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 맛본 순간,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쌀이다. ‘신동진’이 마초 같은 남성이라면, ‘미호’는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미호로 지은 밥맛을 보면 정말 그 맛에 누구나 빠져드리라 생각한다.

미호라는 품종명도 특성검정을 하기 위해 맨 처음 재배를 시작한 곳이 ‘청주의 청개구리쌀’ 단지였는데, 그 비옥한 곳에 물을 공급한 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호천(美湖川) 이었다. 그래서 고마운 물을 준 미호천의 이름을 따와 ‘미호’로 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청주의 미호천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벼농사의 기원으로 불리는 ‘소로리 볍씨’가 나온 것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미호천 주변은 넓은 평야지대와 나지막한 구릉, 풍부한 산림으로 이루어져 벼농사에 있어서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런 아름다움 경치가 밥맛에 스며들었는지, 그 밥맛을 보면 그 역시 아름답다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미호는 ‘아밀로스’ 함량이 낮은 저아밀로스 쌀이다. 흔히 주변에서 ‘반찹쌀’로 불리는 특수미다. ‘미호’쌀 이전에도 몇몇 저아밀로스 쌀이 있었지만, 어떤 이유인지 그다지 대중화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러나 이제 ‘미호’라면 정말 차지고 맛있는 저아밀로스 쌀의 대충화를 이끌지 않을까 생각한다.

갓 수확한 햅쌀은 항상 맛있다. 그러나 해를 넘기고 봄이 될 때쯤이면 점점 품질이 저하되면서 밥맛이 떨어진다. 이때 흔히 찹쌀을 30% 정도 혼합하여 밥을 지으면 엄청 맛있어진다. 이렇듯 저장 중 기간이 지남에 따라 품질이 떨어지는 일반 쌀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 찰진 ‘미호’다.

갓 지은 밥은 어느 것이나 맛있다. 그러나 진정한 저아밀로스 쌀인 ‘미호’의 진가는 지금이 아닌 냉장, 냉동 후에도 그 밥맛이 변함없다는 것이다. 다른 일반 쌀과 비교해서 먹어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그렇기에 미호는 외식업체나 HMR용으로도 매우 적합한 쌀이다. 그 이유는 쉽게 설명해서 일반 쌀로 지은 밥에 비해 노화가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 미호 재배 전경

미호의 주요 특성은 다음과 같다.

숙기 – 중만생종
현미 천립중(g) – 22.7g
아밀로스 함량(%) – 11.2%
단백질 함량(%) – 6.0 %
재배지 – 중부 및 영, 호남 평야 1모작지
백미완전미율 – 98.2%
육성 – 호품벼와 밀키프린세스를 교배

이번 쌀 이야기는 직접 ‘미호’를 육종하고 연구하신 국립식량과학원의 조준현 농학박사님과 만나 ‘미호’ 개발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인터뷰는 화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터뷰]

Q1. 저아밀로스 쌀인 ‘미호’의 개발 배경은?

A: 최근 소비자의 맛에 대한 니즈가 높아짐과 동시에 사회구조와 생활환경으로 인해 HMR 식품 시장이 급성장했다. 이런 가운데 보통의 멥쌀은 상온에서 보관하는 중 4~5월 이후 기온이 급격하게 올라가고 습도가 높아지는 장마철을 기점으로 밥맛이 급격히 나빠진다. 이때 흔히 찹쌀을 섞어서 밥을 지으면 어느 정도 밥맛을 보완할 수 있지만, 저아밀로스 쌀이라면 밥맛도 매우 뛰어난 뿐만 아니라,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노출되더라도 일반 쌀과 달리 찰지고 그 밥맛이 유지된다. 이에 저아밀로스 쌀의 개발을 시작했고 저아밀로스 쌀은 밥을 지은 후 냉장, 냉동 보관을 해도 그 밥맛에 변화가 없어 급식, 외식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도시락과 같은 미반류 가정간편식(HMR)에 어울리는 쌀 품종의 부재로 인해 저아밀로스 ‘미호’를 개발하게 되었다.

Q2. 개발과 관련된 뒷이야기는?

A: 저아밀로스 쌀은 보급종이 아닌 특수미다. 그렇기에 농가의 관심을 받으려면 재배 안정성, 수확량, 밥맛 이 모든 걸 충족시켜야 한다.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국내 최고품질 쌀 중에서 수량, 병충해, 재배 안정성이 뛰어난 ‘호품’과 저아밀로스 도입 품종 중에서 벼 쓰러짐에 제일 강한 ‘밀키프린세스’를 교배하여 실내에서 우량계통 선발을 시작했다. 교배 이후 계통별로 25포기를 심어 보면서 6년간 우량계통을 선발했다. 이때 무려 1,200 계통 이상의 종자 테스트를 했고, 거기서 선발된 우량종자는 2년간 생산력 검증, 그 후에는 3년간 전국에서 지역 적응 시험을 거쳐 최종 완성되었다. 약 11년이 걸렸다. 보통의 다른 저아밀로스 쌀들은 찰벼(찹쌀)처럼 불투명하고 하얗게 보인다. 그런데, ‘미호’는 일반 메벼(멥쌀)처럼 거의 투명하게 보인다. 외관만 보면 당연히 이건 저아밀로스 쌀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선발되지 못할 뻔했다. 저아밀로스 쌀이 아닌 메벼(멥쌀)처럼 보이니 선발할 때 정만 많은 고민을 반복했다. 매우 많은 종류의 종자를 아주 조금씩만 심으니 선발하기 위해 다 밥을 해서 먹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교배 모본을 선정하기 위해 실험했던 종자 수를 포함하여 하나의 품종 개발을 위해 수천 번의 종자 테스트와 선발을 진행한 셈이다. 워낙 많은 종자를 테스트하니 선발 시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메벼인지, 저아밀로스 쌀인지 결정을 못해 고민하다 보니, 많은 분을 무작정 기다리게 했던 기억들, 메벼(멥쌀)이라고 순간 판단을 잘못했다면 오늘의 ‘미호’ 품종 개발은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Q3. 육종연구가로서 앞으로 개발해보고 싶은 쌀은?

A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현재 일반 밥쌀용 쌀의 수확량은 500~550kg/10a 정도 수준이다. 현재 밥맛은 없지만 다수확이 가능한 통일형 품종의 최고 수확량이 807kg/10a 정도인데, 쌀은 미래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식량부족을 대비할 수 있도록 맛있으면서 1,000kg/10a 정도의 초다수성 품종의 개발을 해보고 싶다.

두 번째로 건강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는 가운데, 생애 주기형 품종을 개량하고 싶다. 유아용으로는 고 단백질쌀, 청장년층을 위한 저칼로리 쌀, 환자와 고령자를 위한 당뇨, 고혈압 등 생활 습관병의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성 쌀 같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이나 가축용 고급사료를 만들 수 있는 가격 경쟁력과 수량성이 극대화 된 소재용 쌀을 개발해보고 싶다.

저아밀로스 쌀인 ‘미호’는 발을 지을 때 일반 쌀과 비교해서 물을 5~10% 정도 적게 넣거나, 물에 넣고 불리지 않고 바로 취사하는 것을 추천한다. 굳이 물에 불리지 않아도 되기에 바쁠 때 바로 밥을 할 수 있어 편하다. 일반 쌀도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밥을 지어도 된다. 밥을 지어 바로 다 먹으면 크게 상관없지만, 만약 남아서 보온을 하게 된다면 밥이 노화되는 속도가 불린 쌀에 비해 현저히 나빠진다.

‘미호’는 밥을 지은 후, 차갑게 식어도 맛있고, 그 밥맛이 오래 보존된다. 그래서 도시락, 주먹밥과 같은 요리에 매우 적합하다. 냉, 해동 후에도 그 밥맛이 여전히 좋다. 급할 때를 대비해서 요즘 가정에 즉석밥을 사두는 경우가 많은데, 미호로 밥을 지어서 냉동 보관해 두었다가 데워 먹는 것이 즉석밥보다 훨씬 맛있다. 일본의 유명 초밥집 중에서도 저아밀로스 쌀을 사용하는 곳이 많다. 초밥은 따뜻하게 먹는 밥이 아니니 식어도 맛있는 저아밀로스 쌀이 많이 사용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특수미로 분류되어 정부 보급종에서 제외되어 있지만, 뛰어난 밥맛과 재배 안정성으로 인해 재배하는 농가가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이 ‘미호’가 저아밀로스 쌀의 대중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

▲ (왼쪽으로부터 두번째) 조준현 농학박사

아밀로스(Amylose) – 포도당이 직선형으로 결합된 다당류로 전분의 주요 구성성분이다. 쌀 전분은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밀로스의 함량이 낮을수록 밥이 찰지게 된다.

저아밀로스 쌀 – 아밀로스 함량이 6~12% 정도의 쌀, 보통의 멥쌀은 16~20% 정도다. 찹쌀은 아밀로펙틴으로만 이루어 있거나 아밀로스 함량이 5% 이하다.

소로리 볍씨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볍씨, 198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지금 오창산업단지)의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 서울대 방사선탄소연대측정 결과 1만3천~1만5천 전에 존재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 사실이 2003년 영국 BBC방송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보도되었다.

호품 – 2006년 육종 보급한 품종으로 농촌진흥청 밥쌀용 최고품질벼 중 하나. 재배안정성이 매우 뛰어나며 다수확품종이기에 수확량이 많다.

밀키프린세스 – 일본 [슈퍼라이스] 계획으로 만들어진 저아밀로스 쌀을 대표하는 밀키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밀키퀸의 후대 육성 품종. 밀키퀸처럼 냉해에 강하면서, 벼 길이는 무려 15cm나 짧아 벼 쓰러짐(도복)에 매우 강하다.

자료 출처 – Korean Journal of Breeding Science 53(3)

소믈리에타임즈 박성환 칼럼니스트 honeyric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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