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대리의 한식탐험은 한 달에 한 번 전통식품을 체험하고 이를 소개하고 있다. 매달 새로운 식품을 소개하기 때문에 모든 주제는 한 번씩만 다루어졌다. 이번 달은 처음으로 이 틀을 깨고 기존에 다뤘던 주제를 한번 더 다루고자 한다. 첫 예외의 주인공은 전통주의 대표주자, 감홍로다. 지난 5월 솜대리의 한식탐험에서는 감홍로가 어떤 술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다뤘다. (감홍로는 쌀과 누룩으로 빚은 술을 증류해 만든 40도의 소주에 여러 약재를 우려낸 평안도 지방의 술이다. 자세한 내용은 솜대리의 한식탐험 '조선 3대 명주, 감홍로'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내기엔 못 다한 이야기가 너무 많고 좋은 술의 여운이 너무 길어 감홍로를 다시 한번 만나보기로 했다. 감홍로 양조장에서 이기숙 감홍로 명인과 남편 (주)감홍로 이민형 대표를 다시 만났다.

▲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감홍로 양조장

조선시대 대표 명주인 감홍로는 평안도 술이지만 그 명성이 전국에 자자했다. 이기숙 명인의 집안은 여러 대에 걸쳐 평양에서 감홍로를 빚어왔다. 특히 명인의 아버지 이경찬 선생 대에 이르러서는 양조장이 얼마나 번창했던지 그의 결혼식은 전통식과 서양식 2번에 걸쳐 치러졌고, 결혼식 손님상에는 그 귀한 바나나가 올라갈 정도였다. 하지만 고난의 한국 근현대사는 감홍로의 명성과 명인의 집안에도 그늘을 드리웠다. 해방 직후 북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업가였던 이경찬 선생은 평안도를 떠나 남하했다. 미아리에 양조장을 세웠지만 곧 한국전쟁이 일어나 제대로 사업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시련은 멈추지 않았다.

전쟁 직후 부족한 쌀의 수요를 조절하기 위한 정책 중 하나로 쌀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되었다. 30여 년 간 쌀로 술을 빚을 수 없었고, 쌀이 주재료인 감홍로를 비롯한 많은 우리 술은 대중에게 잊혀 갔다.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1980대 후반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개최에 앞서 전통문화를 재조명하면서였다. 남몰래 술을 빚으며 우리 술의 명맥을 이어나가던 이경찬 선생은 1986년 문배주를 통해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그가 타계한 후에는 두 아들이 각각 문배주와 감홍로 기술을 공식 전수받아 식품 명인이 되었다. 하지만 꺼진 불씨를 살리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감홍로를 전수받은 이경찬 선생의 둘째 아들 이기양 명인이 2000년 타계하면서 감홍로는 명맥조차 끊길 위기에 처한다. 이에, 이기숙 명인이 본격적으로 감홍로 제조에 나선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가산을 털어 양조장을 세웠으나 매달 빚을 더해가기만 했다. 게다가 제도상의 허점으로 식품명인 지정도 쉽지 않았다.

▲ 쌀로 술을 빚는 게 금지되었던 1980년 몰래 빚은 감홍로와 명인의 아버지 이경찬 선생

명인으로 공식 인정받기 위해서는 직전 명인에게 직접 기술을 전수받아야 하나, 이기숙 명인은 직전 명인인 둘째 오빠가 아닌 아버지에게 기술을 전수받았다. 명인은 12년이 걸려 지난 2012년에야 식품명인으로 지정받을 수 있었다. 명인은 식품 명인 지정 후 빚은 더 내지 않는다고 웃었다.

감홍로의 역사는 전통주의 수난사를 대변한다. 일제시대, 6.25 전쟁 그리고 쌀로 술을 빚을 수 없던 기간 동안 전통주는 서서히 잊혀 왔다. 2000년대에 이르러 시장에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정부에서도 각종 부흥책을 내놓고 있다. 감홍로도 각종 언론 매체와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감홍로 양조장은 방문 당시 일시 정지 상태였다. 양조장 내 냉장설비가 없어 외부 온도가 올라가면 술맛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명인 부부가 직접 디자인한 감홍로 병과 패키지

여름 판매량은 기존 비축량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평소에도 양조장을 100% 가동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인 부부는 감홍로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취재를 하러 온 솜대리에게 오히려 감홍로의 패키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소셜마케팅 등에 대한 솜대리의 아무 말 대잔치도 적극적으로 경청했다. 제품 연구도 적극적이었다. 감홍로의 맛을 더 향상시키기 위한 고민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새로운 약재로 술을 빚어보고, 약재를 우려내기 전에 감홍로를 상품화할 고민을 했다.

양조장의 한쪽에는 세계 각국의 술이 놓여 있었다. 마신 술을 올려놨을 뿐이라고 했지만, 이야지는 곧 다양한 술에 대한 감상과 감홍로에 대한 고민 이야기로 이어졌다. 항상 월요병에 시달리고 일 년 내내 목 빠져라 휴가를 기다리는 직장인 솜대리는 자신의 일에 이만큼 열정을 가진 이 부부가 부럽기까지 했다.

▲ 감홍로 양조장에 있는 세계 각지의 술

전통주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전통주를 판매하는 식당과 매장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7월 1일 자로 전통주 온라인 판매채널도 확대되었다. 기존에는 생산자와 우체국, 농협 등 공적 온라인 쇼핑몰로 제한하던 온라인 판매 권한을 온라인 쇼핑몰까지 확대했다. 시장의 변화와 명인 부부의 노력, 감홍로의 매력이 함께 이루어나갈 변화가 기대된다. 

[솜대리는?] 먹기 위해 사는 30대 직장인이다. 틈만 나면 먹고 요리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음식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식, 그중에서도 전통식품에 대해 체험하고 공부해볼 예정이다. 이 칼럼은 익숙하고도 낯선 한국 전통식품에 대한 일반인 저자의 탐험기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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