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신재연] 이전 글에서 소개한 후미야(Jumilla) 지방에서 동쪽 지중해 방향으로 12 킬로미터를 달리면 또 다른 와인 산지인 예끌라(Yecla)가 나타난다. 스페인 현지의 와인 전문가들조차도 예끌라 와인과 후미야 와인의 차이점을 크게 구분하지 않으며, 2015년에는 예끌라 와인 심의회(el Consejo Regulador de los vinos de Yecla)의 회장인 빠쓰꾸알 몰리노(Pascual Molino)씨가 한 지역 방송에 출연하여 예끌라와 후미야 와인이 기후 및 품종 등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스페인 내의 많은 온라인 와인 판매처에서는 예끌라와 후미야를 한 꼭지로 함께 분류해 놓기도 한다.
 

▲ 예끌라의 브랜드 로고 <사진 = Consejo Regulador de la D.O. Yecla>

지중해로 통하는 해발 500미터에서 800미터 내외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예끌라는 조금 더 바다에 가깝게 있기는 하지만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며 일교차가 크고, 겨울은 길고 영하를 밑도는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대륙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일조시간이 3,385 시간을 기록하기도 하였으며, 강수량은 300 l/m2를 넘지 않는다. 토양 또한 척박한 석회질로 후미야와 크게 다르지 않고, 대표적인 포도 품종도 모나스트렐(Monastrell)이다.
 

▲ 가을 햇살 속에 농익은 모나스트렐의 모습 <사진 = Consejo Regulador de la D.O. Yecla>

그러나 굳이 연혁을 따지자면 예끌라는 무르시아(Murcia) 지방에서 가장 먼저 와인 산지(Denominación de Origen)로 명명된 곳이다. 예끌라가 와인 산지 인정을 받은 시기가 1975년, 후미야가 그 뒤를 이어 1986년이다. 또한 전체 와인 생산 면적은 후미야 지방의 약 5분의 1정도밖에 안되지만 그 생산량의 95% 가까이를 스페인 밖에서 소비하고 있으니 예끌라 와인이 무르시아 와인 수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예끌라 와인의 리더 역할을 해온 곳이 까스따뇨 가문(Familia Castaño)에서 운영하는 와이너리다. 사실 무르시아 지방은 프랑스에 필록세라(Phylloxera)가 강타한 이후 부족해진 와인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저렴한 모스또(Mosto) – 와인을 만드는 베이스 또는 포도즙 – 를 주로 생산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까스따뇨 와이너리는 이러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양조기술과 품질 개선을 지속하면서 1980년대에 처음으로 자신만의 상표를 가진 와인을 출품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스페인 내에서는 예끌라가 와인 산지로서의 명성이 부족하였기에 시장 진입의 한계에 부딪혔고, 이때부터 내수 보다는 수출에 집중하면서 오늘날에는 전체 생산량의 85% 이상을 수출하는 와이너리로 성장한 것이다.

이후 까스따뇨뿐만 아니라 다른 와이너리들도 비슷한 전략을 취하여 현재 예끌라의 기록적인 수출 비중이 만들어 졌는데 이 과정을 함께 이끈 와이너리 중 하나가 바라온다(Barahonda)이고, 협동조합 형태로 젊은 피가 뭉쳐 힘을 보태고 있는 곳이 보데가스 라 뿌리씨마(Bodegas la Purísima)다. 이들 와이너리는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기아 페닌(Guía Peñín) 등의 평점에서 꾸준히 90점 내외를 오가는 대표적인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으며, 전세계 각종 와인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여 메달을 획득하는 등 자신들의 와인 품질을 알리는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 보데가스 까스따뇨의 에꿀라 <사진 = Bodegas Castaño 공식 홈페이지>

까스따뇨의 대표적인 레드 와인은 에꿀라(Hécula)인데 모나스트렐 단일 품종으로 빚은 뒤에 오크 배럴에서 숙성시킨 것이다. 에꿀라 2014년의 경우, 프렌치 오크 숙성 80%, 아메리칸 오크 숙성 20%를 배합하고 이중 50%는 새 배럴을 사용하여 강렬한 모나스트렐 와인에 걸맞는 부케를 만들기 위해 균형을 맞추었다. 코끝에서는 박하, 감초 등이 느껴지는 알싸한 발사믹 부케를 뚫고 진하게 피어 오르는 농익은 자두, 산딸기 등의 붉은 과실과 무화과 등의 달콤한 과육의 향이 빨리 와인을 마셔보고 싶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입안에서는 적절한 산도와 부드러운 타닌의 조화가 탄탄한 구조감과 함께 힘있게 느껴지며 감미로운 여운을 이끈다.
 

▲ 보데가스 바라온다의 바라온다 모나스트렐 <사진 = Bodegas Barahonda 공식 홈페이지>

바라온다의 대표적인 와인은 바라온다 모나스트렐로 2015년 산의 경우 독일 와인 대회인 문두스 비니(Mundus Vini)에서 올해 금상을 받기도 하였다. 붉은색 바탕의 레이블에 바라온다라고 쓰여있는 글씨는 스페인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쉽게 기억에 남는다. 붉은 체리색이 매력적인 이 어린 와인은 오크배럴 에이징을 하지 않은 와인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신선한 모나스트렐 과실의 본질을 잘 느낄 수 있다. 입안에서는 숲 속에서 막 가져온 듯한 잘 익은 붉은 과실들이 한데 어우러져 퍼지면서 입맛을 돋우고, 시간이 더하면서 부드러워지는 타닌과 달달한 과일향이 마무리를 부드럽게 한다.
 

▲ 보데가스 뿌리씨마의 올드 바인즈 익스프레션 <사진 = Bodegas Purisíma 공식 홈페이지>

라 뿌리씨마에서 생산하는 올드 바인즈 익스프레션(Old Vines Expression)은 이름 그대로 최소 35년 이상 된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일일이 손으로 수확한 포도를 천천히 발효하여 과육의 잠재력을 끌어올린 와인을 12개월 동안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숙성한 뒤에 모나스트렐 85%, 쉬라(Syrah) 10%, 가르나차(Garnacha) 5%를 블렌딩하여 만든다. 2009년 산의 경우 붉은 벽돌색과 가넷 빛깔의 와인은 긴 에이징에서 느껴지는 미묘하고 복합적인 향과 잼처럼 농축되고 달콤한 과육의 향이 코끝을 취하게 하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육감적인 힘을 다잡는 안정된 구조와 부드러운 타닌, 조화로운 산도가 긴 여운을 만들면서 그 무한한 잠재력에 빠져들게 한다.
 

▲ 신재연 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대학 졸업 후 8년여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IE Business School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Escuela Española de Cata 에서 Sommelier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스페인의 와인과 먹거리를 공부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신재연소믈리에  jane.jy.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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