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재교수의 술과 한시] <8> 꿈속에서도 길을 찾지 못하리라

백년을 살아도 건강한 때 많지 않고, 봄이라지만 맑은 날 며칠이나 될까?
승인2016.04.02 12:48:18

꿈속에서도 길을 찾지 못하리라

인생에서 젊은 날에는
쉽게 헤어지며 앞날을 기약했지.

함께 늘그막에 이르게 되었으니
작별할 때가 다시 오지 않겠군.
술 한 통밖에 안 된다고 말하지 말게
내일이면 다시 들기도 어려울 테니!
꿈속에서도 길을 찾지 못하리니
무엇으로 그리움을 달랠까?

生平少年日, 分手易前期.
及爾同衰暮, 非復別離時.
勿言一樽酒, 明日難重持.
夢中不識路, 何以慰相思.

이것은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심약(沈約: 441~513, 자는 休文)이 지은 〈범수(范岫: 440~514, 자는 懋賓)와 작별하며[別范安成]〉로서 이른바 ‘신변체(新變體)’라는, 중국 근체시(近體詩)의 물꼬를 열어놓은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송서(宋書)》 등의 편찬을 주도한 빼어난 역사학자이자 《사성보(四聲譜)》와 같은 음운학(音韻學) 연구로 5언시의 창작에서 유의해야 할 성률(聲律)의 8가 병폐[八病]을 제시함으로써 근체시의 기반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이 시는 전반부에서 젊은 시절의 작별은 상대적으로 ‘쉬웠음’을 회상하면서 후반부에서는 노년의 작별이 ‘어려움’을 한정된 인생에 대한 애수(哀愁)와 함께 토로하고 있다. 시인 자신이 그랬듯이 젊은 시절의 사람들은 종종 꿈과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그 와중에 절친한 벗과도 헤어져야 할 때가 자주 있다. 심지어 당나라 때 왕발(王勃: 650?~676?, 자는 子安)처럼 벼슬길에 들어선 젊은 사나이들은 불가피한 떠돎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이별을 맞이해야 한다고 호언하기도 한다. 〈남쪽 촉 땅으로 부임하는 두 소부를 전송하며[送杜少府之任蜀川]〉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장안성은 삼진 땅의 호위를 받고 있는데
안개 날리는 바람 속에서 남쪽 촉 땅을 바라본다.
그대와 이별하는 마음
똑같이 벼슬길에 타향을 떠도는 신세라네.

천하에 자기를 알아주는 이 있다면
하늘 끝 먼 곳이라도 이웃과 같으리.
헤어지는 갈림길에 있다 할지라도
아녀자들처럼 수건에 눈물 적시진 말세!

城闕輔三秦, 風烟望五津.
與君離別意, 同是宦游人.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無爲在歧路, 兒女共沾巾.

그러나 창창한 미래가 남아 있던 그 시절에는 쉽게 작별하고 조만간 다시 만나자는 기약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히 인생이 꼬여버리지 않는 한 그런 재회는 불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노년의 작별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마지막 미련(尾聯)에서 인용된 전국시대 장민(張敏)과 고혜(高惠)의 대단히 상징적인 이야기처럼 다시 만날 길이 없는, 이생 최후의 쓸쓸한 작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친한 벗이었던 장민과 고혜가 헤어져 지내는 동안 그리움에 시달리던 장민이 꿈속에서 고혜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도중에 길을 잃어버려 목적을 이루지 못한 그는 결국 쓸쓸하게 꿈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꿈과 같은 인생에서 맺은 우정도 꿈이 끝나가는 노년이 되면서 아득한 그리움만 남기고 멀리 떠난다. 덧없는 인생에 그나마 의미를 갖게 해준 벗과 거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작별의 자리에서 이후로 닥쳐올 그리움을, 그로 인한 시름을 달래줄 무엇으로 술보다 적당한 게 또 얼마나 될까? 아마도 이런 의미에서 당나라 때의 백거이(白居易)도 〈술잔 앞에서[對酒]〉라는 5수의 연작시 가운데 제4수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을 것이다.

백년을 살아도 건강한 때 많지 않고
봄이라지만 맑은 날 며칠이나 될까?
만나면 잠시나마 술잔 사양 말아야 할지니
옛 이별노래의 네 번째 구절을 들어보게나.

百歲無多時壯健, 一春能幾日晴明.
相逢且莫推辭醉, 聽唱陽關第四聲.

번역에서 ‘옛 이별노래’라고 한 ‘양관(陽關)’은 사실 백거이보다 약간 이른 시기를 살았던 왕유(王維: 701~761 또는 699~701, 자는 摩詰)의 시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이별의 노래로 유명한 이 시는 종종 〈위성곡(渭城曲)〉 또는 〈양관곡(陽關曲)〉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는데──에 곡에 얹은 〈양관삼첩(陽關三疊)〉을 가리킨다. 다만 최후의 술자리임을 예감한 심약의 술자리는 이보다 훨씬 비장하다. 그 마지막 작별을 한 이후 심약과 범수가 가야 할 길은 양관 너머가 아닌 ‘황천(黃泉)’ 아래의 다른 세상이 될 테니까!
 

▲ 백운재 교수

[칼럼니스트 소개] 백운재(필명)교수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1999)를 취득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하늘을 나는 수레(2003),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2010), 전통시기 중국의 서사론(2004)등의 저서와 두보, 이하 등의 중국 시와 베이징(1997), 서유기(2004), 홍루몽(2012), 유림외사(2009), 양주화방록(2010)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칼럼문의 백운재 peking00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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