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오페라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존재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분들이 듣기 싫은 것이 군대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이고, 더 싫은 건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 동생 기운이가 수방사 30경비단에서 청와대 변두리 지킨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고, 우리나라와 독일과의 월드컵 축구는 어떤 연속극보다 드라마틱한 감동을 주었지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느냐에 따라 감동의 크기는 달라지고, 의미 있는 존재로 남아있게 됩니다.

와인이나 오페라는 우선 서양문화입니다.

표현되는 언어가 어렵고, 우리의 정서 속에 체화가 되지 않은 낯섦이 우선 편안하지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막걸리나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신파 악극과 비교하면 이해가 되시나요?

막걸리는 산지가 속리산이고, 양조장은 대강 막걸리이고, 품종은 찹쌀 20%, 아까바리 70%, 밀 10% 등등... 하지만 우리는 신경 안 쓰고 마시지요?

와인도 술이고, 오페라도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악극이라고 치면, 뭐 별게 있겠나 싶습니다.우리네 악극도 구식이지만, 들으면 왠지 마음이 찡해지고, 아버지가 보시던 가요무대 생각도 나고, 옛날에 읽었던 심훈이나 이광수의 소설과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암튼, 어깨 힘 빼고 즐길 수 있잖아요?

오페라는 언어(대사), 사운드(음악), 시각예술(무대)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종합된 예술 형태입니다.

"인간의 폭넓은 지혜와 찬란한 예지가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귀중한 예술이다"

가곡은 언어(가사)와 사운드(반주)가 있지만 시각적 연출이 없고, 교향곡이나 실내악곡은 사운드만 있을 뿐 언어와 시각적 무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페라는 이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언어(대사)와 연극(스토리)은 사운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만일 무대에서 오페라 주인공이 ‘나는 너무나 마음이 괴로워 죽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말한다면, 오케스트라는 그런 분위기를 극적인 연주로서 이끌어 주며 영화의 OST 같은 역할을 담당합니다.

음악과 대사가 서로 사랑을 나누듯 뒤섞이며 감정을 최고조로 이끌어 냅니다.

격렬한 사랑은 격렬하게, 감미로운 사랑은 부드럽게, 사랑의 표현이 높아지면 음악도 같이 높아지고, 급기야 광란으로 치닫게 됩니다.

'오페라(Opera)'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작품이라는 뜻인 오푸스(Opus)라는 단어의 복수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오페라라는 단어는 '작품들'이라는 뜻이죠.

프랑스의 샤또 무통 로칠드 미국 캘리포니아의 몬다비 와이너리가 만든 명품 와인이 'OPUS ONE'이죠?

즉 작품 1번, 작품 하나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 오퍼스 원 <사진=Opus One Winery>

오페라는 한마디로 성악가들과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인들이 텍스트와 음악으로 구성된 드라마틱한 작품을 공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와인은?

100% 발효된 포도주스다.

오페라의 음악은 보통 스코어(Score)라고 부르며 오페라의 텍스트는 리브레토(Libretto)라고 부릅니다. 리브레토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작은 책'입니다.

오페라 대화체의 대사는 그대로 대사로서 말할 수도 있고 음악 반주에 맞추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음악 반주에 맞추어 대사를 하는 것은 레시타티브(Recitative)라고 부르죠. '낭송하다'라는 뜻의 단어인 리사이트(Recite)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노래에 있어서는 두 가지 모드로 구성되어 있죠. 하나는 레시타티브이며, 또 하나는 아리아입니다. 레시타티브는 대사를 음악 반주에 맞추어서 얘기하는 스타일을 말하고, 아리아는 출연자가 자기의 감정을 보다 확실하게 표현하는 노래입니다.

오페라에는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징슈필, 코미크, 오페레타, 세미 오페라 등에서는 음악 반주에 의한 레시타티브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대화체의 대사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리하면 오페라는 음악, 연극, 무용의 기본 요소로 구성된 종합적인 공연예술이며 여기에 무대장치, 조명, 분장, 의상, 소도구, 음향 기술 등이 가미된 종합예술입니다.

오페라는 자체의 독특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어느 예술 분야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쏠로, 앙상블, 합창, 조명, 무대 설계, 오케스트라,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지나는 연기, 화려한 발레연기 등 이 모든 것이 협동하여 조화를 이루게 되고,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와인이 탄생할려면, 자연요소, 발효시간, 발효온도, 품종, 토양, 포도즙의 성분, 수확시기, 숙성기간, 시음온도 등 이 모든것이 완벽하게 조합이 됐을때,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주 듯이 말입니다.

그럼, 몇가지 잘못된 인식들을 볼까요?

와인이나 오페라는 유명한 사람, 상류층 사람, 유식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다?

오페라뿐만 아니라 어느 예술 분야든지 자기가 다른 사람들 보다 좀 많이 안다고 해서 잘난 체하고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문화적 소양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것이지 다른사람에게 명품 자랑하는것 과는 다른것 입니다.

사람들끼리 모이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용어를 쓰며(그것도 외국어로) 잘난척을 합니다.

거의 모든 오페라 작곡가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오페라를 특권층이 아닌 일반 대중, 즉 서민을 위해 썼습니다.

영화가 나오기 전에는 오페라가 영화였죠. 유럽 20년 살아봐도, 많이 배운 특출한 사람, 상류층 사람, 그런 사람만 입장토록 하는 영화관은 없고, 와인바 입구에서 학력, 신용불량여부, 복장 검사하는데 못 봤습니다.

오페라나 와인을 즐기려면 외국어를 알아야 한다?

▲ <사진=flickr.com/photos/pete_m/>

와인 라벨이나, 오페라는 거의 알아듣기 힘들고 읽기도 어려운 외국어로 쓰여있습니다. 외국어로 된 오페라를 보러 가려면 가기 전에 스토리를 확실하게 알아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와인을 사려갈 때, 산지나 품종, 와이너리의 스토리까지 알고 가면 더 의미 있듯이.

요즘은 외국어 몰라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가서 앱하나 다운로드하면, 어지간한 와인 정보는 커버가 됩니다.

아무튼 중요한 아리아의 내용, 가사 몇 개는 달달 외울 정도가 되면 더 좋겠죠? 그렇지 않으면 대사를 번역한 책자를 가지고 가서 공연 도중 계속 스토리를 추적하면서 보는 것도 좋습니다.

빈 슈타츠오퍼에 가면, 할매, 할배들이 돋보기에 손전등까지 들고 대사 책을 보시는 걸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옆 사람들에게는 좀 방해가 됩니다. 요즘에는 이를 간파한 극장 측은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좀 투자를 했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무대 위편에 전광판을 설치하고 여기에 번역 대사를 실어 주도록 했죠. 어떤 극장에서는 좌석마다 작은 개인용 전광판을 설치하여 놓기도 합니다.

비행기 좌석 앞에 모니터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페라는 지겹고 재미없다?

오페라를 볼 때 주인공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다면 재미없게 됩니다. 극장에 설치되어 있는 서브타이틀이 도움을 주겠지만 무대를 지켜보면서 동시에 서브타이틀에 집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내용을 알아차린다고 해도 어떤 장면은 지루하게 생각되어 결과적으로 재미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바그너의 오페라가 그렇습니다.

바그너의 링 싸이클(Ring Cycle)에서는 무려 5시간 이상을 무대에 서야 합니다.

대체로 오페라의 공연시간은 2~3시간 정도입니다.

웬만한 영화 한 편 보는 시간입니다.

또 외국어로 된 가사나 대사가 문제인데, 대부분 오페라의 대사가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어나 독일어로 되어 있는 대사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부르면 그 뉘앙스를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오페라 무대에서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은~'이라고 아리아를 부른다면 아마 야유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아리아는 ‘라 돈나 에 모빌레’~라면서 원어로 불러야 제 맛이 나게 되죠.

심청전이나, 마당극을 이태리어로 부르는 걸 상상하면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오페라의 또 다른 특징은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주인공이 나중에는 죽는다는 겁니다.

▲ 카르멘 속 한 장면 <사진=Wikimedia>

칼에 찔려 죽을 경우도 있고(카르멘),

총살당할 경우도 있으며(토스카),

자살할 수도 있고(나비부인),

약을 먹고 죽는 경우도 있고(일 트로바토레의),

또 불치의 병에 걸려 허약해질 대로 허약한 몸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끝내는 경우도 있습니다(라 트라비아타).

그러면서도 참으로 현실적이지 못한 것은 기운이 하나도 없이 죽어야 하는 때에도 힘든 아리아를 오랫동안 격정적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쓰러져서 당장 목숨이 끊어지는 입장인데도, 소프라노와 테너는 마치 그 어느 때보다도 최상의 컨디션에 있는 듯 가장 높은 음을 내며 아리아를 부릅니다.

이것이 오페라의 매력이기도 하지요.

오페라에 가려면 정장을 입어야 한다?

오페라를 반드시 정장을 해야 한다는 법칙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금지 조항이 있기는 합니다.

세계 공통적으로 일곱 살 미만 아이들은 되도록 데리고 오지 말 것, 공연 도중 음식을 먹지 말 것, 사진 찍지 말 것, 술 마시고 들어오지 말 것 등입니다. 요즘엔 핸드폰 전원 끄기가 필수 준수 사항으로 되어 있죠.

와인 먹을 때는 향수는 피하고, 중간에 물이나 중성적인 음식으로 입안을 헹구고,
잔을 입술에 대기전에 립스틱이나, 립글로스, 입에 묻은 기름은 냅킨으로 훔쳐내고
뭐 그런 정도겠죠.

복장은 예술을 사랑하는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는 것, 그저 남이 보기에 너무 흉하지 않은 의상,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비엔나의 국립오페라극장(비너 슈타츠오퍼)의 경우를 보면, 신사들은 검은 양복, 흰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옵니다. 숙녀들은 밍크코트에 다이아몬드, 또는 진주 목걸이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옵니다.

다른 한쪽에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스니커를 신은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저도 이 부류에 속했지요?

세계 초연의 오페라일 경우에는 작곡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예의상 남자는 턱시도를 입고 나비 넥타이를 매며, 여자는 가운이나 드레스를 입는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 백자양각쌍학문 계영배<사진=국립중앙박물관>

'계영배' 
그냥 술잔이 아니라, 넘칠 듯 가득 채우면 술 잔 어딘가로 술이 다 새어버리게 만들어진 잔입니다. 과함을, 넘침을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삶에서도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의미로도 읽었습니다. 세상만사, 지나침보다는 방향과 절제, 균형감각이 중요하고,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느끼고 즐기는 것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칠십 년이 걸렸다"

CARPE DIEM!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권기훈 a90049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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