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 병의 모양이 다른데에는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 unsplash.com>

2016년 5월, 스파클링 와인 6병을 들고 한강 잠원지구를 가는 길이었다. 한 손엔 와인, 다른 한 손엔 얼음팩을 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굴다리를 지나가는데, 도대체 왜 와인은 이렇게 크고 무거운가 절규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짜증에 눈이 멀어 그 이유를 찾아볼 생각은 안 하고 속으로 육두문자만 날렸지만, 지금은 차분히 앉아 와인병의 비밀을 말해보고자 한다.

와인병은 용량, 형태, 색깔로 그 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와인병의 용량이다. 와인은 750ml가 세계 표준이다. 물론 187ml부터 375ml 하프 보틀, 1.5L 매그넘 보틀도 있지만, 표준은 750ml 유리병이다. 소주 병은 360ml, 맥주 병은 500ml, 스피릿은 700ml인데 와인은 왜 혼자 마시기에도 버거운 750ml일까. 그 이유는 바로 영국의 부피 단위인 갤런(Gallon) 때문이다. 프랑스의 가장 큰 고객은 예로부터 영국이었다. 특히 보르도 와인의 대부분은 영국으로 수출되었고, 영국의 입김이 와인 생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다. 19세기 이후, 유리병이 보편화되고 225L 바리크 오크통을 갤런으로 환산하기 번거로웠던 보르도 와인 생산자들은 한 개의 오크통에서 300병을 생산하기로 결정해버린다. 그래서 225L를 300으로 나누니, 와인 한 병에 750ml가 된 것이다. 황당하지만 이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1 갤런은 대략 4.5L이고, 가장 기본 단위로 거래했던 영국은 750ml 6병(1 갤런), 12병(2갤런)을 중심으로 와인을 거래했다. 이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져 현대에 이르러서도 와인은 6병, 12병 기준으로 판매가 이루어진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유리병 제작자가 내뿜을 수 있는 날 숨의 최대치가 750ml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밝혀진 정설은 아니다.

두 번째로 병의 형태를 살펴보자. 와인병은 원통형에 병목으로 갈 수록 좁아지고 무거운 유리로 만들어진다. 유리는 19세기 이후부터 보편화 되었는데, 그 전에는 기술 부족과 낮은 채산성으로 인해 선택 받지 못했었다. 대신 도자기, 동물 가죽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유리 생산이 자동화 되고, 와인에 가장 위생적이면서 화학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부터 유리는 와인을 위한 영원불멸의 재료가 되었다.  

와인병은 왜 지금의 원통형 모습이 되었을까? 18세기만 하더라도 와인 병은 양파 모양의 동그란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1730년대에 이르러 와인 소비자들은 빈티지 별로 와인의 품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와인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니즈는 병입을 하는 네고시앙(대형 상인)에 즉각 반영되었고, 이들은 병을 눕혀서 차곡차곡 쌓아올릴 수 있는 형태로 병의 모양을 바꿔버렸다. 또한 와인 상점에서 진열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모양을 바꿨다는 설도 전해 내려온다. 원통형으로 형태가 고정된 후, 와인병은 지역에 따라 그 형태가 조금씩 바뀌어 생산되었다. 이는 크게 부르고뉴, 보르도, 모젤과 알자스, 세 지역으로 나뉜다.

원통 형 모양의 유리병은 부르고뉴에서 처음 생산되었다. 어깨가 없이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병이 제작되는데, 그 이유는 유리병 생산자가 가장 만들기 편한 형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자는 부르고뉴 피노누아와 샤르도네의 우아함이 이 부드러운 곡선을 나타낸다라고도 하지만, 이는 개인적인 사견일 뿐이다. 이 후 피노누아와 샤르도네를 생산하는 신세계 와이너리들도 부르고뉴 스타일의 병 모양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보르도 와인 병의 가장 큰 특징은 볼록 튀어나온 어깨 부분이다. 보르도는 부르고뉴보다 몇 년 후에 유리 와인병을 도입했는데, 왜 이런 모양으로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보르도 블렌딩(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 말벡)이 침전물이 많아서 디캔팅을 할 때 이를 걸러내기 위해 어깨 모양을 만들었다는 설이 그럴듯 하게 들리지만, 이는 문서상 밝혀진 내용이 아니라 사후 관찰에 의해 알려진 부분이다. 프랑스 론 밸리의 시라 역시 짙은 색상과 타닌으로 병 숙성 후에 침전물이 상당히 생기는데, 병 모양은 부르고뉴와 흡사하다. 따라서 침전물을 걸러내기 위해 병에 어깨를 집어넣었다라는 이야기는 증명된 바가 없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단순히 부르고뉴와 차별화하고 싶어서 병 모양을 바꿨다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후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품종의 타 국가 와인들도 보르도의 병 모양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독일 모젤과 프랑스 알자스 지역의 병 모양을 살펴보자. 부르고뉴, 보르도와 달리 병이 더 날씬하고 길다. 이유는 간단하다. 라인강을 통해 와인을 수송했기 때문이다. 바다를 건너는 배보다 크기가 작은 배에 와인을 싣다보니, 와인을 한번에 최대한 많이 수송하기 위해 병 모양이 날씬해진 것이다. 750ml를 유지하면서 병을 날씬하게 바꾸면, 길이는 당연히 길어진다.

와인 병의 색깔도 매우 흥미롭다. 이상적인 색은 암갈색이다. 자외선을 가장 효과적으로 차단해주기 때문이다(맥주병도 마찬가지다). 와인은 자외선을 직접적으로 계속 맞으면 화학적 효과에 의해 그 향과 맛이 안 좋은 방향으로 변한다. 마늘, 절인 양배추의 향을 떠올려보자. 결코 좋은 냄새는 아니다. 레드와인은 그 피해가 덜하다. 안토시아닌과 타닌 성분이 보호막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페놀릭 성분이 없는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은 자외선, 인공적인 형광등, 자연광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샴페인 하우스들의 와인저장 창고를 가보면, 나트륨 조명으로 빛을 밝혀 놓는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가로등, 터널 내부의 황색 조명이 바로 나트륨 조명이다. 이 나트륨 조명은 황색 단색이고, 빛의 파장이 길어서 와인의 화학적 반응에 관련이 없다고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뢰더러의 가장 상급 라인인 ‘크리스탈’ 을 보면, 노란색 포장지로 덮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빛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왜 로제 와인의 병은 투명할까? 대부분의 로제 와인은 1-2년 안에 마시도록 양조되기 때문에 와인 생산자들은 빛으로 인한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제 와인의 생명은 아름다운 색감이다. 로제 와인만의 가장 큰 경쟁력을 잃는 것은 생산자도, 소비자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샴페인 병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보자. 샴페인 병은 기포가 없는 스틸 와인보다 더 유리가 두껍고 따라서 더 무겁다. 이는 6기압에 육박하는 압력을 견디기 위함이다. 병 밑을 살펴보자. 스틸 와인보다 어 깊게 움푹 파여있다. 이 역시 압력을 견디기 위한 최적의 디자인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와인 병에 관한 모든 것을 살펴보았다. 와인 병이 왜 750ml인지, 왜 지역마다 병 모양이 다른지, 병의 색깔은 왜 암갈색인지, 샴페인 병이 왜 더 두꺼운지 등을 알아보았다. 이 글을 읽고 와인샵에 가서 병들을 살펴보자. 무엇이, 왜, 어떻게 다른지 이제는 보일 것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최태현 칼럼니스트 cth9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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