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조태경] 집집마다 빚었던 가양주를 포함한 전통주의 가지 수는 쌀 처리방법, 술 빚는 횟수, 재료의 종류 등에 따라 2,000여 종이 넘는다. 술 빚는 방법도 제 각각 다르지만 필름카메라 다루기, 김치 담그기처럼 기본원리가 술 빚기에도 있고 그 원리대로 빚는 술이 있다.

바로 방문주라는 술이다. 요리의 조리법과 같이 술의 레시피를 주방문(酒方文)이라 하는데, 방문주(方文酒)는 ‘술 빚는 방법’대로 빚은 술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술이다. 이러한 뜻을 지닌 술은 대체 어떻게 빚는 것일까?
 

▲ 방문주 청주 뜨는 모습 <출처 : 소믈리에타임즈 DB>

먼저, 진도지방의 방문주 빚는 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멥쌀 1되 준비하여 가루로 만들고 물을 주어 섞고 백설기를 찐다. 물5되(9리터)에 따뜻한 백설기를 풀고 식힌 후에 1되 분량의 누룩을 넣어 잘 섞고 항아리에 담아 따뜻한 곳에 둔다. 4~5일 후, 찹쌀 1말(8kg)의 고두밥을 찌고 넓게 펼쳐 식힌다. 용기에 고두밥과 밑술을 옮겨 담고 잘 버무려준다. 항아리를 준비하고 먼저, 용수(청주가 안에 고일 수 있도록 대나무로 짠 길쭉한 모양의 소쿠리)를 항아리에 넣고 용수 주변을 술밑으로 채워준다. 15일 후면 맑은 술의 방문주가 용수 안에 고인다.

위 주방문이 꽤나 복잡해 보이고 술 빚는 원리가 있는지 미심쩍어 보이겠지만 이름처럼 ‘방문주’는 술 빚는 법의 기본을 담고 있는 술이다. 백설기로 빚는 진도 방문주 외에 죽으로 빚는 밀양의 방문주, 부재료를 이용하는 청양의 방문주 그리고 문헌에서만 기록된 범벅으로 빚는 방문주 있는데 같은 이름의 방문주라도 밑술 방법을 달리하여 다양한 술맛을 낼 수 있는 방문주를 얼마든지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가 있는 연유에서 그렇다. 즉, 한 가지 술이라도 목적과 취향에 따라 주방문을 응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처음 맛 본 방문주는 실망감을 안겨줄 정도였다. 오히려 다른 술 맛에 비해 밋밋하다 못해 가벼워 특색이 없는 술로 기억되기 십상이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송순주, 호산춘, 연엽양 등의 이야기도 성격도 화려한 술들에 순위가 밀려 기억의 저 멀리 자리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방문주의 진가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마도 작년 이 맘 때쯤일 것이다.

무심코 방문주 한잔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방문주 한잔을 맛 보았는데,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순간, 상쾌한 맛의 이태리 ‘소아베(Soave)'가 떠올랐다. 소아베는 청포도 가르가네가(Garganega)로 만든 화이트 와인으로 약간의 산미와 드라이한 맛으로 가벼운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리고 또 봄날 한잔하기에 그만인 와인이다. 간혹 이태리 유명한 와인 산지 키안티(Chianti) 와인처럼 저가와인으로 취급받기도 하지만(키안티 와인이 평범한 저가와인만 있다고 판단하면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큰 오산이다.

이런 점에서 소아베와 방문주가 유사부류라 생각된다. 생전에 가람 이병기 선생도 즐겼다는 방문주는 단맛이 적고 물리지 않는 술인 것 같다. 밑술에만 들어가는 물 양이 전체 쌀 양보다 많아 발효가 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잔당이 적은 술로 만들어진다. 또한 고두밥으로 덧술하여 알코올 도수가 높고 술 본연의 향기를 한껏 드러나게 하면서 맑은 술을 보다 많이 얻을 수 있으니 밑술과 덧술의 목적과 역할을 방문주에서 터득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몇 번의 만남으로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어 헤어져버린 사람,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남긴 물건이나 말에서 한결같은 사람이란 걸 깨달았을 때는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마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방문주가 그렇게 잊혀 졌지만 다시 방문주를 만났을 때, 한결같은 맛으로 곁에 있어주어 고마웠다. 내일은 방문주나 한독 빚어보아야겠다. 방문주는 물 양이 많으니 더운 날 빚으려면 술독관리에 특별히 신경 쓰면 좋겠다.
 

▲ 조태경 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전통주 소믈리에 조태경은 대학원에서 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공부했고 현재는 사)한국전통주연구소에 재직해 전통주를 배우며 관련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학원 재학 중에 사회적 기업과 슬로푸드 운동에 관심을 가진 것을 계기로 나눔과 공유할 수 있는 삶을 고민하고 있다. 2008년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인증 ‘마스터소믈리에자격’을 취득하였고 식음료에 관심을 가지고 바리스타 및 한식, 일식 등의 자격증도 이후 취득하였다. 2015 유네스코 지정 강릉단오제 신주빚기대회에서 ‘연화주’로 장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문의 조태경 전통주큐레이터 ebllin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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