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토니정 셰프 <사진=냉장고를 부탁해 캡쳐>

2월 12일(월)에 방영된 '냉장고를 부탁해' 168화에 와인 애호가의 성지로 불리는 앙스모멍의 토니정 총괄 셰프가 출연했다. 168화는 세계 요리 편으로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 몬디와 가나 대표 샘 오취리의 냉장고가 공개됐다. 토니 정 셰프는 알베르토 몬디의 냉장고로 샘 킴 셰프와 대결을 펼쳤다.

토니 정 셰프는 뉴욕의 미슐랭 레스토랑인 Le cirque의 총부주방장을 역임하였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르꼬르동 블루 그랑 디플로마 과정을 졸업했다. 신라호텔 국내 최연소 입사로 근무했으며, 프랑스에 위치한 미슐랭 레스토랑 L'Atelier de Joel Robuchon과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World Best Restaurant 'NOMA'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인터뷰 1화는 '앙스모멍의 미남 총괄 셰프' 토니 정의 이야기를 들어봤다면, 이번엔 그의 음식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Q. 셰프님, 어떻게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어머니가 경험 많은 한식 요리사십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요리 욕구가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집엔 항상 요리 관련 서적이 쌓여 있었습니다. 맞벌이셨던 부모님이 밖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동생과 둘이 집에서 요리를 해 먹었습니다. 처음엔 계란 후라이만 하다가 책을 보고 스크램블도 해보고, 계란말이도 해보고, 그다음은 계란찜을 하다 보니 요리에 재미 들렸습니다. 계속 요리를 해보니 조리법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 더욱 빠지게 됐습니다.

고3 때 대학 진학반과 취업반 중 선택해야 했는데, 저는 취업반을 갔습니다. 취업반을 통해 신라 연수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당시 '호텔리어' 드라마의 흥행으로, 제 또래 중엔 호텔리어 꿈을 가진 친구가 많았습니다. 저 또한 호텔리어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신라 연수원에 들어갔습니다.

연수원에서는 처음부터 조리 파트와 서비스 파트를 나누진 않습니다. 조리도 배우고 서비스 파트도 경험해봤는데, 서비스는 저와 잘 안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조리 파트 때 더 혼신을 다해 일했고, 열심히 하다 보니 정식 입사가 됐습니다. 신라호텔 입사부터 요리 커리어를 시작해 지금까지 달려오게 됐습니다.

▲ "같은 재료로도 조리법에 따라 다른 맛의 요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큰 흥미를 느꼈어요" <사진=앙스모멍>

Q. 신라호텔이 셰프님의 첫 커리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신라호텔에선 어떤 요리로 시작하셨나요?

처음에는 일식을 했습니다. '아리아케'라는 일식당에 막내로 들어가 일을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 당시는 지금보다도 규율이 더 심했습니다. 그게 견디기 힘들어서 부서를 옮겨 '콘티넨탈'이라는 프렌치 식당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버터나 크림 냄새를 싫어했는데, 프렌치 식당에서 결국 버터와 크림이 익숙해졌고, 제대로 알게 되니 버터와 크림의 매력에 빠지게 됐습니다. 프렌치 식당에선 주로 불어를 쓰기 때문에 불어, 영어 섞어가면서 배웠습니다. 

Q. 국내에서 근무하시다가 어떻게 해외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됐나요?

신라호텔에서 근무하다가 군대 제대 후에는 노보텔 앰버서더에서 일했습니다. 일하다가 문득 스스로를 봤는데 발전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발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니 요리가 지루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연수원 동기였던 친한 형이 미국을 간다고 하길래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때가 27살이었네요. 무작정 그 형 따라 미국에 갔습니다.

미국에 가기 전에 비자도 받고 레스토랑도 배정받아 나갔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전에 일하던 직원이 몇 주 더 일하게 돼 정식입사가 2주 정도 미뤄졌습니다. 입사가 미뤄지니 기숙사 입주도 미뤄졌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첫날엔 같이 간 형 방에서 같이 자려고 했는데, 기숙사 규정상 들어갈 수 없더군요. 별수 없이 미국에 도착한 첫날엔 메디슨 스퀘어 파크 벤치에서 잤습니다. 그렇게 2주간 떠돌이 생활을 하며 버텼습니다.

2주 동안 여러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실습 식으로 돈을 조금씩 벌어가며 버텼습니다. 처음엔 영어도 못 하니깐 일이 끝나면 메디슨 스퀘어 파크를 도는 순환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운전사한테 빵 하나씩 주고 버스를 두세 바퀴씩 돌면서 버스 탄 사람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영어를 배웠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천장이 있었습니다. 뉴욕 미슐랭 레스토랑인 Le Cirque에서 부주방장까지 갔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셰프가 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요리학교 출신이 아니라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파리의 르 꼬르동 블루로 향하게 됐습니다. 파리에서는 밤에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낮에 공부하며 졸업까지 하게 됐습니다. 

Q.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덴마크의 NOMA 레스토랑에서도 근무했습니다. 혹시 재미있던 에피소드가 있습니까?

노마에서 근무할 때 노마가 산 페드로에서 뽑은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No.1 레스토랑으로 뽑혔습니다. 노마의 일원으로써 많이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Extern으로 채집팀에서 근무했습니다. 노마는 덴마크에 서식하는 희귀한 식재료를 직접 키워 사용하는 게 모토였습니다. 채집팀으로 일을 하면서 이끼를 키워보기도 하고 채집하면서 식재료를 보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 노마가 산 페드로에서 뽑은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No.1 레스토랑으로 뽑혔습니다. 노마의 일원으로써 많이 배웠습니다. <사진=소믈리에타임즈 DB>

서러웠던 기억도 나네요. 제가 라인 쿡으로 배정받았는데 말을 잘 못 한다고 며칠 만에 디쉬 워시로 다시 내려갔습니다. 라인 쿡만 몇 달을 기다려 배정받았는데 다시 몇달동안 설거지만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같이 설거지하며 친하게 지냈던 라틴 계열 직원이 있었습니다. 주말에 라틴 친구네 놀러 갔더니 아이가 8명이었습니다. 집에 아이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국내에선 여러가지 환경으로 아이 1명 낳기에도 부담스러운데, 그 친구는 8명을 낳고도 잘 살았습니다. 부러웠습니다. 덴마크에서 결혼해서 정착할까도 생각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웃음)

Q. 앞으로 토니정 셰프의 꿈은 무엇인가요?

롤 모델은 조엘 로부숑(Joel Robuchon), 알랭 두카스(Alain Ducasse)입니다. 그분들처럼 위대한 셰프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제 꿈이 하나 있습니다. 다소 허황된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언젠가 파리에 제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입니다. 전국 팔도 지역별로 특색있는 음식과 전통주를 매칭해 선보일 것입니다. 기와집 지붕 아래에 사람들이 한식을 요리하는 것을 볼 수 있게 오픈 키친 구조로 되어 있어요. 음식을 먹으러도 오지만, 견학 오듯이 레스토랑의 음식과 전통주를 구경하러 오는 레스토랑을 하고 싶습니다.

▲ "언젠가 파리에 제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이 꿈입니다." <사진=소믈리에타임즈 DB>

Q. 훌륭한 셰프를 꿈꾸는 후배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욕심 있는 후배들은 스펙 쌓기에 집중합니다. 정작 같이 일해보면, 실력은 스펙보다도 인성과 노력에서 나옵니다. 또 요즘 친구들은 쉬는 날과 돈에 많이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돈, 휴식 다 필요하지만, 꿈이 있고 꿈에 다가가기 위해선 자신과 자신의 음식 발전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요리사는 겉모습보단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최근 셰프에 대한 인식은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셰프를 제외한 레스토랑 주방직원에 대해선 아직 편견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셰프는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유명한 셰프가 될 훌륭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주방 직원들은 학력과 경력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앙스모멍만 하더라도 CIA나 꼬르동 출신들이 많습니다. 그 친구들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실력 있는 친구들입니다. 주방에 대한 편견, 셰프의 명성 보단 음식에 대해 평가를 해주기 바랍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하늘기자 skylin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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