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허수자] 지방을 향해 가는 출장은 언제나 피곤이 반 즐거움이 반이지만 이번 제주 출장의 경우에는 즐거움의 비율이 조금 더 높았다고 해야 솔직하겠지. 가을의 제주는 너무나 평온하고 맑았다.  태풍이 수시로 몰아치고 난파선에서 밀려라도 온 듯이 바닷가마다 사람이 버글대는 제주보다는 조금 조용하고 평온한 쪽이 훨씬 좋다.
 

▲ 제주합동양조장 전경

제주도 전체 인구는 60만명 정도, 제주도 사람들은 서울에서 조금 큰 구 정도라고 자조하듯 말하지만 사실 지역양조장으로서는 꽤나 큰 시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개 시군단위로 형성되어있는 막걸리 시장이다. 60만이면 전주나 포항보다 큰 인구 규모다. 게다가 육지에서 술이 들어오려면 물류비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제주막걸리의 입지는 탄탄하고 양조장 규모도 예상을 뛰어넘게 컸다.
 

▲ 고상후 대표

88년 여덟개 양조장이 합동해서 제주합동양조장이 되었고 고상후 사장(71)은 여덟 개 양조장 중 하나인 세화양조장을 경영하고 있었고 그 전에는 양조장의 양조전문가로 일했다. 어언 42년 성상이다.

제주도는 약간의 밭벼가 날 뿐 쌀이 나지 않는다. 쌀막걸리와 쌀 생산의 관계를 물으니 쌀은 전부 육지에서 들어온다고 한다. 오랜 시간동안 조, 수수, 옥수수, 밀가루 등 여러가지로 막걸리를 빚어봤지만 쌀보다 더 좋은 재료는 찾지 못했다고. 정책의 변화 때문에 이제 정착된 쌀막걸리문화가 더이상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한다. 이건 제주뿐 아니라 어디를 가도 경험 많은 장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더불어 최근까지도 감귤막걸리가 제주에서 생산되지 않았는데(현재는 서귀포의 한 양조장에서 살균주로 생산중), 외지에서 들어오는 감귤막걸리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색소, 엑기스, 향신료 등을 조금이라도 첨가하는 것은 자신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원칙의 문제라고 한다. 자신도 시제품을 몇 번 만들어보았지만 그런 원칙에 충실하며 맛과 가격이 모두 충족되는 제품을 만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 현대식 시설 모습

제주합동양조에 대해서 크게 인상을 받은 것은 규모 이상으로 잘 정비된 현대화된 시설이다. 고사장도 은근히 자부심을 갖는 눈치인데, 아닌 게 아니라 전국에 양조장을 많이 돌아다녀봤지만 이렇게나 현대화, 자동화된 시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 품질인증

생막걸리는 해외수출이 쉽지 않은데 제주막걸리는 일본에 수출한 지가 제법 되었다. 현재 규모는 1주일에 3백상자 정도, 탑차 한대 규모가 채 안되지만 꾸준히 수출량이 늘어나고 있고 매주 정기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고 있다고 한다.

근래 제주도에는 도의 지원을 받아서 양조장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모양. 고사장은 ’될만한 곳'은 외면하고 성공가능성이 거의 없는 신설업체에 무조건 지원을 해주는 것에 비판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되는 곳만 밀어주는 것보다는 다양한 곳을 지원해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인 우리술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 수상 및 감사패

오히려 실적과 하드웨어 중심으로 무조건 지원하기보다는 업체들이 꼭 필요한 부분을 짚어서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느꼈다. 제주막걸리 같은 경우 일본수출과정은 일본 현지의 업자들이 통관, 유통, 위생검사 등을 모두 담당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이런 부분을 지원한다면 된다면 일본이든, 중국이든,  또 다른 나라로든 수출길을 열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 제주 막걸리

제주막걸리의 자랑은 뭐니뭐니해도 담백하고 순한 맛이다. 고사장은 제주의 물이 다른 지역보다 뛰어나게 좋은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핑크빛 포장의 제주막걸리는 단맛이 강하지 않고 젖산발효를 통해서 부드러운 산미가 강화되어 질리지 않고 마실 수 있다.

반주로도 좋고 본격 음주에도 적합하다.

양조장 건너편으로는 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

재료와 기술도 중요하지만 좋은 환경에서 좋은 술이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소개] 허수자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영국 Lancaster University에서 Finance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을 살려 유라시아대륙을 누비며 술과 음식을 탐했다. 2010년 네이버 맛집 파워블로거, 2011,2012년 네이버 주류 파워블로거(emptyh.blog.me) 였으며 2011년부터 한주전문점 ‘세발자전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술에서 더 나아가 발효식품 전반으로 관심사를 넓히고 있으며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Ark of Gastronomy’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칼럼관련문의 허수자 empty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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