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성환 밥소믈리에

왜 쌀 품종명에는 스토리가 없을까? 정말 이름을 그런 식으로밖에 짓지 못하는 것일까?

품종명은 모두 다 촌스러울까?

스토리나 의미가 담긴, 소비자에게 더 잘 알릴 수 있는 그런 이름을 짓지 않는 것인가?

60년 전에 만들어진 ‘고시히카리’라는 품종명에도 의미와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냥 막 지은 이름이 아니다. 우리 쌀에는 왜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것일까? 왜 그런지 궁금한 모든 분을 위해 우리 쌀의 이름이 왜 이런지 말하려 한다.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면, 쌀을 개발한 육종연구원은 마치 부모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듯이 고심을 하여 새로운 벼에 이름을 지어준다고 한다. 육종연구원이 여러 개를 만들어 제시하면 ‘주요 농작물 종자심의회’가 그 중에서 검토하여 정하게 된다. 이렇듯 쌀 품종명은 엄청나게 고민하고 심의까지 거쳐 만들어진 이름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고민하고 심의까지 거쳐 만든 것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연구원들은 연구에나 매진하고 마케팅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데 보통 1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10년간 온갖 고생과 노력으로 만든 품종에 그렇고 그런 이름을 붙이고 싶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냥 관리하기 편하게 하려고, 관리자의 입장만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쌀이 세상에 나가서 소비자들에게 어떤 첫인상으로 다가가게 될지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 쌀 이름은 왜 다 그럴까?

필자도 연구원이지만 내가 개발한 제품의 이름을 내가 짓지 않는다. 다 마케터나 전문 담당자가 한다. 물론 좋은 제품명을 지을 수 있도록 제품의 특징, 제조 기술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소비자에게 제품을 최대한 잘 알릴 수 있도록 감성을 가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육종연구원은 연구원일 뿐이지 무슨 철학원 작명가가 아니다. 그러니 쌀 이름 수준이 다 이런 것 같다.

우리 아이들만 봐도 그렇다. 물론 부모님이 직접 아이의 이름을 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 돈을 내고 이름을 지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 직접 짓는 경우도 작명학에 맞춰 최대한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한다. 요즘에는 이름을 짓는 애플리케이션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1916년에는 그냥 교배된 양친의 이름을 하나씩 가져온 후 번호를 붙이는 식이었고, 계통명을 체계화했다는 1930년부터는 육성지의 지명에 연번호를 붙이는 식이었다.

그렇다 보니 수원 00호, 철원 00호, 남양 00호 이런 식으로 계통명이 그냥 그대로 품종명이 되었다.

육성지 지명 아니면 그냥 교배 양친의 이름을 따온 것이 전부였다. 그 후 유신정권 시대에는 국가의 슬로건을 따라 만든 ‘재건’이니 ‘통일’, ‘유신’ 이런 이름을 사용했다.

일제 강점기 때는 그렇다고 쳐도 이런 식의 작명법은 해방이 된 후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1980년대 이후 조생종 품종에는 산 이름을 붙여서 오대, 소백, 설악 같은 품종명이 지어졌고, 중만생종에는 강 이름을 붙여 ‘동진’, 낙동, 섬진, 금강, 영산 등의 품종명이 생겼다. 산과 강 이름을 막 가져다 쓰다 보니 결국에는 우리나라의 산과 강 이름을 다 써버리게 되었다.

그 후에는 벼 품종의 특징을 나타낸 이름이 지어졌는데, 예를 들면 병충해나 재해에 대한 저항성이 강함을 나타내는 “청청(靑靑)벼”, “삼강(三剛)벼”, “상풍(常豊)벼”, “대안(大安)벼” 등이다.

쌀 품질 및 밥맛이 양호함을 나타내는 벼 품종이름은 “수정(水晶)벼”, “청명(晴明)벼”, “진미(珍味)벼”, “일품(一品)벼” 등이 그것이다.

그 후 꽃가루 배양법을 이용하여 육성된 품종들은 “화성(花成)벼”, “화청(花淸)벼”, “화진(花珍)벼”, “화중(花中)벼”, “화남(花南)벼” 등과 같이 모두 “화”자 돌림으로 명명되어 있어 특수한 육종법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쉽게 알 수 있게 하였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까지 그냥 육종관리자와 생산자인 농민만을 생각하며 짓고 있다. 정작 쌀을 사 먹는 소비자는 생각지도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언급한 품종명을 소비자가 과연 몇 개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개발하고 나면 끝이 아니다. 단지 이름이 좋다고 잘 팔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스토리도 없는 제품에 누가 눈길이라도 주겠는가?

‘한눈에 반한 쌀’이라는 이름을 가진 쌀이 있는데, 이건 ‘히토메보레’란 일본 품종명을 그냥 그대로 번역하여 붙인 것에 불과하지만, 좋은 이름 하나가 쌀의 특징을 설명하고 브랜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 쌀 중에서는 아미노산의 함량이 높아서 ‘하이아미’라고 불리는 쌀이 개인적으로 제일 잘 지어진 이름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밥을 먹는 소비자를 생각하며 ‘고시히카리’를 뛰어넘는 맛있고, 스토리가 담긴 쌀이 나오길 기대한다.

작년 매우 화제가 된 포도가 하나 있었다. 다른 청포도와 비교했을 때 가격이 3배 정도는 더 비싸고 매우 달아서 일명 ‘망고 포도’라고도 불린 ‘샤인머스켓(Shine Muscat)’이라는 포도다.

하지만 망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냥 일본에서 최고의 과일, 과일계의 명품이라고 불린다고 하니 그렇게 대충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져왔다. 그리고 엄청나게 성공했다.

비싸긴 하지만, 매우 달고 맛있어서 그 값을 충분히 한다. 게다가 이름도 멋지다. 비싸지만, 한번 먹고 나니 돈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만약 이 포도에 우리의 쌀 작명법으로 이름을 지었다면 이건‘농림 21호’가 되었을 것이다. ‘농림’이라는 이름이었다면 이렇게 눈길을 받을 수 있었을까?

다른 상품이 넘을 수 없는 ‘초격차’를 가질 수 있는 품질, 그리고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 느껴 보았으면 좋겠다.

자료 출처 – 쌀을 알자 (최해춘 저)

샤인머스켓(Shine Muscat)
샤인 머스켓은 일본에서 2006년 등록된 품종으로 일명 ‘크레오파트라의 포도’ 또는 ‘포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머스캣 알렉산드리아 (Muscat of Alexandria)’로부터 만들어진 품종이다. 북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머스캣 알렉산드리아’는 유럽 최고의 고급 포도로 로마제국 시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통해 지중해로 퍼져나가서 이름이 알렉산드리아가 되었다. 일단 부모가 ‘크레오파트라의 포도’라고 불리니 유럽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입힐 수 있었고, 이외에도 유럽과 미국의 여러 포도와 교배하여 재배가 어려운 알렉산드리아를 여기의 기후에 맞게 재배할 수 있도록 개발된 품종이다. (자료 : 일본 농업연구소)

소믈리에타임즈 박성환 밥소믈리에 honeyric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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