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믈리에타임즈 | 조태경 기자] 하동에서 무슨 일이 있으려나보다.
나는 가지 끝에 매달린 꽃잎.
‘화류놀이’라 들렸다.

이주 전쯤 날이 따뜻해지니 나는 피어날 수밖에, 또 갑자기 비바람이 부니 나는 떨어질 수밖에, 그렇지만 화류놀이를 한다니, 좀 버텨보련다. 그것이 궁금했다.

4월 11일 주말, 오후 2시쯤 낯선 사람들이 ‘요산당’(하동 찻집) 마당에 모여들었다. 나무에 달려있는 나를 보더니 지친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꽃이 이제 지기 시작하나봅니다. 다행이에요. 오는 꽃길이 참 예뻤습니다.” 이제 지는 것이 아니라, 버틴 것인데... 자리가 채워질 무렵에 긴 수염의 남자(신평 김기상 화백)가 큰 붓을 들고 검을 천에 글씨를 써내려갔다.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대범하고도 우아한 글씨체였다. ‘꽃물 술잔에 담기’ 여기저기서 플래쉬가 터졌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나와 가락에 맞춰 노래를 한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자연을 벗 삼에 소리를 들으니 몸이 저절로 들썩인다. 사람들 앞에 술잔이 놓였다. ‘매화주’, 한잔 마시고 난 이들의 얼굴이 더 화사해진다. 나는 궁금하여 바람을 타고 술잔에 안착했다. 이 향기가 정말 매화인가? 매화의 향기를 맡으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에 질투심이 일었다. 은은한 향기에 금세 취할 것만 같아서..

음식도 각양각색으로 상을 가득 매웠다. 호박을 채운 피망전, 막걸리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구이, 부드러운 식감의 김치전과 쌉쌀한 맛의 도토리묵까지. 노래하는 여인들이 가고 긴 머리의 남자(진혼무의 대가 지홍 선생님)가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듯 했다. 그리고 다시 술잔이 채워졌다. 음악에 맞춰 남자가 새처럼 몸을 움직였다. 가볍고도 때로는 무겁게, 사람들이 눈을 잠시도 떼지 못한다. 그럼 이쯤 꽃비를 내려볼까? 저 멀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한껏 실었다. 비처럼 꽃잎이 떨어졌다. 술잔 위에, 머리 위에, 테이블과 온 사방에.. ‘와아’ 하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정말 아름답잖아요’, ‘이것 보세요. 꽃잎으로 수놓아진 것을요.’

나는 또 술잔에 떨어져 본다. 넌 복숭아꽃이지? 너에게 이런 향기와 매력이 있는 줄은 몰랐어. 술과 만나 이렇게 강렬한 향기를 뿜어내는 너에게 반할 수밖에..

그리고 사람들 머리 위에 내려앉아 같이 들썩였다. 다시 긴 수염의 남자가 나와 퍼포먼스를 펼쳤다. 한 여인이 툇마루에 앉아 ‘가야금’을 연주하더니, 이를 배경음악 삼아 긴 머리의 남자가 새처럼 날아올랐다. 음악에 꽃냄새에 달콤한 두견주 향기에 몸을 맡겼다. 갖추어진 형식도 틀도 없이 사람, 장소, 술과 꽃이 만나 들고 나가는 것이 미리 짜여진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마치 즉흥적인 한 판의 재즈 잼 같았지만 완벽에 가까운 연주랄까?

 

또 한 켠에서는 술 거르는 소리가 들렸다. 새처럼 날아오른 남자는 막걸리 한 잔을 받아 마시더니 새가 되어 날아갈 것처럼 보였고 꽃잎이 띄어진 술잔을 든 사람들의 표정은 더 없이 황홀해 보였다. 이런 표정은 참 오랜만이다.

며칠 전 거센 바람에도 휩쓸리지 않고 봉오리로 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안간힘을 썼던 일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런 ‘화류놀이’ 볼 수 있었을까?

저녁 무렵이 되자, 다 같이 펼친 자리를 정리했다. 또 누군가의 겉옷 주머니에 친구는 실려 갔다. 동감의숙(쌍계한의원 운영 게스트하우스)에서 긴 머리의 새가 된 남자와 긴 수염의 호랑이 같은 글씨를 쓰는 남자와 술 한잔 곁들여 ‘화류놀이’는 밤 늦게까지 계속 되었다고 한다. 다가오는 여름에도 이런 ‘화류놀이’가 있다면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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