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김하늘] 때는 2013년 가을 학부 시절, 와인을 좋아하던 난 산학협력으로 프랑스 남부지역의 유명한 와이너리인 “샤토 몽투스(Chateau Montus)”에 가서 직접 포도도 수확하고, 양조과정도 배우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그땐 이미 워터소믈리에에 관심이 있어 그 해 있었던 워터소믈리에 경기대회에 출전했었다. 하지만 본선 탈락하였다. 예선 전체 2등으로 나름 자신만만하게 올라갔는데, 100% 테이스팅으로 합격 여부가 갈리는 준결선에서 순위 안에 못 든 것이다. 크게 실망했다. 슬럼프를 가지고 보름 정도 지나서 프랑스로 향했다.

와인을 배우러 가서도 물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는지, 프랑스물들을 사서 사진도 찍고 테이스팅 노트도 작성하였다. 2~3일에 한 번씩 까르푸(Carrefour)를 들렀었는데, 난 그때마다 거기 있는 모든 종류의 물을 사 왔다. 20종류씩 사도 20유로도 안 됐으니까. 저렴한 물은 500mL 3~4개에 1유로 정도 했었고, 비싼 물은 1L짜리 한 병에 3유로도 했었다. 까르푸라는 거대 유통매장인데도 유명한 브랜드는 비텔(Vittel) 정도뿐이었고, 국내에서도 유명한 에비앙(Evian)이나 볼빅(Volvic)은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로컬 브랜드였는데 크기부터 모양까지 다양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종일 뙤약볕에서 허리를 숙여 포도를 수확하고 호텔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으면 꼭 9시쯤에 컵라면이 당겼다. 나는 여행을 좋아해서 외국 음식에 어렵지 않게 적응을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호텔 음식의 간이 약했다. 항상 김치나 짜고 매운 게 간절했다. 같이 갔던 누나가 컵라면을 많이 가져와서 컵라면 하나를 획득했다. 호텔 식당에 있던 커피포트에 한국에서 하던 대로 수돗물로 끓였다. 팔팔 끓은 물을 컵라면에 붓고 열심히 익기를 기다렸다. 학수고대한 우리는 드디어 컵라면을 맛보는데......

면발을 씹으면서 자동으로 양치질한 느낌이었다. ‘내가 저녁 먹고 양치질을 했던가?’ 모두 인상이 마구 구겨지는데, 일행 중 한 명이 “혹시 수돗물로 끓였니? 아, 여행 초보도 아니고 외국 나와서 수돗물로 끓이면 어떻게 해!” 범인은 나였다. 다시 말하면 수돗물의 불소가 범인이었다. 피레네 산맥의 정기를 받았던 그쪽 지방에선 불소함량이 많은 수돗물을 갖고 있었다. 깨달았다.

“아,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물을 사 마시는구나!”

돈이 많아서 사 마신 게 아니라 사 마실 수밖에 없던 것이다. 수돗물의 책임을 졌던 나는 방에 있던 내 프랑스 생수들(테이스팅을 위해 고이 모셔놨던)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컵라면 재도전! 문제를 해결했다는 생각에 마음껏 수다도 떨었다.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에 큰 만족을 느끼며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두 번째 컵라면의 맛은 과연?

‘아까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나?’ 분명 수돗물이 아닌 내 생수를 썼는데, 입이 다 안 헹구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 컵라면에 집중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순간 모두 텔레파시가 통한 듯 내가 가져온 생수의 라벨을 살펴봤다. 불소의 함량을 확인한 그들은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수돗물이 범인이 아니라 불소가 범인이란 것을 알았으면서! 하지만 난 하나의 깨달음을 더 얻었다.

“아,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물을 골라 마시는구나!”

결국, 며칠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컵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보통은 그때 먹었던 컵라면 맛을 잊을 수 없었다는 말을 예상하시겠지만, 그 컵라면 말고 전에 먹었던 두 개의 컵라면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 프랑스와 국내생수의 불소함량 비교. 최상단부터 샤토네프 오베르뉴(Chateauneuf Auvergne / 불소함량 3.6mg/L / 프랑스), 꾸작(Quézac / 불소함량 2.2mg/L / 프랑스), 몽베스트(불소함량 2mg/L 이하 / 대한민국), 스파클(불소함량 1.9mg/L / 대한민국). 국내 먹는샘물 불소허용치는 2mg/L.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생수들은 보통 1mg/L 이내. <사진=김하늘>

한국에 돌아와선 물을 고를 때, 물의 첫인상보다도 라벨에 표기된 미네랄 함량에 눈길이 갔다. 그때부터 상황별로 물을 골라 마시기 시작했다.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미네랄함량이 높다고 꼭 좋은 건 아닙니다!

 

▲ 김하늘 워터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김하늘은? 2014년 제 4회 워터소믈리에 경기대회 우승자로 국가대표 워터소믈리에다. 2015년 5회 대회 땐 준우승을 차지하며 연속 입상했다. 다수의 매체와 인터뷰 및 칼럼연재로 ‘마시는 물의 중요성’과 ‘물 알고 마시기’에 관해 노력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하늘 skylin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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