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영 소믈리에

[칼럼니스트 김도영] 미래학자 롤프얀센은 ‘드림 소사이어티’라는 책에서 ‘고객은 상품이 아닌 상품에 담긴 스토리를 사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정보화 사회 이후 도래할 사회를 ‘드림 소사이어티’라고 명하고 소비자의 구매결정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 정의하고, 스토리와 꿈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 설명합니다.

그래서 최근의 화두가 되고 있는 스토리텔링은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 고객의 관심을 끌 목적으로 마케팅기법으로 자주 활용됩니다. 특히 ‘감성적인 소비재’인 술과 관련해서는 더욱 강조 됩니다. 스토리텔링은 소비자와 브랜드간의 친밀감과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되며, 이것은 구매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흔히 사례로 드는 ‘1865’라는 와인은 골프장에서 18홀을 65타에 친다는 표현으로 ‘골프와인’으로 포지셔닝 했습니다. 와인이 많이 판매되는 곳 중의 하나가 골프장이기도 하거니와 골프를 칠 수 있는 경제력의 사람이라면, 와인의 소비와 연결되어 있기에 스토리텔링을 통한 브랜드인지와 그 목표 타겟 선정에 유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주류시장에서의 스토리텔링기법의 활용은 1614년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의 ‘구기백세주’의 이야기를 이용한 백세주 스토리를 일반적 스토리텔링의 활용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느 젊은사람이 백발의 노인의 종아리에 회초리로 때리고 있는 모습을 본 어느 선비가 사연을 묻자. 백발의 노인이 자신의 아들인데, 마시라는 술을 마시지 않아 이렇게 늙어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회초리를 들었다.라는 내용입니다.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는 좋은 술을 이야기 합니다. 계량화된 숫자와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며 효능을 설명하는 것보다 이야기는 사람들을 쉽게 이끌기도 합니다. 골프장과 관련해서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골프장에서 OB맥주를 잘 마시지 않습니다. 골프 용어 중에서 OB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OB(Out of Bound)즉 공을 잘 못 쳐 공이 바운드를 벗어나는 경우를 말하는데, OB맥주를 마시면, OB가 난다는 속설 때문이죠. 물론 사람들은 분명히 그것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소비자는 그렇게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브랜드를 강하게 인지하게 되고, 구매의 소비심리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것이 순전히 기분 탓이더라도 말이죠.

MANA-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신성하고, 명예로운 정신과 힘을 의미한다.

▲ MANA-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신성하고, 명예로운 정신과 힘을 의미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브랜드가 있지만, 그것들을 정확히 기억하는 소비자는 없습니다. 자신과 관계될 때 더 빠르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 받게 되는 법이죠. 감성적인 술의 영역에서는 스토리텔링은 더욱 크게 작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의 상품에 상징적 의미와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로 포장하게 됩니다.

‘마나(Mana)’라는 이름의 뉴질랜드 술도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마나(Mana)라는 술의 카테고리를 정의하자면 ‘소주’입니다. 식품학자인 노먼 롯지(Noman Lodge)라는 사람과 브라이언 캐런(Brian Carran)이라는 사람이 고구마등을 이용해 일본식 소주를 만들고 그것에 ‘마나(Mana)’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는데, ‘마나’라는 것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문화에서 가장 신성하고 명예로운 뜻이자 그들의 정신이며, 명예와 힘, 신성과 존경, 능력을 의미합니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그들의 소중한 보물에 ‘흥미로운 이야기’로 포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신의 소중한 보물에 대해 그 ‘마나(Mana)’라고 표현하는 ‘영적인 힘’을 키우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죠. 어떤 사실에 스토리를 더함으로써 더욱 강력한 힘을 키우는 것 마오리족의 사례처럼, 철저한 감성제품으로서의 술에서 이러한 스토리가 빠진다면 어딘가 모르게 싱거울 듯 합니다.

술이 갖는 스토리는 그 자체가 맛을 더하는 안주가 될 듯하고, 맛을 지켜주는 풍성한 거품이 될 듯 합니다. 언제나 이야기는 맛을 더하죠. 오늘은 더운 날인 만큼 풍성한 이야기로 가득 찬 숫자 4와 관련된 시원한 맥주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제가 독일을 여행할 때 ‘크닙셔’라는 와이너리를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음장소에는 ‘X’라고 적혀있는 와인과 그것을 담는 상자가 주변에 쌓여 있었으며, 그 X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저의 궁금증을 말하기 전에 그 곳 주인은 이 ‘X’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냥 말해주면 될 것을 꼭 이 X라는 알파벳을 앞에 두고는 항상 질문을 던지는 법이죠. 상품을 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독일 와이너리를 여행하며, 리슬링만 마셨던 터라 X라는 레드품종의 와인은 반가우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 독일와인의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크닙셔-X .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의 레드와인을 실험적으로 생산하고 ‘Bordeaux’의 마지막 알파벳인 X를 브랜드로 만듦.

그 주인장의 설명은 프랑스 보르도-‘Bordeaux’의 마지막 알파벳인 ‘X’에서 따와서 브랜드로 지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르도 스타일의 레드와인을 실험적으로 만들어 성공해서 이제 그 이름을 붙였는데, 그것은 분명 독일와인의 새로운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수학에서도 X는 미지의 수를 나타내는데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그것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유는 그가 이용하던 인쇄소에 X활자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X라는 미스터리한 이야기의 세계는 궁금증을 만들어 냅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X가 4개로 이루어진 맥주 포엑스에 관한 이야깁니다.

제품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그것은 스토리의 형태로 소비자의 감성과 연결됩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고 무엇이라 단정지어 설명할 수 없기에 사람의 마음을 더욱 끌게 되죠. ‘포엑스’라는 맥주는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호주인들이 뽑은 호주를 대표하는 맥주. 와인이든 맥주이든 그 디자인 철학과 스토리는 제품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과 비중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멋진 것을 완성하는 것의 절반은 ‘디자인 스토리’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용하는 즐거움’이다” 라는 토머스 피터스의 말처럼 스토리의 중요성은 감성제품의 영역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맥주라는 제품의 본질은 맥주 본연의 맛이겠지만, 그 맛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브랜드 스토리입니다. 그렇게 우린 그것을 마시고 사용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즐거움도 결국은 디자인 스토리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스토리’의 힘은 절대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에서는 사실이냐 거짓이냐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의 문제로 귀결 되거든요.

호주의 브리즈번 서쪽에 독일인 캐슬마인(Castlemaine)이 그의 이름을 따서 캐슬마인 퍼킨스 양조장을 1878년 세우고,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포엑스 맥주는 1924년부터 생산되었는데, 처음의 이름은 캐슬마인 엑스퍼트 라거(Castlemaine Export Lager)로 설립자인 캐슬마인 퍼킨스가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알파벳X 4개로 표현되기 시작합니다.

다양한 맥주를 자랑하는 호주인 만큼 각 지역마다 로컬맥주가 존재하는데, 가령 빅토리아 주에는 독특한 병모양의 <VC>가 있고, 서호주에는 블랙스완을 로고로 하는 스완비터(Swan Bitter)가 남호주에는 국내에도 수입되고 있는 쿠퍼스라는 맥주가 그리고 뉴사우스웨일즈에는 투이스(Tooheys)가 있습니다. 퀸즈랜드를 대표하는 지역맥주이면서도, 포엑스(XXXX)호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호주의 대표맥주 입니다.

포엑스 유래와 관련하여, 4X의 유래는 영국인들이 호주에 도착하여 호주 원주민들에게 맥주를 선물로 주었고, 이후 원주민들은 이 맥주를 달라고 할 때, BEER를 쓸 수가 없어 병모양을 그리고 XXXX라고 적어 표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포엑스 맥주의 브랜드스토리 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국과 호주등 영연방국가에서 맥주를 생산할 때, 맥주맛의 강도를 표기할 때, X라는 표현을 쓰게 됩니다.

가령 도수와 맛이 약한 것을 X, 좀더 높아지면서 더블엑스, 트리플엑스, 포엑스 하는 식으로 여기서 포엑스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포엑스맥주로 발전했음은 여러 정황과 문헌을 고려했을 때 더 정확한 브랜드의 유래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원주민이 병모양을 그리고 거기에 XXXX라고 적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더 와 닿습니다. 그런 스토리가 술 맛을 더하거든요.

어쩌면 그것이 중요한 이유가 아닐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고 나에게 의미 있을 때 그래서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지 모릅니다. 이것이 스토리의 힘이죠. 호주라는 광활한 땅 위에 인구는 2,000만명 땅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사치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맥주에는 여유와 자연의 평화로움이 묻어납니다.

▲ xxxx 맥주 홈페이지 www.xxxx.com.au

정의되지 않은 그래서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그 스토리의 세계가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스토리의 강점은 하나의 이야기 소스를 가지고, 다양하게 확장시키는 점에 있습니다. 변형을 일으키며, 확대 재생산을 하게 됩니다. 이것에 술에 있어서 스토리의 맛이죠.

적어도 술을 마신다는 것은 술잔의 술을 비우는 과정이 아닌 빈 술잔에 이야기를 채우는 과정이라 생각되는 부분이죠. 그래서 같은 술이라도, 그 술 맛은 다르게 기억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Tip] ▶ 4마일법(Four Mile Law) : 1877년 테네시주 의회가 인구 2,000명 이하의 통합되지 않은 도시에 있는 학교에서는 학교, 또는 그외 교육 기관의 4마일 이내에서의 알코올음료 판매를 금지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 이 법안으로 당시 테네시 증류업자와 주류 판매상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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