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에서 빼려야 뺄 수 없는 곳, 파리. 사람 가득한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와는 다른 프랑스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파리 근교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기를 추천한다. 샹파뉴의 중심 도시 랭스(Reims)는 파리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와도 좋을 만큼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광객을 위한 즐길거리가 친절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와인을 잘 몰라도 둘러보기 좋다. 와인 애호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보통은 하루면 랭스를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듣기만해도 축하와 기쁨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샴페인'이 시내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파리 동역에서 랭스로

파리 동역에서 고속열차 떼제베(TGV)를 타고 최소 40분이면 랭스(Reims)에 도착한다. KTX로 서울에서 대전까지 1시간 정도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가까운 거리다. 약 1시간마다 기차가 있으니 각자의 여행 스타일에 맞춰 출발 시각을 선택하면 된다.

랭스에 왔음을 알리는 인증사 장소, 랭스 대성당

▲ 랭스 대성당에서 역대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치러졌다. <사진= 김지선>

오사카에 가면 양손을 들고 달리는 글리코맨 전광판 사진을 한 장 남겨오는 것처럼, 랭스에서는 랭스 대성당 앞에서 많은 사람이 발길을 멈추고 인증 사진을 찍고 간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추천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들를 필요는 없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찍은 흔한 성당 앞 사진 중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샴페인 하우스 투어

랭스의 본격적인 목적지로 가자. 랭스 내에는 대규모의 유명 샴페인 하우스가 많다. 이중 방문하기 좋은 곳은 멈(Mumm), 뵈브 클리코(Veuve Cliquot), 테탱저(Taittinger), 포므리(Pommery)인데, 이 네 곳의 하우스는 규모가 커서 일반 관광객을 위한 샴페인 투어 코스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샴페인을 잘 몰라도 샴페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샴페인을 만드는지 직접 카브 내에서 보고 듣기 때문에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다. 여기에 투어가 끝난 후 한, 두 잔의 샴페인을 시음하는 것은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 뵈브 클리코 샴페인 하우스 <사진= 김지선>

내가 방문한 곳은 랭스 시내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뵈브 클리코와 테탱저였다. '노란색'을 보면 바로 떠오르는 뵈브 클리코는 작년에 서울에서 팝업스토어를 열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브랜드다. LVMH 소유여서 브랜딩이 잘 되어있기도 하지만, '미망인'의 샴페인, 샴페인을 숙성하는 도구인 푸피트르(pupitre)의 개발 등 샴페인 하우스 자체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 투어 내용이 알차다. 지하의 거대한 동굴인 카브에서 가이드를 따라 투어가 진행되며,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샴페인 시음으로 끝난다.

테탱저는 뵈브 클리코에서 도보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샴페인 하우스다. 이곳은 특히 예술가와의 콜라보작업으로 매번 특정 샴페인 병 라벨을 바꾸어 출시한다. 테탱저 샴페인 투어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지하 셀러에서 시작하여 시음으로 끝난다.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종류의 샴페인이나 잔 단위로 판매되지 않는 고급 샴페인을 한 잔씩 마실 수 있는 점이 최고 강점이다.

▲ 테탱저의 지하 셀러 <사진= 김지선>

각 브랜드에만 있는 이야기를 제외하면 이런 대규모 샴페인 하우스는 카브의 형태나 샴페인 제조과정이 비슷해서 계속 투어를 다니다보면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일정이 맞는 곳이나 조금 더 관심이 가는 하우스 한두 군데만 들러도 충분하다. 사람이 많지 않다면 현장에서도 입장할 수 있지만, 원하는 시간대에 참석하려면 온라인 예약을 하는게 좋다. 보통 샴페인 하우스를 둘러보는 시간은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랭스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랭스에서 가장 유명한 미쉐린 또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3스타를 받은 라시에테 샹프노와즈(L'Assiette Champenoise)고, 다른 하나는 2스타를 받은 르 팍(Le Parc)이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들은 파리에서도 찾아갈 수 있지만 여기 레스토랑의 장점은 와인, 특히 샴페인을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마실 수 있는 점이다. 특히 라시에테 샹프노와즈는 모든 코스마다 서로 다른 샴페인이 제공되는 메뉴가 유명하다. 두 군데 모두 가면 여행 초반부터 파산할 위험이 있어 한 곳을 선택해야 했는데, 다행히(?) 내가 방문한 날은 라시에테 샹프노와즈의 휴무일이어서 르 팍으로 발길을 돌렸다.

▲ 랭스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르 팍 <사진= 김지선>

르 팍은 5성급 호텔인 레 크라에르(Les Crayères)에 속한 레스토랑이다. 휘황찬란한 와인 리스트는 물론이고 음식과 웨이터 및 소믈리에의 서비스, 레스토랑의 분위기 모두 흠잡을 데 없다. 특히 서비스가 눈에 띄는데, 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수와 같은 수의 웨이터들이 동시에 음식을 내려놓거나, 매번 소스를 따로 가져와서 직접 부으며 설명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든 소스를 먹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섬세한 서비스만큼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만 코스당 준비되는 간격이 최소 30분은 걸려서 디저트에 다다를 무렵에는 졸린 눈을 부릅뜨느라 고생했다. 프랑스의 코스요리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저녁에 방문한다면 약 3시간의 식사시간을 견딜 정도의 에너지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

추가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은 아니어도 충분히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레 크라에르 내에 있는 브라세리 르 자르댕(Brasserie Le Jardin)인데, 르 팍보다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편하게 식사하기 좋다. 브라세리는 단품 요리 위주로 주문하는 캐주얼 레스토랑이다. 르 자르댕에도 한 잔씩 마실 수 있는 글라스 와인이 20종류 넘게 준비되어 있고, 아뮤즈 부쉬부터 디저트까지 맛보고 싶다면 간단한 코스 메뉴로도 주문할 수 있다. 5성급 호텔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이곳의 음식도 수준급이다. 다음 샴페인 하우스 방문 일정때문에 급하게 먹고 나왔지만,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느긋하게 샴페인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도심속 샴페인 테이스팅룸

▲ G.H.마르텔의 샴페인 테이스팅룸 <사진= 김지선>

랭스와 에페르네처럼 상파뉴의 중심 도시에는 샴페인 하우스가 직접 자신의 샴페인을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하기도 한다. 추천할 만한 곳은 테탱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G.H.Martel&Co이다. 270에이커의 밭을 소유한 샴페인 하우스 G.H.Martel이 만든 샴페인만 준비되어 있다. 기본급인 넌빈티지 샴페인부터 블랑 드 블랑, 빈티지 등 고급 샴페인까지 시음할 수 있으며, 원하면 병 단위로 살 수 있다. 이곳의 장점은 샴페인 투어의 북적거림이 없다는 점과, 잔 단위로 여러 샴페인을 비교하며 마실 수 있는 점이다. 샴페인 투어를 참여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나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이런 테이스팅룸을 들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김지선 칼럼니스트는 영국 와인 전문가 교육 WSET Advanced 과정을 수료후 WSET Diploma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마셔도 끝이 없는 와인의 세계에 빠져 와인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으며,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아는 날이 오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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