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대리의 한식탐험 2] 위스키와 브랜디의 형제, 증류식 소주

승인2018.05.23 09:00:35

영화 데드풀 2의 주인공 라이언 레이놀즈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데드풀 2가 흥행하면 소주 1병을 원샷하겠다고 공약해 화제가 되었다. 할리우드 스타가 우리나라 술인 소주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 흥미로운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공약이나 벌칙으로 내세우는 '소주 1병 원샷'을 얘기하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외국의 언어나 문화적 요소를 언급하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는 좋은 수단이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이 인터뷰에서 소주를 그 수단으로 삼았다.

이처럼 소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술이다. 한국인들이 많이 마시는 술일뿐 아니라, 한국 밖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의 술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소주는 전통 소주와는 다르다. 수백 년간 마셔온 전통 소주는 증류식 소주로 오늘날 초록병의 희석식 소주와는 만드는 과정부터 다르다. 만드는 과정이 다르니 맛과 향도 다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 같지만 생소한 전통 소주. 이번 솜대리 칼럼에서는 이 전통 소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 속 소주는 희석식 소주로 전통 소주와는 다르다.

불사를 소(燒), 술 주(酒). 소주의 한자어를 그대로 풀이하면 불사른 술, 증류주다. (주세법에서는 증류주를 당분의 비율이나 재료 첨가 여부에 따라 소주, 브랜디, 위스키 등으로 세부 구분한다.) 증류주는 증류를 통해 도수를 높인 술이다. 알코올은 효모의 활동을 통해 발생한다. 하지만 효모는 알코올 도수가 20도 가까이 되면 활동을 중단하기 때문에, 효모 발효만으로는 알코올 도수 20도 이상의 술을 만들기 어렵다. 이 이상으로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 증류다. 알코올은 물보다 낮은 온도에서 끓는다. 술을 끓이고, 증기가 된 알코올을 모아 높은 도수의 증류주를 만들었다. 

이런 증류주는 세계 각지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양주도 대부분 증류주의 범위에 들어간다. 위스키는 보리나 옥수수 등 곡류를, 브랜디는 포도 등 과일을 이용해 술을 빚고 증류한 것이다. 코냑은 프랑스 코냑 지방에서 만들어진 브랜디다. 이외에도 다양한 증류주가 있는데, 테킬라는 다육식물인 아가베를, 보드카는 곡류를, 럼은 사탕수수를 주재료로 한 증류주다. 우리가 아는 중국의 백주도 증류주고, 일본의 소주도 우리나라 증류식 소주와 거의 동일한 술로 증류주다. 증류주는 페르시아에서 최초로 발명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 세상엔 다양한 증류주와 다양한 먹는 방법이 있다. 멕시코 현지에서는 테킬라를 벌레 가루, 오렌지와 곁들여 마시기도 한다.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증류주는 몽골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파되어 소주가 되었다. 소주는 고려시대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흔적 중 하나다. 개성, 안동, 제주도 등에는 몽골군이 주둔해 있었다. 몽골군 주둔지에는 소주 제조장이 있었는데, 이 지역들을 위주로 소주 제조법이 전파되었다. 전통 소주는 주로 쌀으로 만들었다. 쌀로 술을 빚은 후 소줏고리라는 옹기를 활용해 증류한다. 먹을 쌀도 부족하던 시절, 술은 사치품처럼 취급되었다. 증류를 거치면서 다른 술에 비해 양이 확연히 줄어드는 전통 소주는 더더욱 귀한 술이었다. 때문에 왕가나 사대부가에서 주로 마셨다. 집안마다 제사를 지내고 손님 대접을 위해 빚어왔다. 자연스레 각 지역, 집안마다 고유의 레시피가 발전했다. 쌀의 수요를 줄이기 위해 조선시대 수차례 금주령이 시행되었지만 전통 소주의 인기는 변함이 없었다. 금주령을 가장 엄격하게 시행한 영조조차 남몰래 전통 소주를 마셨다는 설이 있다.

▲ 소줏고리의 일종인 고소리. 가마솥에 밑술을 넣고, 소줏고리를 올린 후 그 위에 찬물을 담는다. 밑술을 끓이면 소주가 옆의 좁은 주둥이로 빠져나온다. (사진출처: 국가문화유산포탈)

전통 소주 고난의 역사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일제 식민 정부가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술에 높은 세금을 매긴 뒤 허가를 받은 사람만 술을 빚을 수 있게 하는 한편 집에서 술 빚는 것을 엄격히 단속했다. 집에서 빚어 마시던 술을 어쩔 수 없이 사 마시게 되면서 술을 만드는 주조회사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일부 주조회사들이 소주 제조 원가를 낮추기 위해 희석식 소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희석식 소주도 증류를 거치는 술이긴 하지만 증류식 소주와는 다른 술이다. 증류식 소주(전통 소주)는 쌀로 만든 술을 증류해 원재료의 맛과 향을 살리고 알코올 도수를 높인다. 반면, 희석식 소주는 전분이 있는 고구마, 타피오카 등의 작물로 빚은 술을 수차례 증류해 알코올 도수 85% 이상의 에틸알코올을 만들고, 여기에 물을 섞어 알코올 도수를 낮춘 후 감미료를 섞는다. 맛과 향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희석식 소주가 등장하긴 했지만, 한동안은 증류식 소주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60년대, 쌀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쌀로 술 빚는 것을 규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쌀로 빚은 증류식 소주를 만들 수 없게 되었고, 그 자리를 고구마나 타피오카로 만든 희석식 소주가 대체했다. 증류식 소주를 만들던 장인들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80년대부터 규제가 풀렸지만 증류식 소주의 명맥은 이미 거의 끊긴 후였다.

그랬던 증류식 소주 시장이 최근 급격히 변하고 있다. 2017년 증류주 시장은 2012년 대비 3배 성장한 것으로 예측된다. (국세청 자료) 대형 주류회사들은 앞다투어 증류식 소주를 선보이고 있다. 술의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주류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고급 위스키인 싱글몰트 위스키 바가 2010년 10개에서 2016년 250개로 증가했다. (한국 위스키 협회 자료) 증류식 소주 시장의 성장도 같은 맥락이다. 고급 술집과 바에서 우리나라 증류식 소주를 다루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증류주를 위주로 다루는 바도 생기고 있다. 깔끔한 맛과 부드러운 곡물향의 소주는 진한 오크향의 위스키와 무향의 보드카 등 다른 증류주들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시 한번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 대형 마트 주류 코너. 대형 주류회사에서도 증류식 소주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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