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와인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화이트면 화이트요, 레드면 레드구나'라며 오로지 와인의 정보를 시각에만 의존한 후 재빠르게 마시는 일이 중요했다. 마셔봐야지만 와인의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와인을 공부하기 시작하고서는 마시지 않고도 맛을 추측하는 법을 배웠다. 와인이 만들어진 지역이라던가 사용된 품종은 어느정도 풍미에 대한 정보를 준다. 여기에 빈티지나 포도 재배, 양조 방법까지 알면 와인의 맛을 더 자세히 짐작한 후 와인을 살지 말지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와인을 마시기 전에 맛을 짐작하는 요소 중 가장 쉬운 것은 '품종'이다. 전 세계에서 널리 재배되는 포도 품종 몇 가지만 알아도 와인의 기본적인 특징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소비뇽 블랑은 푸릇푸릇한 풀과 레몬 향이 나고, 카베르네 소비뇽은 타닌이 거칠고 체리나 블랙베리 등 검은 베리의 향을 풍긴다. 미국이나 호주, 칠레 등이 와인 라벨에 포도 품종을 표기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와인에 지역 이름만을 적어 소비자에게 와인 산지에 대한 지식을 요구했다면, 미국 등은 포도 품종을 기재하여 더욱 직관적으로 와인을 소개했다. 와인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워낙 많아서 품종만으로 와인의 스타일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품종이 와인을 아는 첫 단계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샹파뉴 지역도 포도 품종을 표기하지 않을까?

▲ 샹파뉴 마을 어딘가 <사진= 김지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포도의 블렌딩 비율에 따라 표기하기도 하고, 표기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러 품종을 혼합하여 만든 대다수의 넌빈티지 샴페인은 포도 이름을 적지 않는다. 반면, 샤르도네로만 만든 샴페인은 '블랑 드 블랑',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로만 만든 샴페인은 '블랑 드 누아'라고 표기한다. 포도 이름 없이 이 두 단어만 보고도 어떤 품종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샴페인에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품종은 피노 누아, 피노 뫼니에, 샤르도네다. 여기에 추가로 허용되는 포도는 피노 블랑, 피노 그리, 아르반, 프티 메슬리에가 있는데, 이들은 아주 소량만 재배된다. 많이 알려진 생산자 중 이런 마이너 품종을 다루는 곳은 아그라파(Agrapart)다. 샴페인의 대표 품종 3개에 피노 블랑과 프티 메슬리에를 더해 콩플랑테(Complantée) 샴페인을 생산하고 있다. 절대다수의 샴페인 하우스와 생산자들은 앞서 말한 대표 3개 품종만을 사용한다.

피노 누아

▲ 샹파뉴에서는 피노 누아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사진= 김지선>

가장 많이 재배되는 포도는 단연 피노 누아다.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포도의 균형과 바디감, 과일의 깊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부르고뉴에서 이미 기르기 까다롭기로 소문난 품종인 만큼, 샹파뉴 지역에서도 피노 누아를 기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샹파뉴의 백악질 토양과 서늘한 기후는 더위와 곰팡이에 민감한 피노 누아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피노 누아는 발레 드 라 마른과 몽타뉴 드 랭스에서 잘 자라고, 특히 발레 드 라 마른 내의 마을 아이(Aÿ)가 프리미엄급 피노 누아 산지로 유명하다. 이곳에 볼랭저, 필리포나 샴페인 하우스가 있다.

샤르도네

샤르도네는 전체 생산량에서 약 30%를 차지한다. 지명에 쓰여있는 것처럼 코트 데 블랑에서 잘 자라며 코트 데 블랑 내의 아비즈, 크라망 마을 등이 유명하다. 일찍 싹을 틔우는 탓에 봄서리에 민감하므로 재배할 때 많이 신경써야 하는 품종이다. 샤르도네는 기후와 토양의 성질에 따라 무척 다양한 스타일로 발전하는 품종인데, 샴페인에 한정지어 말하자면 이 품종은 가벼운 바디감에 산도가 높고 꽃향과 감귤류, 사과 등의 과일 향을 드러낸다. 샤르도네는 숙성력이 좋아서 블랑 드 블랑 샴페인의 빈티지가 오래될수록 패션 푸르트, 파인애플, 망고 등의 열대 과일 향과 토스트, 커피 풍미를 보여준다.

피노 뫼니에

피노 뫼니에는 32%를 차지하는 품종이다. 피노 누아와 마찬가지로 발레 드 라 마른 지역에서 특히 잘 자라며, 풍부한 과일 향을 더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처럼 피노 누아와 가까운 친척 격인데, 이 품종에 대한 최초 기록은 15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포도다. 피노 뫼니에로만 만든 것도 '블랑 드 누아'라고 불리는데, 피노 뫼니에로만 만든 품종은 기포의 힘이나 풍미의 강도, 숙성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단일 품종 샴페인보다는 다른 품종과 함께 있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일찍 익고 추위에도 강해서 샹파뉴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품종이며, 신선하게 구운 빵, 캐러멜, 얼디향, 과실향을 더해준다. 

김지선 칼럼니스트는 영국 와인 전문가 교육 WSET Advanced 과정을 수료 후 WSET Diploma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마셔도 끝이 없는 와인의 세계에 빠져 와인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으며,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아는 날이 오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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