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먹어라’ 라는 표현 때문에 엿은 쉽게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관된다. 엿의 입장에서는 꽤나 억울한 일이다. 본래 엿은 고급 식품이었다. 궁에서부터 그 제작법이 전해졌다고 하며 여유 있는 집에서만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귀한 몸이었던 엿이지만 욕설과 연관되는 바람에 툭하면 농담의 소재가 되고 있으니 사람이었다면 팔자 한번 기구하다 할 것이다. 엿의 기구한 팔자(?)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은 폐백자리이다. 육포, 정과 등 귀한 음식으로 차려내는 폐백 음식에는 엿도 포함된다. 부부의 절을 받고 나면 폐백 음식을 하나씩 맛보게 되는데 이때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는 엿을 주는 경우가 많다. 며느리의 흉허물을 묻지 말고 잘 봐 달라는 의미라고 하지만 보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괜한 어색함을 지울 수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엿은 참 억울하다. 엿 만드는 과정을 알고 나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쉽게 '엿 먹어라' 하기에는 엿 먹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 엿 늘이기 과정. 두 사람이 양 쪽에서 잡고 늘이고 접고 꼬고를 수십 번 반복해야 한다.

이번 체험은 쌀엿 식품 명인으로 지정된 유영군 명인과 함께 했다. 명인은 창평에서 대를 이어 쌀엿을 만들고 있다. 명인의 쌀엿 만들기는 직접 쌀농사를 짓고 겉보리 싹을 틔우고 말리고 빻아 엿기름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준비한 쌀과 엿기름으로 식혜를 만들고, 식혜를 8~10시간 졸여 조청을 만들고, 조청을 3~4시간 저어가며 졸여 갱엿을 만든다. 그 갱엿을 사람 둘이 마주 앉아 늘이고 접고를 수십번을 반복한 후, 수증기를 쐬여 가며 다시 늘이고 접어 엿이 바삭바삭할 수 있도록 구멍을 만들고, 생강 빻은 것과 깨를 발라 마무리 한다. 찌고 발효시키고 졸이고, 말그대로 오만가지를 다하고 나야 1kg의 쌀에서 200g의 엿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 재료로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보게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기나긴 과정이다.

체험 전 명인이 준비해 온 엿을 하나씩 맛보았는데 바삭한 식감이 느껴지더니 이내 부드럽게 녹았다. 엿을 먹다가 이빨 때운 것이 떨어진 적이 있어 엿을 먹을 때는 항상 조심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체험을 하며 명인이 직접 그 자리에서 늘린 엿도 먹을 수 있었는데 그 엿은 따끈따끈 보들보들해서 부드럽게 녹는다 싶더니 곧 입 안에서 사라졌다. ‘이 맛있는 걸 먹는게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하고 먹으면서도 아쉬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맛도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깊이 있고 자극적이지 않은 단맛이었다. 내 머릿속엔 시판 캐러멜과 엿이 같은 카테고리에 속해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 갓 만든 엿. 늘이기 과정 덕에 결이 살아있다.

나중에 찾아온 목과 어깨의 후유증만 제외한다면 엿 늘이기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두 명이 양쪽에서 잡아 늘리는데 서로 리듬을 맞추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엿가락이 순식간에 늘어지거나 굳거나 해서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여러 팀이 체험하는데 여기저기서 상대방에게 훈수를 두거나 탓하거나 깔깔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부부가 발을 맞대고 마주 앉아 늘이곤 했다는데 커플끼리 체험으로 해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한방에서 엿은 허약한 것을 보하고 기력을 돕는다고 한다. 엿먹지 않기 위해 긴장하며 살아가야하는 사회다. 바삭거리는 엿을 아작아작 씹어 먹으며 그 힘을 얻어보는 건 어떨까?

참고로 농림식품부에서 운영하는 식품명인체험홍보관은 매주 식품명인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식품명인 혹은 그 전수자를 초청해 2시간 가량 전통식품에 대한 소개 및 간단한 체험을 제공한다. 토요일 프로그램도 자주 있어, 솜대리 같은 직장인이 전통식품을 체험하기에 적합하다. 프로그램 확인 및 예약은 해당 블로그에서 가능하다.
 

솜대리는?
먹기위해 사는 30대 직장인이다. 틈만 나면 먹고 요리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음식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식, 그 중에서도 전통식품에 대해 체험하고 공부해볼 예정이다. 이 칼럼은 익숙하고도 낯선 한국 전통식품에 대한 일반인 저자의 탐험기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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