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궈롄푸 지음 | 홍상훈 옮김 | 발행일 2016. 4. 15 | 536페이지 | 25,000원 | 연암서가(031-9073010, yeonamseoga@naver.com)

고대 중국에서 문자는 줄곧 권력의 수단이자 일종의 아이콘으로 지배계층집단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화 권력으로 작용해 왔다. 그 집단의 전유물이자 고급언어로서 한자(漢字)의 서체는 서예가의 미적 취향이 반영된 도덕적 인품과 사상까지 내포한다고 강조되었고 나아가 글씨의 풍격(風格)이나 스타일은 단순한 예술의 범위를 넘어서서 사상과 윤리를 포함한 문화 전반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당나라 태종이 가장 애호하고 존경했던 서예가로 극찬한 왕희지의 서체는 당시의 지식인 집단에 요구된 광범한 의미의 스타일이었으며, 그가 남긴 모든 자취들은 당나라 이전까지 중국 서예의 역사와 성과를 집대성한 이상적이면서도 예술가다운 것이었다. 왕희지의 글씨 스타일과 서예론은 당태종 시대뿐만 아니라 이후까지 서체와 서예의 태도라는 측면에서 강력한 모범이자 지침이 되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공자(孔子)의 ≪춘추(春秋)≫가 유가(儒家) 지식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과도 비슷하다.

오랜 세월 동안 ‘서성(書聖)’으로 떠받들어 온 왕희지에 대해 소개하고 평가한 전기(傳記)나 평전(評傳)이 서예의 역사가 오래됐음에도 우리나라에는 저서든 번역서든 전혀 없을 뿐더러 중국 내에서도 희귀하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왕희지 본인에 대한 심층적 소개나 연구에 집중한 책은 더욱이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것은 서진(西晉)과 동진(東晉)의 두 왕조에 걸친 역사의 격변기를 거친 왕희지의 삶, 개인사에 대한 기록 문화가 일천했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로 인해 그에 대한 기본 자료가 부족했고 전문 연구자들도 많지 않았으며 그와 관련된 자료들은 진품이 극히 드문 그의 일부 작품들과, 일화(逸話)나 전설들이 대부분인 산발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라 그의 전기나 평전을 쓰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이 분명했다.

이 책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서성으로 추앙받던 왕희지와, 서예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그의 아들 왕헌지 부자(父子)가 정치적‧사상적‧문화적‧예술적인 차원에서 차지했던 자리와 그 의미를 포괄적으로 서술한 역작이다. 이 평전에서 저자는 노장사상(老莊思想)과 현학(玄學) 및 그것들을 반영하는 ‘청담(淸談)’이 유행하고 개성과 풍류를 중시하고 문학과 예술의 ‘아름다움[美]’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던 그 시기를 살았던 그들의 모습을 최대한 생생하게 설명하고자 했다. 혼란한 정세 변화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꿋꿋한 개성을 추구하고, 약물중독으로 고통스러운 생애 내내 서예의 대가로 도약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왕희지의 삶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이 있다. 당태종에 의해 정립된 신화라고 할지라도 그는 충분히 추앙받을 만한 신분적 배경과 인품, 재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저작에는 일반적인 평전들이 그러하듯이 주인공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인 애호가 담긴 약간은 지나친 듯한 호평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중국에서 나온 10여 종의 왕희지 평전 가운데 이 책이 가장 권위 있는 저술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그런 단점을 넘어설 만큼 면밀하게 조사 분석한 객관적인 자료들과 합리적인 서술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왕희지(王羲之, 307~365, 자는 일소[逸少])는 동진(東晉) 건국에 공을 세운 왕도(王導)의 사촌동생 왕광(王曠)의 아들이며 비서랑(秘書郞)을 시작으로 호군장군(護軍將軍), 우군장군(右軍將軍), 회계내사(會稽內史) 등을 역임하여 왕우군(王右軍)으로도 불린다. 그는 한나라 때 생겨난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의 실용서체를 예술적인 서체로 승화시켜 ‘서성(書聖)’으로 일컬어진다. 서예에 뛰어났던 당(唐) 태종(太宗)이 극찬 애호하여 성가가 높아진 그의 글씨는 시대가 지나면서 중국 서예의 모범이 되었다. 오늘날 그의 진적(眞跡)은 전해지지 않으나 적지 않은 모사본과 탁본이 전하며, 이 중 가장 이름 높은 <난정서蘭亭序>는 유려한 행초(行草)의 최고 경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의 아들인 왕헌지(王獻之)도 서예의 대가로 명성을 날려, 부자(父子)를 아울러 ‘이왕(二王)’이라고 부른다.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궈롄푸(郭廉夫)

남경예술학원(南京藝術學院) 미술계(美術系)를 졸업하고 강소미술출판사(江蘇美術出版社)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중국미술가협회 회원으로서 수많은 전시회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현재는 삼강학원(三江學院) 예술학원(藝術學院) 교수로 있다. 그 외에 학술 분야에서는 ≪미술사론(美術史論)≫과 ≪서법연구(書法硏究)≫ 등의 학술지에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색채미술(色彩美術)≫ 등 10여 종의 저작을 국내외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옮긴이 홍상훈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수의 학술논문 외에 저서로 ≪하늘을 나는 수레≫(문화관광부 추천도서), ≪그래서 그들은 서천으로 갔다-서유기 다시 읽기≫, ≪전통 시기 중국의 서사론≫, ≪한시 읽기의 즐거움≫(문화관광부 추천도서),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 경영≫, ≪중국문화와 함께 익히는 한문≫, ≪중국 고전문학의 전통≫(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서유기≫(공역), ≪중국소설비평사략≫, ≪베이징≫, ≪홍루몽≫, ≪완역 두보율시≫(공역), ≪시귀의 노래-완역 이하 시집≫(문화관광부 추천도서), ≪별과 우주의 문화사≫, ≪손오공의 여행≫, ≪유림외사≫(공역), ≪양주화방록≫(공역,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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