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스터셰프의 우승자에서 쿠킹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최광호를 만났다 <사진=소믈리에타임즈 DB>

2014년 방영된 '마스터셰프 시즌3‘에서의 눈에 띄는 한 남성이 있었다. ’무직‘이라는 소개 타이틀을 가지고 등장한 그는 점차 실력을 주목받아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계속해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경험을 밑거름 삼아 자신만의 ’롱텀(Long-Term)'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에서 마스터셰프 우승자 ‘최광호’ 쿠킹 스페셜리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5. 인생의 롤 모델이나 셰프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A : 다 배울 점이 많고 다들 각자 다른 점이 있지만 저는 이제 인생의 롤 모델은 아버지에요. 음식에 영향을 가지게 된 것도 미식가인 아버지입니다. 어렸을 때는 불만이 많았던 게 음식점을 가면 항상 저희는 선택권이 없어요. 약간 답정너 스타일(웃음). 결국 본인이 드시고 싶었던 데를 가는데 결국 다 맛있는 곳이었어요.

여름에는 민어를 먹어야 하니까 자연산 민어 횟집을 가는데, 허름한 곳이면 어렸을 때는 불만이었죠. 어린 친구들이 좋아하는 맛이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지금까지 밖에서 회를 잘 안 먹어요.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해서 배에서 고기를 잡아요. 제 고향이 전라도 광주인데, 광주 간다고 하면 저녁에 낚시해서 배에서 손질하고 숙성한 회를 가져오세요. 자연산 회의 감칠맛과 탄력과 숙성 그리고 아버지가 음식 실력이 좋아서 다른 회를 잘 안 먹게 돼요.

저는 아직도 집밥 먹는 걸 좋아해요. 혼자 살고 있으니까요. 갈치 같은 것도 조금 있으면 철인데 제주도를 가서 배 타고 갈치를 잡아 오시거나 갈치회도 떠먹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접하기 힘든 사슴 고기, 염소 고기, 개구리 튀김, 민물고기, 바닷고기를 접해서 입이 약간 남들보다 약간 예민한 편인 것 같아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또 아버지가 근면성실하시고 자수성가하셨는데, 그래서 가족들만을 위해서 일을 많이 하시고 희생하시는 모습을 보면 되게 많이 배울 점이 많아요. 지금도 되게 보고 싶어요. 존경하는 롤모델이자 셰프죠.

Q6. 요리 쪽 준비를 하시면서 정체가 온 순간들이 있었나요?

A : 처음에 군대를 갔다 와서 다니던 학교에 대해 고민이 들었습니다. 학교 자퇴를 고민하다 신촌에 있는 와인바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휴학 상태였는데 제가 요리에 잘 맞는지 보려고 했어요. 감사하게도 경력도 전혀 없던 제게 사장님이 열었던 와인바 3호점 주방을 넘겨주셨어요. 와인바라 음식이 주는 아니었지만, 파스타, 스테이크, 샐러드 등 제가 낸 음식들이 빈 접시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희열을 느꼈어요. '내가 만든 음식이 뭐라고 돈을 주고 사 먹지? 근데 다 먹네?' 그러면서 1년을 일했어요. 그러다가 벽이 오더라고요. 공부한 적이 없으니까 좋아하고 열정만으로 하는 건 한계가 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해야겠다 싶더라고요.

두 번째 정체는 호주에서 제가 그때 '어드벤스드 디플로마(Advanced Diploma)라는 전문 학사를 땄어요. 그걸 딴 뒤 제가 처음 CJ에 입사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학위가 인정이 안 돼 지원할 수 없었어요. 그때 되게 막막하고 정체가 왔습니다.

유학까지 다녀오고 자신감도 생긴 상태라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현실을 직시한 거죠. 그래서 3개월 정도 슬럼프가 왔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해야 될까?' 그때가 약 28살이었는데 대학 동기들은 졸업하고 취직해서 대기업에 다 다니고 있는데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럼프 중 친한 형이 운영하는 곳에서 알바를 다시 시작했어요. 정직원을 하면서 메뉴를 만들어가고, 그다음에는 친구가 일하던 썬앳푸드 ‘세레브 데 토마토’라는 매장에 면접도 보고 수습으로 있다가 정직원으로 일했어요.

그러다 마스터셰프를 오디션 봤어요. 이전에 한번 오디션을 봤는데 떨어졌었어요. 회사에 다니다가 또 한다기에 30살 되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자 싶었어요. 그러다 감사하게도 우승도 하고요. 그러다 또 정체가 왔습니다. 저한테 거품이 많이 낀 것 같고 부담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시드니로 돌아갔습니다. 제게 부족한 점이 많이 느껴지니까 거의 도망친 것도 있죠.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 부담감이 많이 사그라들어서 다시 시작하게 됐죠. 처음에 프리로 일을 했을 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이 들었어요. 제가 일 중독이라 가만히 있질 못하거든요. '내가 이게 하는 게 맞는 건가?', '기대하는 게 이런 게 맞나?' 남의 시선에 신경 쓰게 되고 슬럼프가 왔었어요.

▲ 현재까지 오기 전, 많은 정체 및 시행착오도 있었다. <사진=소믈리에타임즈 DB>

Q7. 이쪽 일을 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다면?

A : 이번에 아르헨티나 대사관과 쉐라톤 호텔과 협업해서 진행한 아르헨티나 '갈라 디너' 경험이었어요. 이번에 ‘갈라 디너’는 압박감이 심하더라고요. 약 150인분을 준비했는데 앙트레로 된장 맛을 낸 곡물 샐러드, 에피타이저로 해신탕, 메인으로 갈비에다가 시래기랑 감자를 된장을 넣어 매쉬 만들고, 누룽지 튀겨서 곁들이고 디저트로 대추, 밤 몽블랑을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코스 요리에서 리필은 잘 안 하는데 해신탕을 10번 넘게 리필하셨어요. 대사관 관계자들이 다 오시는 자리였고 한쪽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높으신 분들이 온 자리였는데 굉장히 즐겨주셔서 감사했어요. 나간 음식이 빈 접시로 들어오는 희열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비슷한 맥락으로 인상이 남는 건 2014년도 때 LA에서 CJ에서 주최한 ‘K-Con’에서 국가비 씨와 함께한 VIP 케이터링이에요. 그때 둘이 '엠카운트다운' 녹화를 도중에 잠깐 들어가서 보는데 소름이 돋았어요. 관중석엔 외국인들이 다 찼었는데 한국 노래를 다 따라 부르는 걸 보고 한류라는 게 대단한 거구나 느꼈죠. 홀 밖에 부스엔 한국 음식이 깔려있었는데, 모두 함께 즐겨주시고 한국 노래에 맞춰 케이팝 댄스를 추고 계시는 사람들도 보고 자랑스럽고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보람 됐어요.

08. 마지막으로 요리 쪽의 꿈을 꾸고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A : 대책 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저는 약간 성격이 극단적이에요. 학교를 다니다가 아니다 싶으면 자퇴하고 제가 안 맞다 싶으면 판단을 빨리 내리는 편이죠. 작은 건 오래 걸리는데 큰 건 쉽게 내리곤 해요. 항상 얘기하는데 포기하는 것도 큰 용기라고 생각해요.

요리를 한다는 것이 꼭 필드(주방)에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잡지사에서 에디터도 할 수 있는 거고 푸드 스타일링도 할 수 있고 메뉴 개발도 할 수 있는 거고 다양한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괜한 미련으로 남는 것들이 아까울 수는 있지만 앞으로 갈 날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내가 왔던 길이 잘못되거나 틀린 길이 아닌 단지 돌아온 것뿐이에요. 하지만 앞으로 더 돌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소믈리에타임즈 유성호 기자 ujlle0201@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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