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영의 바롤로 신발견] 지네스트라 MGA 바롤로로 각인된 엘리오 그라쏘
뭐든 주어진 일을 척척 해내는 만능맨이 있다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해야 좋은 성과를 내는 한우물 파도 있다. 어떤 와인 생산자의 성향은 본인이 구축해 놓은 제품 라인업이 말해준다. 범위를 바롤로로 좁힌다면 만능맨은 다채로운 밭에서 특징적 개성을 감지해 내는 능력이 출중하다. 그의 바롤로는 호기심을 자극하여 다른 밭의 맛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반면 한 밭만 파고들어 미세하게 표출되는 차이에 집중하는 생산자는 한우물 파다. 한 곳에 국한된 토양과 기후를 완벽하게 끌어내어 이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한우물 파 이름만 듣게 돼도 자동적으로 특정 밭과 메이커를 동일시하게 된다.
엘리오 그라쏘 바롤로를 뇌의 알고리즘에 접목시킨다면 지네스트라(Ginestra) 밭으로 동일시할 수 있겠다. 지네스트라는 바롤로 지역 최남단, 몬포르테 달바 코무네에 속한 주요 MGA (지리명칭 추가를 뜻하는 이탈리아 약어. 싱글빈야드, 크뤼의 동의어)다. 몬포르테 달바 코무네에 바롤로 밭으로 지정된 11개 MGA 중 하나다. 지네스트라 밭은 전체 면적이 114헥타르에 해발 고도는 최저 275미터, 최고 530미터 사이를 오르내린다. 토양이 형성된 시기가 신생대 3기 세라발레절부터 토르토나절(1천3백만 년 전~7백만 년 전)을 넘나드는 토질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바롤로 밭으로 지정된 구역은 60헥타르다.
지네스트라 밭 중앙을 흐르는 지네스트레(Rio delle Ginestre) 개천을 사이에 두고 북 지네스트라와 남 지네스트라로 나뉜다. 남북으로 구분한 밭을 확대하면 기반이 세분된 밭의 덩어리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북 지네스트라는 가바리니, 그라씨 밭이 들어 앉았으며 남 지네스트라는 파야나, 차봇 멘틴, 지네스트레 밭이 차지하고 있다. 후자인 지네스트레 밭은 대 여섯 군데 와이너리가 공유하며 막강한 국제적 인지도를 구가하는 도메니코 클레리코, 콘테르노 판티노, 디에고 콘테르노, 파올로 콘테르노가 공유하고 있다. 지네스트라 MGA는 면적이 넓기 때문에 소유주들은 바롤로 라벨에 MGA와 자신이 소유한 밭의 토속어를 나란히 표시한다. 도메니코 클레리코의 파야나와 차봇 멘틴, 엘리오 그라쏘의 카사 마테, 콘테르노 판티노의 비냐 소리 지네스트라, 비냐 델 그리스가 그것이다.
엘리오 그라쏘 와이너리의 1세대 엘리오 그라쏘가 가족 대대로 경작한 가바리니 밭을 물려받은 직후 착수한 일은 포도 납품을 중지하고 전량 직접생산 체제로 바꾼 거다. 이어 18헥타르의 토양을 면밀히 분석한 후 토질을 세 군데로 분해했다. 와이너리 주변에 위치한 원형극장을 닮은 밭은 디아노 달바 사암과 모래가 적당히 섞인 산타가타 이회토다. 후자는 점토와 석회석이 우월하나 소량의 모래가 향기 분자를 활발하게 일깨우며 미네랄, 산미, 타닌이 조화로운 맛을 낸다. 이곳은 끼니에라(Chiniera) 바롤로와 룬콧(Runcot)바롤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1km 떨어진 카사 마테(Casa Matè) 밭은 형성된 시기가 더 오래되어 레퀴오 토양이 두드러지며 엄격하고 맷집 있는 타닌으로 알려져있다. 일명 셀러에 놔두고 잊어버리는 와인에 걸맞은 바롤로가 나온다.
엘리오 그라쏘의 숙성 비밀- U자 터널
엘리오 그라쏘는 단출하게 네 개 품종만 가꾼다. 레드 품종은 바르베라, 돌체토, 네비올로등 토착종만 재배하고 유일한 국제품종은 샤르도네다. 품종과 토양의 시너지가 최우선이라 단일 품종 와인이 원칙이다. 양조시설은 두 군데로 나뉘며 전통농가를 개조한 2층 건물은 오너 가족 거주지와 보테 숙성실로 사용한다. 숙성실 내부는 25 헥터리터 용량의 보테가 즐비하며 들여놓은 지 14년~15년 됐으며 20년마다 새 것으로 교체한다. 전통스타일을 중시하는 끼니에라와 카세 마테 바롤로는 이 안에서 보테숙성을 18개월 한다.
이어 2세대인 잔루카가 기획한 ‘U’ 자형 터널은 현대적 취향의 와인 숙성 공간으로 배정했다. 전통농가 숙성실 배후에 있는 언덕 밑을 뚫어 완성했는데 공사기간이 4년이나 걸렸다. 건물에 가족이 살고 있어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릴 수 없어 굴착기를 동원하여 하루에 1미터 밖에 뚫을 수 없었다. U자 형태로 굽은 90미터의 터널내부는 바리크 실, 병 숙성 공간, 올빈 셀러, 패밀리 콜렉션 공간을 들였다. 내부는 와인저장에 최적화된 상대습도 70도, 13도에서 15도를 유지한다.
바리크 원산지는 알리에산으로 리제르바 룬콧 바롤로 , 샤르도네, 바르베라 달바 수페리어 숙성에 사용한다. 패밀리 콜렉션 공간은 올드 빈티지가 빼곡히 들어찬 와인 아카이브다. 1978년부터 숙성력이 뛰어난 바롤로, 바르베라 달바 수페리어 와인 중 150~200병을 가려내 저장해 둔 일종의 와인 타임머신이다. 특별 이벤트나 기념식에 개봉하거나 정기적으로 숙성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와인을 저장하고 있다. 최고령 빈티지는 1978년 산 끼니에라 바롤로다.
피에몬테적인 와인
엘리오 그라쏘 가족과 비록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피에몬테주 출신이 운영하는 곳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에서 밭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특유의 수줍고 내향적인 성격은 자칫 차가운 사람이란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일단 초면의 어색한 분위기가 걷히면 이탈리아인 특유의 낙천적인 면이 드러나면서 봇물처럼 터진 말문을 닫기 어려울 정도로 수다쟁이로 변신한다.
엘리오 그라쏘의 첫인상을 강화시켰던 요인은 위치가 외진 곳이라 더했다. 바롤로 지역 남쪽 몬포르테 달바 마을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정문까지의 소록길은 빽빽한 숲에 나 있어 한 낮이라도 어둡다. 숲이 끝나는 내리막 길에 서있는 정문을 빠져나와 경내로 들어서면 그 선경에 놀라게 된다. 안뜰 한가운데 잘 다듬어진 잔디와 2백 년 된 에드라 고목이 서 있다. 이러한 은둔적인 위치는 청정한 환경과 더불어 와인에 품격을 더 하는 자연선물처럼 느껴진다.
랑게 DOC 샤르도네 에두카토 2023 - Langhe DOC Chardonnay Educato 2023
와인 이름인 에두카토(Educato)는 교육시킨다는 의미로 토착 레드 품종을 가꾸던 땅에 외래종인 샤르도네를 적응시킨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알코올 발효를 마친 샤르도네를 삼등분해서 새 바리크, 두 번 이상 사용한 바리크, 스테인리스 스틸탱크 에서 각각 6개월 숙성했다. 고소한 버터, 아카시아 꿀과 바나나의 달큰한 향기가 퍼지다가 레몬, 청사과, 서양배의 상큼함이 끼어든다. 깔끔한 산미, 레몬향이 입안 가득히 번지며 버터 캔디를 혀에 머금은 듯 입안이 매끈하다.
돌체토 달바 DOC 2023- Dolcetto d’Alba DOC 2023
천연향을 보존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알코올 발효를 마친 와인을 그 안에 놔둔 채 6개월 숙성했다. 체리, 장미, 딸기 향에 취하다 불현듯 피어나는 라벤더 향기가 네비올로 감성을 부추긴다. 살라미, 묵직한 맛의 치즈 플레이트와 궁합이 맞는 고급스러운 데일리 와인이다. 젊은 타닌의 날카로운 각이 느껴지나 깔끔한 산도와 어우러져 와인에 생기가 돈다.
바르베라 달바 DOC 비냐 마르티나 2022 – Barbera d’Alba DOC Vigna Martina 2022
마르티나 밭에서 40년 수령의 바르베라를 담았다. 마르티나 밭은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바롤로로 지정된 가바리니 밭과 마주하고 있다. 바르베라의 개성에 바롤로를 낳는 토양의 화사한 꽃 부케가 피어오른다. 새 바리크와 두 번 사용한 바리크에 나누어 각각 16개월 숙성했다. 흑연, 흙, 사워 체리, 흑자두, 정향 내음이 콧 속에 가득하다. 네비올로 와인의 특징인 바이올렛, 라벤더, 낙엽의 힌트도 내비친다. 오크에서 녹아든 타닌이 내는 묵직한 맛과 산도의 신선한 맛이 명랑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목 넘김이 뛰어나며 풀보디에 깃든 강건함으로 볼 때 15년은 거뜬히 견딜 것 같다.
바롤로 DOCG 가바리니 끼니에라 2020- Barolo DOCG Gavarini Chiniera 2020
끼니에라는 와이너리 건물 뒤쪽에 솟아오른 가바리니 언덕 무리 중 해발 450미터대에 조성된 남동향 밭이다. 면적은 좁지만 디아노 달바 사암과 산타가타 이회토가 교차한다. 이곳에서 수확한 수령 35~40년의 네비올로를 보테 2년, 1년 병 숙성 후 출시했다. 체리, 장미, 정향, 감초, 유칼립투스, 오렌지 껍질이 발산하는 은은한 향기를 맡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만다. 잔에서 피어나는 여러 향기는 직관적이며 개성을 솔직히 표현한다. 미각을 자극하는 타닌은 섬세하면서도 탄탄한 구조를 겸비하고 있다. 미묘한 떫은맛이 편안한 식감을 주며 잔향에 상큼한 과일향이 배어있다. 여운에 깃든 캐러멜, 버섯향이 감칠맛을 더한다.
바롤로 DOCG 지네스트라 카사 마테 2020- Barolo DOCG Ginestra Casa Matè 2020
카사 마테는 레퀴오 토양과 산타가타 이회토가 만나는 지층 위에 조성된 밭이다. 레퀴오 토양의 단단한 구조는 엄격한 타닌으로 발현되며 산타가타 이회토는 거친 타닌 느낌을 완화하는 동시에 산도 밸런스와 복합미에 기여한다. 정동을 바라보는 해발 350미터 밭에서 자란 60년 고목의 내공을 가득 담고 있다. 타바코, 젖은 흙, 가죽, 블랙 티, 캐러멜, 바닐라, 사워 체리향이 강렬하게 후각에 파고든다. 앞의 모든 향기의 강도가 줄어들 무렵 피어나는 라벤더, 장미향이 신비롭다. 빈틈없이 찬 밀도감과 타닌의 중후함으로 인한 깊은 맛이 탄탄한 구성력을 뽐낸다. 빠르게 퍼지면서 신경을 붙들어 매는 타닌의 몰입감이 뛰어나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