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서도 와인이 나와?

4년 전 유럽 여행에서 처음 빈을 들렀을 때, 비엔나커피는 없고 와인은 가득하던 오스트리아의 현실을 맞닥뜨리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와인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없던 나는 한 슈퍼의 와인코너에서 '와, 와인 많다~'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가고 말았는데, 참 이때의 기억 때문에 오늘도 수년 전의 내 머리를 쥐어박게 된다. 무엇 때문에 나는 와인 한 병도 못 사 마실 정도로 바빴던 걸까?

▲ 오스트리아의 와인 산지는 수도인 빈을 포함한 동부와 동남부에 몰려 있다. <사진= 김지선, '더월드아틀라스오브와인(휴 존슨 지음)' 249쪽 발췌>

우리나라에는 아직 인지도가 덜하지만, 알고 보면 오스트리아도 매력 있는 와인이 많은 곳이다. 세계적으로 인기 좋은 품종인 리슬링을 포함해 이 나라만의 독자적인 포도로 다양한 와인이 만들어지고 있다. 1985년 일부 생산자들이 고급 와인의 맛을 내려 저렴한 스위트 와인에 부동액을 넣은 사건으로 전 세계에서 오스트리아 와인의 수출을 금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꾸준히 포도 품종의 DNA 연구성과를 내고 신품종 개발의 선두 자리에 서며 오스트리아는 와인 산지로서의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에서 벗어나 새로운 맛을 보고 싶다면 오스트리아가 답이다. 품종도, 지역도 하나같이 낯설지만, 경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일단 마셔본다면 모험을 선택한 자신을 칭찬하게 될 것이다.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

▲ 오스트리아는 유럽권에 있음에도 와인 라벨에 친절하게 포도 품종을 표기한다. <사진= 김지선>

그뤼너 벨트리너는 오스트리아 재배에서 30%를 차지하는 국가 대표 품종이다. 드라이한 스타일로 생산되며, 잠재 알코올 도수는 10.5%에서 15%까지 폭넓은 편이다. 주로 드라이하게 만들어지며 바디감이 강하다. 감귤류 껍질, 아이리스, 렌틸콩, 껍질 콩(연두색 콩깍지까지 함께 먹는 콩), 담배, 후추, 육두구 등의 향이 나는데, 품종 자체보다 포도밭의 특징을 살리는 경향이 있다. 최고급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은 수십 년의 숙성 잠재력도 있다. 포도알의 크기와 색, 포도송이의 모양은 다양하며 그 결과 와인의 맛도 천차만별이다. 바하우, 캄프탈, 크렘스탈, 바인비에탈, 바그람, 빈 지역에서 향기로운 그뤼너 벨트리너 와인이 생산된다. 인근 국가인 체코와 헝가리, 오스리아에서 한참 먼 호주, 뉴질랜드, 북아메리카에서도 재배된다.

리슬링

그뤼너 벨트리너 다음으로 품질이 좋은 와인으로 유명하지만, 재배 면적은 전체 포도밭의 5%에 불과하다. 오스트리아 리슬링도 역시 테루아를 반영하여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보통은 알코올 도수 13%에서 13.5% 사이의 드라이한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독일 리슬링보다 산미가 낮고 향도 덜 강렬한 편이다. 그러나 그뤼너 벨트리너와 마찬가지로 최고급 와인은 후미로 갈수록 풍미가 강해진다. 알자스 리슬링보다는 덜 기름지고 독일, 알자스의 최고급 리슬링보다 빠르게 숙성한다. 캄프탈이나 빈을 포함하여 남부 오스트리아의 바하우(Wachau)에 있는 테라스형 포도밭에서 많이 재배된다.

벨쉬리슬링(Welschriesling)

그뤼너 벨트리너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는 화이트 품종으로, 리슬링보다 2배 넓은 곳에서 재배된다. 부르겐란트에 있는 노이제들러지의 귀부 와인 산지에서 빛을 발하는데, 이 지역의 핵심 생산자들은 복합미가 뛰어난 드라이와 오프 드라이 스타일로도 만든다. 바인비에탈, 슈타이어마크(Steinermark)에서도 잘 자라며 오스트리아 젝트를 만들 때도 사용된다. 귀부병에 걸리면 트로큰베렌아우스레제(TBA) 수준으로 포도의 당도가 높아지는데, 이 포도로 만든 TBA가 독일의 TBA만큼 숙성력이 뛰어나지는 않다. 이름에 '리슬링'이 들어가지만 리슬링과는 전혀 관계없는 품종이다. 벨쉬리슬링의 '벨쉬'는 독일어로 '외국'을 의미한다. 이를 미루어 보면 최소한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에서 기원한 품종임을 알 수 있다.

이 포도는 건조한 기후와 따뜻한 토양에서 가장 잘 자라며 서늘한 기후에서는 무척 높은 산도를 유지한다. 만생종이라 긴 숙성 기간이 필요하며 가벼운 바디감의 포도 자체의 향이 풍부한 와인이다. 

이러한 특성덕에 벨쉬리슬링은 동유럽에서 널리 재배된다. 국가마다 이 품종을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헝가리에서는 올라즈 리슬링(Olasz Rizling)으로 불리며,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등도 개별 명칭이 존재한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단일 품종으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포도 중 하나인데, 이곳에서는 리슬링 단어가 들어가지 않고 다소 생소한 '그라세비나(Graševina)'라고 불린다. 오스트리아보다 벨쉬리슬링을 3배 많이 생산한다.

바이스부르군더(Weissburgunder)

피노 블랑의 오스트리아 이름이다. 미묘한 복합미를 보여주는 품종인데, 크림 같은 풍미와 신선함이 조화를 이룬다. 바이스부르군더와 샤르도네는 전체 재배지의 7%를 차지한다. 소비뇽 블랑은 슈타이어마크의 주요 품종으로 재배되고 있다.

이밖에 뮈스카 블랑 다 프티 그레인의 변종이자 오스트리아에서 긴 역사를 보낸 겔버 뮈스카텔러(Gelber Muskateller), 로터 트라미너(Roter Traminer), 그라우부르군더(Grauburgunder)로 불리는 피노 그리, 로터 벨트리너(Roter Veltliner), 네우부르거(Neuburger, 로터 벨트리너와 실바너의 교배종)가 있다.

쯔바이겔트(Zweigelt)

▲ 오스트리아의 대표 적포도 품종 쯔바이겔트 <사진= 김지선>

적포도 품종 중 가장 많이 생산되는데, 전체 재배 면적의 14%를 차지한다. 그뤼너 벨트리너와는 달리 오스트리아 내의 어느 와인 산지에서나 볼 수 있다. 이 품종은 1922년에 쯔바이겔트 박사가 블라우프랭키쉬(Blaufränkisch)와 생로랑(St Laurent)을 교배하여 만든 품종인데, 기르기 쉬운 덕에 농가에서 인기가 좋다. 생로랑보다 싹을 늦게 틔우고 블라우프랭키쉬보다 일찍 익기 때문이다.

단일 품종으로 사용될 경우 과일 향이 두드러지는데, 다른 토착 품종이나 보르도 품종과 블렌딩 되는 경우도 있다. 숙성력도 있지만 보통 조기 소비용으로 만들어진다.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서부, 캐나다, 심지어 일본의 훗카이도에서도 생산된다.

블라우프랭키쉬(Blaufränkisch)

오스트리아 전체 재배 면적의 7%를 차지하는데, 숙성 잠재력이 있으며 검은 과일, 담배, 송진 잎, 검은 후추 향이 난다. 부르겐란트에서 가장 많이 자란다. 세부 지역인 노이제들러지 일부 산지에서 블라우프랭키쉬와 피노 누아로 와인 인지도를 회복하고 있다. 블라우프랭키쉬로 유명한 생산자는 한스 존(Hans John), 조세프 페피(Josef Pepi) 등이 있다.

생 로랑(St Laurent)

생 로랑의 뿌리가 오스트리아인지는 알려있지 않으나 현재는 오스트리아에서만 자라고 있다. 전체 재배 면적의 2% 이하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피노 누아처럼 기르기 번거롭다. 고급 생 로랑 와인은 풍부한 과일 향과 부드러운 질감을 보여준다. 주로 빈의 남쪽에 있는 지역 테르멘레기온(Thermenregion)에서 재배된다.

기타 품종

블라우부르군더(Blauburgunder)로 불리는 피노 누아는 전체 재배 면적 중 1.3%만을 차지한다. 이외에 블라우부르거(Blauburger), 블라우어포르투기저(BlauerPortugieser)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와인 산지

오스트리아의 와인 생산지는 크게 네 곳으로 나뉜다. 가장 북쪽에 있는 니더외스터라이히(Niederösterreich), 수도이자 와인 생산지인 빈, 동쪽의 부르겐란트, 남동쪽의 슈타이어마크가 오스트리아의 와인 산지로 불린다. 그러나 이런 큰 단위의 지역명보다는 세부 와인 산지가 더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바인비에탈이나 크렘스탈이 니더외스터라이히보다 유명한데, 이런 세부 산지는 와인병에 표기될 수 있는 원산지 통제 명칭(오스트리아에서는 이를 DAC로 부른다)이기 때문이다. 단, 부르겐란트는 예외적으로 세부 지역명보다 더 자주 와인 라벨에 표기되곤 한다. 현재 오스트리아의 공식 DAC의 수는 13개다.

니더외스터라이히(18,145ha)

▲ 캄프탈 DAC에서 생산한 리슬링 와인 <사진= 김지선>

니더외스터라이히에는 캄프탈, 크렘스탈, 바하우, 바인비에텔, 바그람, 트라이젠탈, 테르멘레기온, 카르눈툼 등의 세부 산지가 있다. 주로 그뤼너 벨트리너와 리슬링 등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며, 빈 남부에 위치한 테르멘레기온과 카르눈툼은 생로랑, 피노 누아, 쯔바이겔트 등 가벼운 바디감의 레드 와인을 생산한다. 그러나 DAC 산지는 캄프탈, 크렘스탈, 바인비에텔, 트라이젠탈 뿐이다.

빈(637ha)

빈은 비에너 게미슈터 사츠 DAC만 있는 규모도, 생산량도 가장 적은 곳이다. 도시 부근에 있는 포도밭이라 보여주기식 와인 산지로 보일 수 있으나, 이곳에서 품질 좋은 와인이 생산된다. 해당 DAC 지역의 포도밭에서는 정부가 지정한 품종 중 최소 3개의 고급 청포도가 함께 재배되어야 하며, 포도밭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품종은 50%를 넘으면 안 된다. 가장 조금 생산하는 품종도 전체의 10% 이상 재배되어야 한다. 주요 품종은 부르고뉴 화이트 품종, 그뤼너 벨트리너, 리슬링 등이 있다.

부르겐란트(13,100ha)

부르겐란트는 대륙성 기후대에 속하는 판노니안(Pannonian) 평원의 영향으로 풀바디 레드 와인을  생산한다. 그러나 남부의 아이젠베르크(Eisenberg)에서는 인근한 슈타이어마크의 신선한 기후 덕에 신선하고 우아한 블라우프랭키쉬 와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노이제들러지의 남부에 있는 시빙켈(Seewinkel)에는 포도밭을 둘러싸고 흐르는 크고 작은 강들이 있어 귀부 와인에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덕분에 BA, TBA 등의 최고급 스위트 와인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DAC 산지는 노이제들러지, 레이타베르크, 로잘리아, 미텔부르겐란트, 에이젠베르크가 있다.

슈타이어마크(4,633ha)

오스트리아 남쪽에 위치하나 이곳은 영어 표현으로 스티리아(Styria)라고도 불린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산지는 소비뇽 블랑, 피노 블랑 등을 재배하는 쉬드슈타이어마크(Südsteiermark)다. 기후는 서늘하고 배수가 좋으며, 산지가 가파른 덕에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피노 블랑, 벨쉬리슬링, 무스카텔러, 쯔바이겔트가 잘 자란다. DAC 산지는 불칸란트 슈타이어마크, 아이젠베르크, 베스트슈나이어마크, 쉬드슈타이어마크가 있다. 베스트슈타이어마크는 토착 품종인 블라우어 바일드바체(Blaue Wildbacher)를 이용한 로제 와인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김지선 기자는 국제 와인 전문가 자격증 WSET 어드밴스드 과정을 수료후 WSET 디플로마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와인 강의와 컨텐츠를 통해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느끼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지선 기자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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