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트나 편의점에서 샴페인이 보인다면, 그 첫 번째는 십중팔구 모엣&샹동일 것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것은 뵈브 클리코다. 압도적인 생산량과 탄탄한 유통 구조 덕에 이 두 샴페인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많이 판매되고 있다.

▲ 이들의 샴페인 생산량은 어마어마하다. 맨 위에 놓인 병에 써있는 '70'은 그 줄이 맨 안쪽부터 70번째 줄이라는 뜻이다. <사진= 김지선>

이뿐 아니라 모엣&샹동과 뵈브 클리코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면 두 곳 모두 18세기에 세워져 역사가 깊은 샴페인 하우스라거나, LVMH에 소속한 브랜드인 점 등이 있다. LVMH가 명품 패션 브랜드에 기반을 둔 그룹인 만큼 그들이 소유한 샴페인 하우스의 마케팅도 화려하다. 이들의 SNS나 기사 속의 광고 사진을 보고 있자면 이 두 샴페인이 파티에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유서 깊은 역사와 자본의 힘으로 이제 두 샴페인 브랜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샴페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 병에 전구를 붙여 놓아 침전물이 쌓인 모습이 보인다. 모엣&샹동 카브중 일부 <사진= 김지선>

뵈브 클리코는 랭스에, 모엣&샹동은 랭스의 아래쪽에 있는 에페르네에 있다. 하우스의 규모가 큰 만큼 샴페인 투어도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많은 샴페인 하우스는 일부 업계 관련 종사자에게만 하우스를 개방하지만, 가격대가 낮은(그래도 5만 원이 넘는다) 데일리급 샴페인을 강조하는 대규모 샴페인 하우스는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하여 카브를 둘러보는 것을 아예 관광 상품화했다.

먼저 뵈브 클리코부터 방문했다. 뵈브 클리코 하우스는 랭스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다. 역에서 걸어서 40분 거리인데, 랭스 시내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택시를 잡기 힘들고, 하우스까지 가는 버스가 많지 않다. 그래서 하우스까지 가는 길에는 문명의 힘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 택시도, 버스도 잡지 못해서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걸어갔다.

주황색 또는 노란색. 뵈브 클리코 샴페인 하우스

▲ 멀리서 봐도 뵈브 클리코에 다 왔음을 알 수 있다. <사진= 김지선>

시내에서 벗어날수록 샴페인 하우스가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니 마침내 주황색의 뵈브 클리코 간판이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많은 사람이 도착해서 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깨끗한 검은색 정장에 주황색 넥타이를 맨 샴페인 투어를 안내하는 가이드분이었다. 그를 따라 지하 카브로 들어갔다.

▲ 투어 가이드가 뵈브 클리코의 카브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김지선>

뵈브 클리코 하우스는 필립 클리코-뮈롱(Philippe Clicquot-Muiron)이 1772년에 설립했다. 이곳은 최초로 러시아에 샴페인을 납품하고, 로제 샴페인을 선보인 곳이기도 하며, 리들링(병 안의 효모와 와인이 접촉하도록 병을 돌려주는 작업)을 촉진하는 도구 푸피트르가 고안된 곳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일을 이룬 인물은 클리코 여사다. 그의 본명은 바르베-니콜 퐁사르당(Barbe-Nicole Ponsardin)이다. 그는 필립 클리코의 아들과 결혼했는데, 남편을 일찍 여의어 1805년부터 직접 샴페인 하우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설립 200주년이 되는 1972년에는 클리코 여사를 기리고자 '퀴베 라 그랑 담(cuvee La Grande Dame)'이라는 이름의 프레스티지급 샴페인을 출시했다. 또 '뵈브 클리코 비즈니스 우먼 어워드(Veuve Clicquot Business Woman Award)'를 신설하여 매년 독보적인 행보를 보인 여성에게 상을 수여해왔다. 이런 하우스가 LVMH의 소유가 된 때는 1986년이다.

맑은 샴페인을 위한 발명, 푸피트르

▲ 푸피트르에는 한 면에 60병이 들어간다. <사진= 김지선>

샴페인 투어는 샴페인을 저장하는 카브에서만 진행되었다. 커다란 동굴에 샴페인이 가득한 상징적인 곳이니,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곳이긴 하다. 동행한 가이드는 하우스의 역사부터 만드는 과정 및 방법까지 쉽게 알려준다. 푸피트르의 탄생지인만큼, 푸피트르만을 소개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이드분이 이곳에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왜 푸피트르가 필요했으며,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했다. 푸피트르는 샴페인을 맑게 만들고자 샴페인 안의 침전물을 제거하는 데 쓰인 도구다. 1818년에 클리코 여사와 직원이 함께 식탁에 구멍을 내어 처음 발명했다. 와인병을 푸피트르에 수평으로 꽂아 병목이 아래로 향할 때까지 병을 천천히 돌리며 효모 등의 찌꺼기를 병목으로 모은다. 그 다음에는 병목을 얼려 뚜껑을 제거하며 모인 침전물을 빼낸다. 푸피트르의 발명 이전에는 모래에 샴페인 병을 거꾸로 묻어서 침전물을 모았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푸피트르는 혁명과도 같은 도구였지만, 이 방법 역시 1970년대에 발명된 기로팔레트라는 기계에 리들링의 역할을 물려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는 일부 생산자는 시간과 노동력의 많은 투입을 감수하고 푸피트르를 사용한다.

▲ 백악질 토양으로 만들어진 카브 <사진= 김지선>

클리코 여사와 당시 하우스 구성원의 노력으로 이제는 맑은 샴페인을 당연하게 마시고 있다. 천장이 높은 카브를 걸어 다니며 이곳을 바쁘게 지나다녔을 그들의 발걸음을 상상해본다.

모엣&샹동 샴페인 하우스

세계로 수출되는 샴페인 4병 중 1병이 모엣&샹동일 정도로 이 샴페인은 가장 많이 팔리는 샴페인이다. LVMH에서 'M'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 샴페인의 역사는 17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클로드 모에(Claude Moët)가 설립한 하우스는 그의 손자의 사위인 피에르-가브리엘 샹동(Pierre-Gabriel Chandon)을 만나 모엣&샹동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다. 이후 창창한 성공 가도를 달리며 가장 오래된 샴페인 하우스 루인아트(Ruinart)를 인수하고, 이어 메르시에(Mercier)와 향수 브랜드 디올을 인수한다. 1971년에는 헤네시와 합병하여 모에 헤네시를 설립했고, 샴페인을 수출하는 데서 나아가 미국 나파밸리와 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호주, 영국 등에 스파클링 회사를 세운다. 1987년에 루이비통에 합병된 이후에는 뵈브 클리코, 앙리오(Henriot) 등을 추가로 인수했다. 27년째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샴페인으로 선정된 것도 모에&샹동의 브랜딩에 일조했다. 비록 와인 애호가 사이에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편이지만, 이런 적극적인 확장과 마케팅으로 인해 모에&샹동은 많은 에게 '샴페인'이라고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었다.

▲ 모엣&샹동 하우스 앞의 돔 페리뇽 동상 <사진= 김지선>

모엣&샹동 하우스 앞에는 17세기의 수도승 돔 페리뇽의 동상이 서 있다. 이 브랜드의 프레스티지 샴페인이 돔 페리뇽이기 때문이다. 돔 페리뇽의 추종자가 그를 샴페인을 발명한 사람으로 기록한 탓에 한때 그가 샴페인의 발명가로 알려졌으나, 후일에 첫 샴페인 생산은 16세기 초반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에는 와인을 배럴째로 수입했는데, 영국인들은 샹파뉴 지역의 스틸 와인을 고국에 들여온 후 2차 발효를 가하여 샴페인을 만든 것이다. 돔 페리뇽은 오히려 스틸 화이트 와인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적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돔 페리뇽이다. 이런 그의 이름을 따 최초의 프레스티지 샴페인을 내놓은 곳은 메르시에였으나, 이후 모엣&샹동으로 넘어가 프레스티지급에 맞게 생산 과정과 포장, 가격을 차별화하여 1921년 빈티지를 1936년에 처음 출시했다.

▲ 모엣&샹동의 내부 카브 <사진= 김지선>

아쉽게도 돔 페리뇽 동상은 모엣&샹동 하우스에 있었으나 돔 페리뇽 와이너리는 다른 곳에 있었다. 모엣&샹동도 투어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가이드가 투어를 진행했다. 어디서 무엇을 설명할지 짜인 채로 진행돼서 투어는 전반적으로 물처럼 매끄럽게 흘러갔다. 뵈브 클리코와 마찬가지로 가이드분은 샴페인을 만드는 대략적인 과정을 카브를 다니며 설명했다.

뵈브 클리코, 모엣&샹동을 떠나며

▲ 투어는 한 잔의 샴페인으로 끝난다. <사진= 김지선>

두 샴페인 하우스 모두 샴페인에 대한 기초지식을 충분히 전하며, 볼거리를 잘 준비해 놓았다. 그러나 샴페인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누군가 샴페인 투어를 간다고 하면 한 곳만 가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둘 중 특정 샴페인을 선호한다면 고민 없이 그곳을 가면 되지만, 둘 다 잘 모른다면 뵈브 클리코를 더 추천한다. 클리코 여사나 푸피트르 등 하우스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내게 이 두 곳은 샴페인 자체보다 LVMH의 강렬한 색채 브랜딩과 성공적인 지역 관광화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지선 칼럼니스트는 영국 와인 전문가 교육 WSET Advanced 과정을 수료 후 WSET Diploma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마셔도 끝이 없는 와인의 세계에 빠져 와인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으며,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아는 날이 오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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