모두 벗어 던진, 그야말로 ‘초탈의 경지’인 것이다. 자포자기의 절망과는 질적으로 다른 이런 경지는 도잠이 줄곧 추구하던 것이었으니, 〈연이은 비에 홀로 술을 마시다[連雨獨飮]〉라는 작품 또한 그것을 입증해준다.

천운에 따라 태어나면 죽어 돌아갈 날 있으리니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러했다고 하지.
세상에 적송자(赤松子)와 왕자교(王子喬)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대체 어디 있는가?
벗이 내게 술을 수면서
마시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했지.
첫 잔에 온갖 잡념이 멀리 사라지더니
큰 잔에 다시 마시니 갑자기 하늘도 잊어버렸지.
하늘이 어찌 여기를 떠났으랴?
천진한 자연에 맡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구름 속의 학은 훌륭한 날개 있어
팔방의 밖을 순식간에 다녀오지.
돌이켜보니 나는 이 ‘하나’를 품고
40년 동안 노력해왔구나.
육신은 이미 오래전에 변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있으니 또 무슨 말을 하랴?
 

運生會歸盡, 終古謂之然.
世間有松喬, 於今定何間.
故老贈余酒, 乃言飲得仙.
試酌百情遠, 重觴忽忘天.
天豈去此哉, 任眞無所先.
雲鶴有奇翼, 八表須臾還.
顧我抱兹獨, 僶俛四十年.
形骸久已化, 心在復何言.

도잠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적송자나 왕자교의 전설이나 신선이 되는 술 따위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나자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하늘이니 운명이니 하는 굴레를 잊어버린다. 그렇다고 자연의 법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 그것을 거스르거나 동화(同化)되겠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린 채 ‘천진(天眞)’의 자연에 그대로 ‘맡겨[任]’ 버린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위해 노력한 것이 벌써 40년이라, 육신은 늙어 변했으되 그 마음은 여전히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두강(杜康)은 문인과 무사, 지저분한 바보의 피를 섞어서 술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도잠의 음주는 술에 내재된 그 세 가지 주요 특징들마저 뛰어넘은 듯하다. 그리고 이런 초탈함은 총 20수의 연작시인 〈음주(飮酒)〉의 제5수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절정의 깨달음으로 승화되었다.

사람 사는 곳에 초가를 지었지만
수레와 말 시끄러운 소리 들리지 않는다.
여보시오, 어떻게 그럴 수 있소?

마음이 멀어지면 있는 곳도 저절로 치우치게 되지요.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 따고
느긋하게 남산을 바라본다.
산의 기운은 해가 저물어 아름답고

나는 새들 더불어 돌아간다.
이 속에 참 뜻이 들어 있지만
말로 표현하려니 어느새 언어를 잊었다.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辯已忘言.
 

▲ 백운재 교수

[칼럼니스트 소개] 백운재(필명)교수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1999)를 취득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하늘을 나는 수레(2003),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2010), 전통시기 중국의 서사론(2004)등의 저서와 두보, 이하 등의 중국 시와 베이징(1997), 서유기(2004), 홍루몽(2012), 유림외사(2009), 양주화방록(2010)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칼럼문의 백운재 peking00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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