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남 사진전 '빗개'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4월3일 개막

승인2018.03.26 16:35:48
▲ 어리목 (2018. Pigment print) <사진=뮤: 움>

사진가 유별남 ‘빗개’ 전시가 오는 4월 3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개막한다. ‘빗개’는 1948년 3만 여명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된 제주 4.3 사건을 오늘로 환원한 사진들이다.  

오름의 부드러운 능선을 원경으로 펼쳐두고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구멍 뚫린 현무암 돌담 너머엔 하늘이 걸려있다. 노란 유채와 새빨간 동백. 오름과 돌담과 꽃, 꽃들. 일찍이 우리 눈에 익은 ‘아름다운 제주 풍경’이다.

그런데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딘지 불안하다. 몰래 숨어서 내다보는 것 같은 시점이다. 때로는 땅에 납작 엎드려야만 보이는 높이다. 돌담은 모서리에 찔릴 듯 너무 가깝고, 갈대의 흔들림도 어떤 기척처럼 수상하다. 사진의 제목이 ‘빗개’. 아무리 방언이라 할지라도, 제목조차 귀에 설다.

제주에서는 처녀를 비바리라 부르듯이, 어린 소년소녀들을 빗개라 불렀다. 하지만 여기서의 빗개는 1948년 일어난 4.3사건 당시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제주 땅 곳곳에 몸을 숨긴 주민들이 은신처를 지키고자 망보기로 세웠던 아이들을 일컫는다. 여기 이 제주 풍경들은, 70년 전 참혹한 학살이 벌어졌던 제주 다랑쉬굴 앞에서, 도틀굴 숲속에서, 정방폭포 물살 뒤에서 망을 보던 소년의 시선으로 찍힌 사진들이다. 지금은 유적으로 분류된 학살터를 비롯해 '생존한 빗개’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장소들의 사계절이 사람의 시각과 유사한 화각에 담겨있다. 바로 그날의 4.3을 오늘로 환원하는 사진들인 것이다.

▲ 선흘리(2018. Pigment print) <사진=뮤: 움>

사진을 찍은 이는 유별남이다. 그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오랫동안 EBS의 <세계테마기행>, KBS <여섯시 내고향> 같은 유명 프로그램 출연자로 낯을 익혔다. 그 프로 들 안에서, 그는 ‘별남이’라는 이름처럼 친근하고 명랑한 표정으로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을 소개하는 여행작가로 등장한다.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의 모임인 <온빛다큐멘터리>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책으로 선보인 사진들은 주로 해외의 난민과 빈민아동에 관한 것이거나 여행지의 풍광을 담은 회화적인 사진들이었다.

그런 그가, <빗개>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연다고 했을 때, 그것이 제주 4.3을 내용으로 한 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때,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유별남이 4.3을?’.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았다. 다만 그의 이력에 적힌 출생지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라는 것이 개연성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한 줄이었다.

제주 4.3은 ‘미군정기부터 대한민국정부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 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정의다. 지금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집단 희생’으로까지 귀결되었지만, 반세기 넘도록 진상규명은커녕 입 밖으로도 꺼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

“어린 시절, 왜 앞집 할망이 나를 그렇게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는지, 오래도록 알지 못했다. 4.3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유별남의 말이다. 대학민국에게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제주 사람들에게는 가족의 아픈 역사이자 이웃과 고향의 슬픈 역사였다. 또 7년이 지난 후에도 끝나지 않고 ‘내 자식과 남편, 부모를 죽게 한 이웃을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사는’ 70년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귀결되지 않은 현재’다.

4.3에 대해 어린 별남 역시 제대로 들은 기억은 없다. 4.3은 ‘쉬쉬’하면서 하는 어른들의 귀엣말과 한숨과 눈초리와 움츠린 몸짓을 타고 그에게 전이되었다. 제주를 벗어난 뭍에서, 서울 도심에서, 세계 여러 지역을 떠돌며 살았지만 고향이 제주인 이상 그에게 4.3은 생래적으로 태에 감겨 나온 무엇이었다.

따라서 <빗개> 사진의 촬영기간인 1년은, 제주에서 나고 자라온 그의 생애의 총합이 기어이 밀어낸 끄트머리의 일년일 것이다. 미술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으나 대학원에서 포토저널리즘으로 그리고 다큐멘터리사진가 그룹의 일원으로 옮아 온 그의 궤적도 마찬가지다. 오래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되었던 말을, 이제 자신의 화법인 ‘시각언어’로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이름자에도 박힌 그의 별이 여기까지 그를 인도했는지도 모른다.

▲ 아끈다랑쉬(2017. Pigment print) <사진=뮤: 움>

유별남이 채록한 ‘생존한 빗개’의 인터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토벌대든 무장대든 언제 누가 쳐들어올지 몰라 무서운 마음으로 숨어서 망을 봅니다. 어릴 때니까, 그렇게 종일 마을 뒷산에서 망을 보다보면 지루해지기도 합니다. 그럼 저도 모르게 주변에 풀꽃도 건드려보고 돌담에 기대 하늘도 올려다봅니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고향 참 아름답구나....’ 그러다 새가 날아오르는 작은 기척에도 소스라쳐 놀라지요.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망을 보던 소년 ‘빗개’의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70년이 지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주의 자연은 그때나 이제나 여전히 아름답다. 다만, 우리는 안다. 사람의 마음에 의해 풍경의 명도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이제 제주의 풍경은 4.3을 알리려 노력하는 저마다의 일성에 의해 그 명도가 달라질 것이다. 아무리 아프고 힘든 일일 지라도 아름다운 제주 풍경의 한 겹을 벗겨내고 사건의 진상과 진실을, 그 속살의 사연들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그것이 묻히고 사라져가던 방언인 ‘빗개’의 이름을 되살려, 유별남이 이 사진들을 세상에 전하는 이유이다.

‘낮게 걸린’ 30여 점의 <빗개> 사진과 4.3 관련 자료 및 영상들을 함께 볼 수 있는 전시는 4월 3일부터 22일까지 갤러리 류가헌 전시 1, 2관에서 열린다. 관람시간 11:00am - 06:00pm이고 월요일은 휴관한다.

소믈리에타임즈 최지혜기자 stpress@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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