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면기에 들어간 1월의 샤토 디켐, 모처럼 파란 하늘이 보인다

세계 최고의 디저트 와인을 만드는 샤토 디켐 (Chateau d'Yquem, Sauternes)  

이 와이너리는 중세 시기 아키텐의 공녀 엘레오노르의 소유였다. 그녀는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결혼했다가 돌아온 이혼녀였으나, 1152년 그녀보다 11세 연하의 영국 왕 Henry 2세에게 시집가면서 지참금으로 아키텐 지역을 통째로 바치는 바람에 근 300년간 영국 땅이 되기도 했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영국과의 100년 전쟁 말미에 잔 다르크의 승리로 프랑스가 다시 이 땅을 되찾게 되었다.

▲ 서늘한 온도의 지하에서 숙성중인 와인

디켐 d'Yquem이란 원래 독일어에서 유래했다. Aig helm (wear a helmet ; 투구를 쓰다)이라는 독일어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옛날부터 투구는 Nobility (존귀함)의 상징이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경기에서 1등을 했을 때 받은 상이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청동 투구였다. 서양에서 투구는 바로 존귀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와이너리의 역사는 14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세월이 흐르며 수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1996년 프랑스의 루이비통 그룹 LVHM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 보트리티스가 핀 포도송이, 노블 랏 Noble Rot은 포도알에 미세한 구멍을 내기에 수분이 증발하고 당분이 농축되며 오묘한 향이 생겨난다. (사진: 샤토내 게시된 사진 참조)

쏘테른 지역의 특성상 안개가 자주 끼며 이때 귀부 곰팡이(Botrytis Cinerea)가 포도의 표면 층에 미세한 구멍을 내게 되며, 이 구멍 사이로 계속 수분이 증발해서 건포도 처럼 되면서 엄청난 당도가 축적된다. 이것으로 와인을 만들면 천상의 향기를 담은 꿀처럼 달콤하고 산도가 높은 와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200년이상 숙성 보관도 가능하며, 오래 될수록 비싸진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따야 하며, 귀부병에 걸린 포도알만 골라 따야 하기에 같은 포도밭을 수차례 왔다 갔다하며 수확해야 한다.

▲ 지하 셀러로 내려가는 계단

샤토 디켐(Château d'Yquem)은 보르도 남쪽 그라브 지역에 자리잡은 소테른(Sauternes)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1855년의 보르도 와인 공식 등급분류에서 소테른에서 유일하게 수페리어 프리미어 크뤼 등급을 받아 최고가의 쏘떼른 와인으로 자리잡았다. 디켐의 성공은 특이 이 지역이 노블 랏(Noble Rot 귀부 곰팡이)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보트리티스 시네레아라 불리는 이 곰팡이는 안개를 타고 들어와 포도 껍질에 미세한 구멍을 뚫기에 포도의 수분이 증발하고 특유의 요묘한 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 포도밭으로 나가는 문

샤토 디켐은 복잡미묘한 향과 꿀처럼 단 맛이 특징인데, 상대적으로 높은 산도로 인해 최적의 밸런스를 이룬다.보관만 잘하면 100년도 거뜬히 견딜 수 있고, 과일처럼 프루티한 느낌은 숙성이 되면 훨씬 복합적인 2차, 3차 향으로 발전해간다. 1959년부터 이그렉 Ygrec이라는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데, 포도품종으로는 세미용(20%)과 소비뇽 블랑(80%)을 블랜딩해서 만드는데, 매년 생산되지는 않는다. 

▲ 샤토 입구 대기장소 벽면의 그림

샤토 디켐 가문의 역사는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라몬 펠리페 이켐(Ramon Felipe Eyquem)은 청어유통 사업과 와인 판매를 통해 큰 돈을 벌어 1477년 기욤 드 줄락으로 부터 이 땅을 사게 된다. 약 100년뒤 그의 후손이었던 미셸 이켐 Michel Eyquem 이 죽자, 샤토 디켐은 1593년 12월 자크 드 소바주에게 넘어갔고, 1785년 뤼르 살뤼스 Lur-Saluces 가문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프랑스의 전권대사였던 토마스 제퍼슨은 프랑스에 주재할 때 이 샤토를 방문하여 맛을 본 후, 최고의 소테른 와인이라고 극찬 한 바 있다. 그는 1784년 빈티지를 250병 주문했고, 조지 워싱턴을 위해 추가 발주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요즘 같은 노블 랏(귀부곰팡이)을 일으키는 기술이 없던 때라 지금과는 다른 스타일의 단맛을 지닌 화이트 와인으로 짐작할 수 있다. 

혜성이 나타나는 해에는 특히 작황이 뛰어나, ‘혜성 빈티지’라 불렀는데, 혜성이 나타났던 1811년의 샤토 디켐은세기의 빈티지로 알려지고 있다. 1996년에 1811빈티지를 시음한 로버트 파커는 예외적으로 장수한 빈티지로 꼽으며 100점 만점을 줬다. 

▲ 샤토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시음 와인 디켐 2005

1968년 베르나르 드 뤼르-살뤼스 후작의 사망 이후에 이 샤토는 7%의 소수 운영권을 가진 꽁떼 알렉상드르 드 뤼르-살뤼스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는 연간 6만 6천병의 생산량을 유지해갔는데, 1973년 석유파동 직후 수요가 급감하고 가격이 폭락하여 병당 불과 35프랑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이 가격은 80년대에 이르러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꽁떼의 성실한 경영을 통해 말 대신 트랙터로 교체되었고, 낡은 와인셀러가 보수되고 개간이 안된 땅들이 경작되어 포도 수확도 늘어나 수확이 좋은 해에는 10만 병 생산에 1,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이후에 지속된 가족간의 불화와 알렉상드르 형제의 사업지분 매각으로, 1996년 프랑스의 명품 가문 LVMH (모에트 헤네시 루이뷔통)이 1억 달러에 샤토 지분의 55%를 획득하며 대주주가 되었다. 하지만 꽁떼는 2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샤토 관리인으로서의 지위는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 테이스팅 룸 입구 문의 장식

2004년 꽁떼의 은퇴 이후 샤토 슈발 블랑의 총괄 책임자인 피에르 뤼르통이 후임으로 선정되었다.  아뭏던 꽁떼는 유별난 품질 관리로 유명했는데, 무작위 시음 결과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와인 전체를 몽땅 퇴짜 놓기도 했다.  2006년에 런던의 앤티크 와인 회사는 1860년 부터 2003년까지 135년간의 빈티지 시리즈를 150만 달러(17억4천만원)에 매각했는데, 이는 단일 거래 규모로는 최고의 금액으로 기록된 바 있다.  

2011년 런던 리츠 호텔에서 1811년산 샤토 디켐이 7만5000파운드(1억3천6백만원)에 개인 소장가 크리스티안 바네케 Christian Vannequé 에게 팔리며 지금까지 팔린 화이트 와인 중 가장 비싼 와인으로 기록되었다.

▲ 샤토 디켐의 내정

샤토 디켐은 소테른 AOC 지역내 126헥타르(38만평)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중 100헥타르(30만평)에서만 포도가 수확된다. 매년 2~3헥타의 땅은 포도나무들이 뽑혀서 나가고, 새로 심기 때문이다. 새 나무들은 5~7년 정도는 기다려야 기준에 합당한 포도를 수확할 수 있기에 20헥타르 정도는 항상 쉬고 있다.  포도나무의 분포는 80%가 세미용 Semillon, 20%가 소비뇽 블랑이지만, 소비뇽 블랑은 수확량이 훨씬 많기 때문에 수확된 양으로 보면 비슷한 비율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확시기를 결정하는 일이다. 귀부 포도만을 골라서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수확시 평균 6회 정도 반복해서 추수를 한다.  수확량은 평균 헥타르당 9헥토리터(900리터)로, 소테른 평균 12~20헥토리터에 비해 소출이 낮다. 포도는 세 차례 압착을 거쳐 오크 통에 옮겨져 약 3년간 숙성되며, 연간 6만5000병이 생산된다. 빈티지가 안좋은 해에는 과감하게 와인생산을 포기하고 익명으로 포도를 팔아 치운다. 20세기에 9번의 빈티지 포기(1910, 1915, 1930, 1951, 1952, 1964, 1972, 1974, 1992년)가 있었고, 21세기에는 한 번 발생했다(2012년)   

▲ 자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 공간에 거대한 원형 볼, 마치 신의 물방울을 형상화한 듯 하다

토양의 구성을 보면, 두터운 석회 암반 위에 점토, 자갈, 모래가 적절히 혼합되어있다. 점토는 밭뙈기 마다 구성이 다르다. 석회석과 섞인 퇴적 점토와 푸른 점토는 페트뤼스의 토양구성과도 흡사하다.

점토 퇴적물이 많은 것은 디켐이 다른 포도원들과 중요한 차별점이 된다. 디켐은 모두 150개의 Parcel 로 구성되는데, 디켐의 마법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밭뙈기 별로 다른 토양구성, 포도 품종, 클론, Rootstock(뿌리)의 절묘한 컴비네이션이라고 불 수 있다.  포도나무들의 평균 수령은 25년이지만, 50년이 되기 전에 새로운 나무로 교체된다. 지금은 Semillon과 Sauvignon Blanc이 따로 심어져 있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섞어서 심었다. 포도는 반드시 손 수확하며, 귀부병에 걸린 포도알만 골라 하나씩 딴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한잔의 와인이 나온다고 보면 된다. 샤토 디켐의 삼대 요소는 복잡성, 감미로움, 그리고 산도이다. 비가 오거나, 아침에는 절대 수확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물기가 남아있으면 희석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많은 공이 드는 만큼 비싸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 시음했던 샤토 디켐 2005 빈티지

방문한 날 시음했던 디켐은 2005년 빈티지였는데, 색상은 약간의 오랜지 빛을 띈 황금색으로, 감미로운 꿀 향과 복숭아 향, 파인애플 향이 코끝을 스쳤고, 입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복합적인 달콤함과 오랜지 마멀레이드 향, 복숭아 시럽 같은 달콤한 향에 더해 기분 좋은 산도가 느껴졌다. 보트리티스가 만들어내는 복잡미묘하면서도 다차원적인 향 특성이 바로 샤토 디켐이 다른 소테른 와인과 차별화되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무 한 그루에서 오직 한잔 정도 만들어 내는 농축미를 흉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신들이 마시는 넥타 샤토 디켐은 이렇게 사람의 지극 정성과 긴 세월이 함께 빚어 만드는 작품이기에 지금도 그 명성이 유지되고 있다.      

김욱성은 경희대 국제경영학 박사출신으로, 삼성물산과 삼성인력개발원, 호텔신라에서 일하다가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어 프랑스 국제와인기구(OIV)와 Montpellier SupAgro에서 와인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25개국 400개 와이너리를 방문하였으며, 현재 '김박사의 와인랩' 인기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욱성 kimw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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