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다 보면 계절감이 없어진다. 하루 대부분을 실내에서 보내고 실내는 사시사철 비슷한 온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런 도시에서도 봄을 느낄 때가 있다. 밥상에 갑자기 봄나물이 올라왔을 때다. 먼저 상 위의 봄나물을 보며 봄이 왔음을 인지하고, 그 봄나물을 먹으면서 몸으로 봄을 느낀다. 씁쓸하면서도 향긋한 봄나물을 먹다 보면 내 몸에도 봄이 들어오는 느낌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냉이와 달래가 있다. 이번 달 한식탐험에서는 그중에서도 냉이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 봄기운이 솟아나는 '냉이'

냉이는 봄을 알리는 식물이다. 3월이 제철이지만 빠르면 12월에도 만날 수 있다. 겨울에 미리 뿌리를 내려두었다가 따뜻한 햇볕이 조금만 닿으면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이렇게 빨리 싹 틔운 냉이는 땅이 얼어 호미로 못 캐고 곡괭이를 동원하기도 한다. 이렇게 단단하게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생명력이니, 냉이의 기운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과거에는 냉이는 훨씬 더 반가운 존재였다. 비닐하우스도 수입 야채도 없던 시절이니 냉이는 몇 달 만에 처음 만나는 싱싱한 야채였다. 게다가 보릿고개가 있을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싹트는 냉이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그리고 냉이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다. 전국 각지 사방팔방에 나지 않는 곳이 없다. 밭두렁에서 마당에서 지천으로 났다. 

냉이의 생명력은 대단해서 오늘날의 도시에서도 잘 자란다. 공원이나 길가를 잘 살피면 어렵지 않게 냉이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심에서 만난 냉이가 반갑다고 함부로 캐면 안 된다. 공해에 노출되어 자란 냉이에는 미량이라 할지라도 중금속이 들어있다. 시골에서 캐는 것이 아니라면 사 먹는 것이 안전하다. 요즘 마트에서 파는 냉이 대부분은 야생에서 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따로 재배한 것이다. 이런 시판 냉이의 약 70%는 충남에서 생산된다. 

냉이를 고를 때는 우선 뿌리를 살피자. 어차피 냉이는 거의 뿌리를 먹는 야채다. 잔털이 적고 뿌리가 너무 크지 않은 것이 좋다. 너무 뿌리가 크면 중간심이 있고 억셀 수 있다. 냉이 향이 강한 것이 좋고, 잎 색깔은 보랏빛으로 짙은 것이 좋다. 잎 색깔이 어두운 것이 얼핏 지저분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햇빛을 잘 받고 자랐다는 증거다. 줄기가 너무 크게 자라거나 (마트에서 파는 것 중에 그럴 일을 없겠지만) 꽃이 난 것은 역시 억세니 피하자.

냉이는 뿌리가 울퉁불퉁하고 잎도 자잘해서 세척이 어렵다. 물에 담가 뒀다가 더 이상 흙물이 안 나올 때까지 여러 번 헹구자. 아무리 적어도 3~4번은 물을 갈아주며 씻어야 할 것이다. 특히 뿌리와 줄기의 경계에 흙이 많이 묻어 있으니 신경 써야 한다. 씻으면서 잔뿌리도 제거하고 시든 잎도 떼주면 더 좋다. 

손질한 냉이는 살짝 데친 후 먹기 좋게 잘라서 조리한다. 가장 많이 먹는 방법은 나물이나 된장국이다. 된장이나 초고추장,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치면 밥도둑 나물이 되고, 된장국에 한 움큼만 넣어도 봄내음 가득한 냉이된장국이 된다. 경상도에서는 된장국에 넣기 전 냉이를 콩가루에 묻혀 콩가루 냉잇국을 끓이기도 한다. 냉이에 밀가루 반죽을 묻혀 튀김이나 전으로 해 먹어도 별미다. 

냉이는 토속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사실 원산지는 동유럽과 소아시아 쪽이다. 번식력과 생명력이 강해 열대 지방이나 극지방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 세계에서 자란다. 영어 명칭은 Shepherd's Purse, 목동의 지갑이다. 열매의 모양이 목동들이 지갑으로 가지고 다니는 주머니 모양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식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볶음, 국, 무침 요리, 심지어는 만두에도 쓰인다. 일본에서는 죽으로 가장 많이 먹는다. 1월 7일을 7가지 채소의 날(나나쿠사)라고 해서 이 날 아침에는 7가지 채소를 넣고 죽을 끓여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 중 한 가지가 냉이다. 

약용으로도 많이 쓰였다. 서양에서는 월경이나 자궁 관련 치료제로 많이 쓰였다. 우리가 아프지 않아도 인삼차를 마시듯 몸에 좋다고 허브차로 끓여 마시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한약재로 많이 쓰였다. 간, 지혈, 설사에 좋다고 봤다. 우리나라 한방에서도 많이 쓰였다. 동의보감에서는 간의 해독 작용을 하며, 간을 좋게 하니 눈까지 맑아지게 한다고 했다. 굳이 약용으로 먹지 않아도 영양소가 가득하니 많이 먹으면 좋다. 채소류 중 단백질 함량이 제일 높은 축이며 칼슘, 비타민A 등도 많다.

요즘 많은 농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 19로 학교 개학이 미뤄지면서다. 급식으로 납품하기로 했던 물량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 냉이는 3월이 가장 많이 출하되는 시기이고 저장이 어려워 더더욱 문제다. 정부에서는 이런 물량을 유통업체 특판, 공동 구매 형식으로 공급하려고 준비 중이다. 집 안에만 있으면서 찌뿌둥해진 몸을 냉이로 깨워보는 건 어떨까? 농가도 돕고 몸도 위하고, 그야말로 일석 이조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