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재교수의 술과 한시] <7> 술에 빠져 지낸 속내

송(宋)나라 즉, 유송의 안연지가 지은 총 5수의 연작시인 <오군영(五君詠)>
승인2016.03.29 00:58:47

술에 빠져 지낸 속내

유령은 폐관(閉關)을 잘 하여
감정을 숨기고 보고 듣는 것을 없앴지.
음악도 즐겁게 하기에 부족했으니
아름다운 색이 어찌 눈을 현혹할 수 있었으랴?
정명(精明)함을 숨긴 채 날마다 술에 빠져 지냈나니
뉘라서 그것이 황폐한 잔치가 아니었음을 알까?
술을 칭송한 글은 비록 짧았지만
깊은 속내가 여기에서 드러났지.

劉伶善閉關, 懷情滅聞見.
鼔鍾不足歡, 榮色豈能眩.
韜精日沈飲, 誰知非荒宴.
頌酒雖短章, 深衷自此見.

이것은 남조(南朝) 송(宋)나라 즉, 유송(劉宋)의 안연지(顔延之: 384~456, 자는 延年)가 지은 총 5수의 연작시인 〈오군영(五君詠)〉 가운데 제3수인 〈유참군(劉參軍)〉이다. 유명한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한 명인 류령(劉伶: 221?~300, 자는 伯倫)은 키도 작고 얼굴도 못생겼지만 노장사상을 칭송하며 전통적인 유가의 예법을 무시하고 방종하게 술을 마시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유령은 항상 멋대로 술을 마시고 거침없이 행동했다. 간혹 옷을 벗고 알몸으로 집안에 있곤 했는데, 그걸 본 사람이 나무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집으로 삼고, 집 건물을 속옷으로 삼는데, 여러분은 왜 내 속옷 안으로 들어오셨소?”

劉伶恒縱酒放達, 或脫衣裸形在屋中, 人見譏之. 伶曰: 我以天地爲棟宇, 屋室爲褌衣, 諸君何爲入我褌中.

루쉰도 지적했듯이(魯迅, 〈魏晉風度及文章與藥及酒之關係〉 참조) 이렇게 벌거벗은 이유는 사실 ‘오석산(五石散)’을 복용하여 열을 식히기 위한 행위였지만, ‘복식(服食)’을 하지 않는 이들의 눈에는 일상의 예법을 벗어난 광망한 행위로 비쳤을 것이다. 물론 아주 긍정적인 차원에서는 이런 일화들은 그의 노장사상에 대한 이해가 범인의 경지를 초월하여 저 《문선(文選)》의 주석가 이선(李善: 630~689)의 설명처럼 “가슴 속에 도와 덕이 충만하여 감정과 욕망이 모두 사라진[道德內充, 情欲俱閉]” 상태였기 때문에 《노자(老子)》에서 말한 것처럼 “빗장이 없어도 그 문을 열 수 없는(제27장: 善閉, 無關楗不可開)” 경지에 들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겠다. 이목을 닫고 요란한 음악과 화려한 색에 미혹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서술일 터이다.

유령이 술을 좋아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라서 이미 술을 만든 전설상의 두강(杜康)과 그를 연결시킨 전설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또 그 자신은 〈주덕송(酒德頌)〉을 지어서 세간의 평이 거짓이 아님을 몸소 증언하기도 했다.

도덕을 품은 위대한 선생[大人先生]께서는 하늘과 땅을 하루아침으로 여기고, 만년을 순식간으로 여기고, 해와 달을 문과 창으로 삼고, 팔방의 세상 끝까지를 마당과 길로 삼는다. 다님에 수레바쿠 자국이 없고, 거처함에 집이 따로 없으며, 하늘과 땅을 휘장과 방석으로 삼아 마음 내키는 대로 한다. 멈춰 있을 때면 술잔을 들어 마시고 움직일 때면 술통이나 술병을 들고 다니면 오로지 술 마시는 데에만 힘쓸 뿐 그 밖의 것들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존귀한 집안의 도령들과 사대부 및 벼슬살이를 마다하고 은거해 지내는 처사들이 내 명성을 듣고 그 잘잘못을 논의했다. 이에 소맷자락을 떨치고 옷깃을 걷어 세운 채 화난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예법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으며 시비를 따지는 논의가 예리하게 일어났다. 이에 선생은 술 단지와 술통을 받든 채 잔을 물고 탁주를 머금은 채 수염을 쓰다듬으며 두 다리를 뻗고 누룩과 술지게미를 베고 누워 아무 근심걱정 없이 그 즐거움이 넘쳐났다. 아무 지각이 없을 정도로 취해 있다가 퍼뜩 술이 깨는데 차분히 귀를 기울여도 천둥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유심히 쳐다봐도 태산처럼 큰 것도 보이지 않으며, 추위와 더위가 살에 닿는 것도 느끼지 않고 이해(利害)와 욕망에 감정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만물을 굽어 살피니 어지러운 것이 마치 강과 바다에 부평초가 떠다니는 듯하고, 도령과 처사 같은 두 호걸들이 옆에서 시중을 드니 마치 나나니벌이 나방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有大人先生, 以天地爲一朝, 萬期爲須臾, 日月爲扃牖, 八荒爲庭衢. 行無轍迹, 居無室廬, 幙天席地, 縱意所如. 止則操巵執觚, 動則挈榼提壺, 惟酒是務, 焉知其餘. 有貴介公子, 搢紳處士, 聞吾風聲, 議其所以. 乃奮袂攘襟, 怒目切齒, 陳説禮法, 是非鋒起. 先生於是方捧甖承槽, 銜盃潄醪, 奮髯踑踞, 枕麯藉糟, 無思無慮, 其樂陶陶. 兀然而醉, 豁爾而醒, 靜聽不聞雷霆之聲, 熟視不睹泰山之形, 不覺寒暑之切肌, 利欲之感情. 俯觀萬物, 擾擾焉若江海之載浮萍, 二豪侍側焉, 如蜾蠃之與螟蛉.

참으로 초탈하고 대범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마지막에 제시된 나나니벌과 나방의 은유는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작은 새[小宛]〉에는 “나방이 새끼를 낳으면 나나니벌이 업어 기르지.[螟蛉有子, 蜾蠃負之]”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나나니벌이 나방을 잡아 마취시켜서 그 몸 안에 알을 낳는데, 나중에 그 알이 깨어나면 나방의 살을 파먹고 자라게 되는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다만 〈주덕송〉의 표현만으로는 유령 자신과 ‘두 호걸[二豪]’ 사이에서, 혹은 ‘두 호걸’ 사이에서 누가 나나니벌이고 누가 나방인지는 판별하기가 애매하다. 유령과 ‘두 호걸’ 사이에서 누가 착취하고 누가 착취를 당하는가? 존귀한 집안의 도령과 사대부 및 처사라는 ‘두 호걸’ 사이에서는 또 어떠한가? 또한 굳이 이런 방식이 아니라도 이 구절은 ‘두 호걸’이 그저 나나니벌이나 나방처럼 미미하고 작은 벌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신랄한 조롱과 풍자로 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야말로 언제나 술을 지닌 채 사슴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니고 하인에게 삽을 들고 따라오라고 하면서 자신이 죽거든 그 자리에 묻어 달라고 했다는 그다운 대범한 풍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예법과 ‘두 호걸’의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유령의 이런 행위는 문벌이 횡행하고 지식인의 생사가 앞날을 예견하기 어려운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지각(知覺)과 의식(意識)을 끊어버리는 술의 위력을 빌려 자신의 안위를 보전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진서》에 따르면 역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일부러 60일 동안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있어서 진(晉)나라 문제(文帝) 사마소(司馬昭: 211~265, 자는 子上)가 완적의 딸과 훗날 무제(武帝)가 되는 사마염(司馬炎: 236~290, 자는 安世) 사이의 혼사에 대해 말을 꺼낼 기회조차 잡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사마염은 바로 서진(西晉)의 개국황제이니 당시 정세의 복잡성과 위험성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적 격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완적의 책략 역시 술을 매개로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술은 ‘복식(服食)’이 유행했던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오석산’의 열기를 식히는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마수(魔手)에서 벗어날 수 있는 훌륭한 도피처라고 할 수 있었다. 그에 따른 ‘기행’과 명성은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었던 셈이다.

안연지가 이 시에서 말한 유령의 ‘깊은 속내[深衷]’는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일 터이다. 《문선》의 주석자들을 비롯한 역대의 논자들도 〈주덕송〉은 ‘난세’에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숨기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했으므로, 안연지도 그 점을 바탕으로 자신의 처지 또한 유령과 비슷하다는 심정을 시로 읊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두강(杜康)이 섞어 넣은 바보의 피가 영리한 문인의 피와 섞여서 술에 이렇듯 절묘한 효능이 생겨난 것일까?
 

▲ 백운재 교수

[칼럼니스트 소개] 백운재(필명)교수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1999)를 취득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하늘을 나는 수레(2003),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2010), 전통시기 중국의 서사론(2004)등의 저서와 두보, 이하 등의 중국 시와 베이징(1997), 서유기(2004), 홍루몽(2012), 유림외사(2009), 양주화방록(2010)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칼럼문의 백운재 peking00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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