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백웅재] 풍정사계에 도착한 것은 폭염이 내리쬐는 지난 주말. 일단 밖에서 양조장이자 살림집을 겸한 곳으로 보이는 건물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안 올라오고 뭐해요~’라고 누가 2층에서 내려보며 말을 건다. 작은 키지만 군살 없는 몸매에 검게 그을린 얼굴의 이한상 대표임을 한눈에 알겠다. 열어주는 문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넓은 마당에 건물도 3동이 있는 양조장이 펼쳐진다.
 

▲ 풍정사계 안채

이한상 대표가 운영하는 풍정사계는 청주시 청원군 내수면 풍정리에 위치한다. 내수면에는 유명한 초정리가 있다. 풍정리는 초정리와 같은 이웃동네인 셈이다. 단풍나무 풍(楓), 우물 정(井), 단풍나무 우물 동네다. ‘싣우물’ 혹은 ‘시드물’이라고 불렀단다. 싣나무는 단풍나무를 부르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이곳은 본래 퇴적층이라 땅을 파보면 사질토, 자갈, 이암층이 차례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필터링이 된 좋은 물이라 예로부터 물맛이 좋은 곳이라고 하고, 예전 마을 가운데 있던 우물 주위에는 싣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풍정리. 여담이지만 일제시대 때 지명을 이런식으로 한자화한 곳이 많은데 이제는 본래 이름이 잊혀지고 한자 이름이 자리를 차지한 곳이 많다.

이한상 대표는 청주에서 태어나서 학창시절을 거쳐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청주 일대에서 인생을 살아왔다. 원래는 사진관을 운영했다고 한다. 청주 시내에서 큰 사진관으로 손님도 많고 돈도 제법 벌었다고 한다. 문제는 디지털 시대가 다가오면서 손님도 줄고 은퇴할 때도 다가오고 해서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한다. 인생 2막을 여는 일을 정하는 데 있어서 원칙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고, 혼자서도 할 수 있으며,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경주 여행에서 마셔본 법주를 통해서 우리술 한주를 빚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한다.
 

▲ 풍정사계 춘하추동

처음에는 청주와 비교적 가까운 전주 술박물관에서 술을 배우고 다음으로는 당시 녹번동에 있던 박록담 선생의 전통주연구소에서 배웠다. 경주에서 맛보았던 법주를 모델로 술을 빚어서 어느 정도 경지가 되었다 싶었다. 그래서 일찌기 2007년에 양조 면허를 받고 창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술이란 게 집에서 한두 독 빚을 때와 수십 독 빚을 때가 다르다. 왜 뭐가 어떻게라고 설명은 못해도, 어차피 내 손으로 다 하기는 마찬가지인데도 항상 뭔가 문제들이 생긴다. 이런 문제들을 잡는 데 2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고 처음 냈던 면허는 2년 간 전혀 술을 내놓지 않자 취소가 되어버렸다. 이 길이 아니었나 싶어서 다시 사진관도 열고 술과 관련해서 일손을 놓았다가 그래도 역시 한 번 더 도전해보자 싶어서 2013년에 다시 절치부심해서 양조장 면허를 내고, 다시 2년 가까이 고생해 2015년 설을 맞아 풍정사계를 출시하게 되었다.

춘은 청주 하는 과하주, 추는 탁주, 동은 증류주. 이렇게 여러가지 하기에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기본적으로 같은 방문의 술로 탁주, 청주 내리고 증류하고 과하주 만드는 것이라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고 한다. 풍정사계에서 표현하고 싶은 술맛은 달지도 시지도 쓰지도 않은 맛을 추구한다고 한다. 충청도 양반 같은 술인가보다.
 

▲ 향온곡

이 정도 규모의 양조장에서는 보기 힘든 일로 누룩도 직접 디뎌 쓰는데 그것도 보기 드믄 향온곡이다. 향온곡은 녹두가 들어가는 누룩인데 국산 녹두가 비싸기도 하고 예로부터 띄우기 어려운 누룩이라고 해서 아직까지 상업적으로 향온곡만 쓰는 양조장은 없었다. 향온곡 띄우기 어렵지 않냐니 한 10년 정도 꾸준히 하다 보면 스스로 잡혀간다고 한다. 누룩방은 10년 동안 계속 유지했냐 했더니 누룩방이 따로 있어 고이 모셔 놓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바깥에 메주 걸듯이 메달아 놓고 바람을 맞힌다. 비가 많이 오거나 하면 장막을 쳐주긴 하는데 기본적으론 사철 저렇게 걸어놓는다 한다. 환경 영향을 특히 받을 것 같다고 물어보니 원래 계절마다 술이 다 조금식 다르게 마련이라고, 우문에 현답이시다. 그렇다. 괜히 4계를 표현하는 술을 빚겠는가.
 

▲ 이한상 이혜영 부부

‘작지만 제대로’ 라는 느낌이다. 제품 출시는 오래지 않았으나 사실 양조장만 10년 내공이다. 부인이혜영씨와 둘이서 같이 술을 빚는데 양조장 살림살이며 시설이 하나하나 늘어가는 게 보인다. 부인과 같이 술을 빚는데 곧 건너편 독채건물의 지붕을 갈아 얹고 나면 본인은 거기 가서 혼자 따로 술 빚고 지금 안채는 부인이 술 빚으라 하겠다 한다. 부인은 그 말에 픽 웃는 듯 마는 듯이다. 그럴리가 말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필자 백웅재는 네이버 파워블로거 ‘허수자’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전국의 좋은 우리술들을 찾아서 프리미엄 한주전문점 세발자전거에서 소개했었다.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심사위원, 전통주 소믈리에 국가대표 부문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근래에는 한주 세계화에 관심을 두고 전세계에 한주를 소개하고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프리미엄 한주(따비)’, ‘취미와 예술(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가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백웅재 empty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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