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깐떼(Alicante)는 발렌시아(Valencia) 주에 속해있으면서 지중해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꼬스따 블랑까(Costa Blanaca) 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도시 및 주변 지역에 스페인 사람들은 물론 영국이나 북유럽 사람들이 여름 별장을 많이 가지고 있어 휴양 및 관광이 발달한 곳이다. 한편,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는 스페인 제화 브랜드 캠퍼(Camper)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와인 산지로서의 알리깐떼(D.O. Alicante)는, 일반적으로 토양에 모래가 많이 섞여 입자가 굵고 성긴 다공질이라 토양 표면이 건조하고 투수력이 높은 덕분에 포도나무가 각종 곰팡이 및 병충해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여 포도 재배에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해안에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름에 고온건조하고 겨울에 온난다습한 지중해성 기후가 겨우내 포도 나무가 수분을 보충하고 여름에 충분한 일조량을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대표적인 포도 품종은 모나스트렐(Monastrell), 모스까뗄 데 알레한드리아(Moscatel de Alejandría), 가르나차(Garnacha) 등으로 추려지는데, 한국에는 주로 모나스트렐 또는 가르나차로 양조한 드라이 레드 와인이 많이 수입되고 있다. 그러나 알리깐떼의 와인을 설명할 때, 이 지역 고유의 유서 깊은 스윗 와인 폰디욘(Fondillón)을 빼놓을 수 없다. 폰디욘이 바로 와인 생산지로서 알리깐떼의 특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 BOCOPA 와이너리에서 1970년에 생산된 폰디욘 와인. <사진 = 신재연 소믈리에>

폰디욘은 모나스트렐 품종으로 만들어지는 스윗 와인인데,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스윗 와인이 레드보다는 화이트 품종으로 많이 생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미 희소성을 가진다. 게다가 대표적인 스윗 레드 와인인 포르토(Porto)는 주정을 추가해 발효를 멈추는 방법으로 단맛을 강하게 유지하는 반면, 폰디욘은 자연스럽게 발효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그 이후에 남아있는 당분이 유지가 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단맛이 강하지 않고 훨씬 은근하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전자를 둘쎄 나뚜랄(Dulce Natural) – 자연 유래 단맛, 후자를 나뚜랄멘떼 둘쎄(Naturalmente Dulce) – 자연스러운 단맛으로 구분한다. 두 와인 모두 포도에서 유래한 당분으로 단맛이 나는 것은 같지만, 전자는 인위적으로 발효를 멈추고 보존한 당분이란 뜻이고, 후자는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단맛이란 의미로 구분하는 것이다.
 

▲ 좌측: 10~20년 사이의 폰디욘. 아직 붉은 루비색이 유지되면서 가장자리만 벽돌색이 나타난다. 우측: 20년 이상 숙성된 폰디욘. 짙은 마호가니 색을 중심으로 가장자리는 호박색을 띤다. <사진 = Consejo Regulador DOP Alicante>

폰디욘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나스트렐을 일반 수확시기보다 늦춰 포도나무에 달려있는 채로 완숙시키며 건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알리깐떼에 11월초까지도 초여름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포도에 대한 병충해나 오염에 대한 걱정 없이 포도를 자연 건조할 수 있는 깨끗한 환경이 있기에 가능하다. 일례로 올해 10월 말 알리깐떼의 낮 기온은 영상 25도를 웃돌았으며 햇빛 아래는 더 따뜻해서 필자와 친구들이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고 일광욕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환경에서 완숙 후, 자연 건조시켜 수확한 포도는 기본적으로 당분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이 허하는 선까지 충분히 발효를 하면 알코올 함량이 16도 이상이 되고 남은 당분이 유지되는 것이다. 또한, 모나스트렐 품종의 강한 잠재력은 높은 당분과 함께 와인이 장기 숙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한다.
 

▲ 폰디욘을 숙성시키는 배럴 <사진 = Consejo Regulador DOP Alicante>

발효가 끝난 와인은 배럴에서 최소 10년 이상을 숙성시켜야 알리깐떼의 폰디욘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이 때 새 배럴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폰디욘을 숙성시켰던 굉장히 오래된 배럴을 쓰며 헤레즈(Jerez)의 솔레라(Solera)*와 같은 방식을 따르는 것이 특징이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 전통적인 배럴이 일반적인 프랑스산 또는 미국산 오크 배럴이 아니라 알리깐떼 또는 알리깐떼 내의 모노바르(Monóvar) 지역에서 생산된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폰디욘이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가지게 되는 비결이라고 한다.
 

▲ 46년 숙성된 폰디욘의 빛깔. 레드 품종인 모나스트렐로 만든 와인이란 흔적을 찾기 어렵다. <사진 = 신재연 소믈리에>

처음 와인을 배울 때,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모두 산화가 지속되면 결국 같은 색에 이르게 된다고 배웠었는데 폰디욘을 보면서 그 결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필자가 시음한 1970년산 폰디욘은 모나스트렐과 같이 강렬한 레드 품종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옅은 마호가니 색에 오렌지 빛이 감도는 완전히 투명한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와인 잔을 가까이 하면 오래 숙성된 쉐리(Sherry)와 유사한 토스티한 향과 너트향, 달콤한 향이 따뜻한 나무향과 함께 부드럽게 느껴지고 입 안에서는 아몬띠야도(Amontillado)에 아주 약간의 뻬드로 히메네즈(Pedro Ximénez)를 첨가한 듯한 은은한 단맛이 신비감을 준다. 이 폰디욘 한 모금과 블루치즈 한입이면 입안에서 축제가 열릴 것만 같다.

2014년에 바르셀로나(Barcelona) 인근 해안 도시 따라고나(Tarragona)에서는 200년 전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함선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폰디욘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긴 항해의 피로를 잊고자 한잔의 폰디욘으로 자신들만의 축제를 즐겼던 것일까. 폰디욘 덕분에 우리는 200년 전 그들과 함께 축배를 나눌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 쏠레라(Solera): 스페인 헤레즈(Jerez) 지역에서 쉐리와 같이 배럴에서 장기 숙성하는 와인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숙성 방식. 생산 연도 순차로 배럴을 층층이 쌓아두고 매년 새로 생산한 와인을 제일 위에 쌓여 있는 배럴에 담으면서 아래 배럴로 일정 비율을 이동시켜 혼합 숙성시키는 방법. 스페인어로 바닥을 쑤엘로(Suelo)라고 하는데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오래된 와인이 완성되기 때문에 쏠레라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 신재연 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대학 졸업 후 8년여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IE Business School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Escuela Española de Cata 에서 Sommelier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스페인의 와인과 먹거리를 공부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신재연소믈리에  jane.jy.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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