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대리의 한식탐험] 바삭바삭 부각의 부각(浮刻)

승인2017.10.28 12:02:34

현재 시간 오후 세시. 아직 배가 고프진 않지만 약간 노곤하다. 당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글을 쓰려고 앉았다가 도로 일어나 머핀 하나를 꺼내들었다. 한식 칼럼을 쓰는 솜대리지만 간식은 보통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쿠키, 초콜릿 등을 먹는다. 모두 서양 음식이다. 여러 분야 중에서도 간식 분야에서 전통 음식의 열세는 특히 두드러진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건강 간식으로 이름을 알리는 우리 음식이 있다. 무료로 양질의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기로 유명한 구글 본사에 납품되는가 하면, 미국 최대의 유기농 식료품 체인 홀푸즈 전 지점에 대량 납품되고 있다. 바로 부각이다.

▲ 미국 수출용 부각

부각은 각종 해조류나 야채에 찹쌀 풀을 발라 말려 튀긴 것을 말한다. 특정한 음식보다는 하나의 조리 방법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는 재료는 지역과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다. 주로 사용하는 재료로는 김,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 등이 있고, 이외에도 연근, 우엉, 고추, 가죽나물, 깻송이 등의 야채도 사용된다. 부각은 손이 많이 가고 귀한 기름도 많이 들어서 고급 음식 취급을 받았다. 임금님 수라상에 반찬으로 올라갔으며, 일반 가정집에서는 한번 만들었다 하면 부각 부스러기조차 잘 모아두었다 비빔밥에 고명으로 쓰곤 했다. 사찰음식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채식을 하는 스님들에게 튀긴 음식인 부각은 좋은 열량 공급원이 되었다.

▲ 부각에는 이렇게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비트, 사과, 고구마, 우엉, 다시마 등

부각과 흔히 헷갈리는 용어로는 튀각과 자반이 있다. 다시마튀각이나 다시마부각, 김자반이나 김부각은 비슷한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튀각은 말린 해조류나 야채를 튀겼다는 점에서 부각과 같지만, 찹쌀 풀을 하지 않고 말린 재료 그대로 튀긴 것이다. 자반은 넓은 의미에서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짜게 조리한 밑반찬의 총칭이다. 고등어자반, 고추장 볶음 등이 다 포함될 수 있는데, 김자반은 김을 양념장에 발라 말려 구운 것으로 튀각이나 부각과는 조리법이 아예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부각은 고소한 찹쌀 풀이 붙어 있어 간식으로 먹기에 가장 좋은 것 같다.  
식품명인체험홍보관의 일반인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부각을 체험해보았다. 체험은 대한민국 식품명인 25호 오희숙 부각 명인이 진행했다. 오희숙 명인은 조선의 대표 명문 파평 윤 씨 종갓집 며느리로 집안 대대로 내려온 부각 만드는 법을 전승하고 있다. 시간 제약과 안전상의 이유로 체험은 명인이 부각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튀기는 과정을 시연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부각이 완성되는 과정은 마치 매미가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 같았다. 기나긴 준비를 걸쳐 찰나에 존재감을 발산하는 과정이 참 매력적이었다. 부각 만들기는 좋은 밑 재료와 볕이 좋은 날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특히 날이 좋지 않으면 부각이 잘 마르지 않아 튀기기가 어렵다. 부각은 가을에 많이 말리는데, 재료가 풍성하고 겨울 식재료 대비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지만, 볕이 좋아 부각 말리기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료의 특성에 따라 밑 준비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이미 말린 상태인 해조류는 그대로 쓰지만 연근같이 딱딱한 재료는 푹 삶아 썰고, 고추는 잘라서 씨를 빼고 소금물에 데쳐 그늘에 한나절쯤 말려 사용한다. 재료를 말리는 동안 다시마, 새우, 양파, 마늘 등으로 낸 육수에 찹쌀가루를 섞어 찹쌀 풀을 만든다. 이 찹쌀 풀을 재료에 바르는데, 솔을 쓰기보단 손가락 가득 풀을 묻혀 듬뿍 바른다. 원재료의 맛을 살리고 싶으면 조금만 바르기도 하지만, 찹쌀 풀을 듬뿍 바르면 부각이 더욱 바삭하고 고소해진다. 찹쌀 풀을 바른 재료를 뒤집어가며 말리는데 김부각은 9시간, 다시마부각은 14시간은 말려야 한다. 찹쌀 풀이 다 마르면 잘 밀봉해 보관해 두었다가 먹기 직전에 튀겨낸다. 180 ~ 200도의 기름에 부각을 넣으면 마른 찹쌀 풀이 부풀어 오르면서, 순식간에 꽃처럼 부각이 피어난다. 이처럼 정성과 기다림의 결과가 눈앞에서 멋지게 펼쳐지는 일이란 일상생활에선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부각이 피어나는 장면은 봐도 봐도 아름다웠고, 괜히 후련한 기분마저 들었다. 마지막 과정은 잘 튀겨낸 부각에 설탕과 소금을 섞어 내는 것이다. 갓 튀긴 음식은 뭐든 맛있는 법이긴 하지만, 방금 튀겨낸 부각은 정말 맛있었다. 얇게 준비해 말린 재료를 짧은 시간 안에 튀겨내서 느끼함이 적고 깔끔했다. 다양한 재료의 서로 다른 맛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러 가지 같은 튀긴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감자칩은 탄산음료나 맥주와 먹지 않으면 금방 물리는데, 부각은 끊임없이 먹을 수 있었다. 위험한 음식이다.

▲ 막 튀겨낸 부각

부각은 말려놓은 것을 먹기 직전에 튀겨낸다. 이런 조리법 덕에 부각은 저장 요리법으로 손꼽힌다. 고급 음식인 동시에 저장 음식이라니, 좋은 음식일수록 재료의 신선함을 강조하는 요즘의 시선에서 보면 조금 어색한 조합이다. 하지만 계절과 지리적 제약이 컸던 과거에는 흔한 조합이었다. 솜대리의 칼럼에서 다룬 주제만 해도 육포, 인삼정과 등이 있다. 다양한 저장 음식을 준비해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여유가 있는 집안이었던 것이다. 지금 태어난 우리는 사시사철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과, 과거의 지혜를 통해 만들어진 음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감자칩과 감자부각, 비슷한 듯하지만 이 두 음식의 신분 차이는 꽤나 크다. 이 두 가지를 같이 먹어보고 비교하면서 이 시대에 태어난 사치를 누려보는 건 어떨까.

[솜대리는?] 먹기 위해 사는 30대 직장인이다. 틈만 나면 먹고 요리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음식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식, 그중에서도 전통식품에 대해 체험하고 공부해볼 예정이다. 이 칼럼은 익숙하고도 낯선 한국 전통식품에 대한 일반인 저자의 탐험기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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