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한 곳에 보관하시고 개봉 후에는 미생물이 증식할 우려가 있으니 반드시 냉장보관하여 빨리 드시기 바랍니다. 가열 또는 냉동 등의 급격한 온도 변화시 흰색 침전물이 생길 수 있으나 이것은 천연의 미네랄 성분으로 품질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먹는샘물 제품의 라벨에 표기된 문구이다. 지난주에는 빛과 보관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몇 주 전에는 보관 용기와 온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개봉 후에 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우리가 시중에서 구매해서 마시는 생수 제품은 수원지가 있다. 그 수원지에 위치해 있는 생수 공장들은 취수공으로 지하 대수층에 있는 물들을 끌어 올린다. 그 물들은 올라오기 전까지 많게는 수천 년, 적게는 수년 동안 지하 깊숙이 모인 대수층에서 함께해온 물들이다. 이 물들은 빗물이 여러 암층을 투과하여 대수층으로 흡수가 된다. 물들은 중력과 지압 등 외부의 힘을 받는다. 힘을 받아 암석과 암석 사이를 뚫고 다시 지표면으로 용출되기도 하고, 산에 위치한 대수층은 골짜기에서 시냇물이 되기도 한다.
 

▲ 물의 순환. 물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 물은 흘러야 한다. 고이면 썩는다. <사진=k-water>

물은 고이면 썩는다. 하지만 물이 흐르면 산다. 물은 끊임없이 순환해야 한다. 물은 스스로 정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몇 물은 수천 년의 빈티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국내 먹는샘물 제품은 보통 5~7년 정도의 빈티지를 갖고 있다.

이 물들이 유통기한 1년, 2년을 달고 시중에 출시되면, 물은 흐르지 못하고 정화력을 잃게 된다. 이는 500mL 작은 병에서건, 18.9L 큰 말통에서건 마찬가지다.

정화력을 잃게 된다는 건, 물 내에 미생물이나 환경호르몬 등이 증식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물이 검사를 받고 상품화될 시기에는 유통기한이 다 됐을 시기에 미생물 증식량을 고려하여 기준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유통기한에 가까운 물 보다 제조일자가 가까운 물일수록 미생물이나 세균 등이 덜 증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개봉 후에는 공기 중의 산소나 미생물 세균 등이 유입되면서 빠르게 증식한다. 개봉한 물들은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유통기한이 지난 미개봉 물보다 미생물이나 세균이 많이 검출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봉한 물은 세균이 증식이 느려지는 5도 이하의 온도에서 보관해야 한다. 가끔 개봉한 후 상온에서 하루가 지나서 마시는 물들을 테이스팅해보면 이미 수명이 다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상한 물을 마시는 것처럼 마시기 굉장히 힘들다. 뱉어야 한다.
 

▲ 국내 먹는샘물 수질 기준 중 세균 파트 <자료=김하늘 워터소믈리에>

2016년 통계자료를 보면, 먹는샘물 2L 묶음이 할인점을 제외한 모든 채널에서 판매 비중이 확대되었다. 일반 가정과 사무실에서도 생수를 많이 구매하고 있다. 또 주목할 점은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정수기 렌탈비용보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2L 묶음 생수를 구매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1인 가구에서 하루 권장량인 2L를 하루에 가정에서만 마셔서 채우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4인 가구, 5인 가구의 경우 여러명이 2L 한병을 매일 소비할 수 있지만, 나조차도 동생과 같이 사는 자취방에서 2L 한 병으로 3~4일동안 소비할 때도 있다. (나는 심지어 물을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에는 베란다의 그늘에 보관한다. 냉장고에 보관한 물은 너무 차가워서 속이 아프다.) 그렇게 되면 아마 2~3일째 마시는 생수의 경우 미생물이 기준량을 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물맛을 감별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면 라면을 먹을 때나 차를 끓일 때 활용하지만, 일반인들은 구별하기 어렵다.

동남아 여행 때도 관광 시 구매하는 생수들은 공장에서 그나마 위생적으로 제조한 생수도 몇 종류 있을 순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근처에서 수돗물을 받아서 핸드메이드로 뚜껑을 닫아서 유통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빈병 속을 물로 한번 부시고, 물을 채운 다음 뚜껑을 망치로 두드려 닫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이미 한번 개봉됐던 물이기 때문에 미생물이나 세균의 양은 안 봐도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1인 가구의 경우 2L를 오래 마시지 말고, 하루에 소비할 수 있는 소용량을 추천하며, 개봉 후부터는 냉장고에 꼭 보관해야 한다. 또 24시간 정도가 지났으면, 끓여 마시거나 안녕을 고하고, 찌개나 라면에 활용해도 좋다. (실제로 수돗물보다 생수가 라면을 더 맛있게 한다는 몇몇 실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셨다면 바로 마시고 있는 물들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혹 텀블러나 컵에 담아 오랫동안 마시는 분들이 있다면, 6시간 이상 보관하지 않는 게 좋다. 어차피 텀블러의 용량이 500mL 내외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관해서 마실 필요가 없다. 적당량을 담아 빨리 마시는 게 좋다.
 

▲ 김하늘 워터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김하늘은? 2014년 제 4회 워터소믈리에 경기대회 우승자로 국가대표 워터소믈리에다. 2015년 5회 대회 땐 준우승을 차지하며 연속 입상했다. 다수의 매체와 인터뷰 및 칼럼연재로 ‘마시는 물의 중요성’과 ‘물 알고 마시기’에 관해 노력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하늘 skylin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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