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3대 희소 와인 생산자

2024-11-10     백난영
가비아노 성. 제노바 거부 카타네오 아도르노 주스티니아니 가문의 피에몬테주 거주지다. 하층부는 피에몬테 2대 희소와인 양조시설, 상층은 패밀리 소장 올빈 뱅크로 활용되고 있다

보통 와인산지하면 겹으로 이어진 산능선을 굽이치는 포도밭을 떠올린다. 언덕과 포도밭 세트는 어디에나 들어맞는 조합은 아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중부 몬테라토 지역에 자리 잡은 가비아노 와인 산지가 그렇다. 가비아노는 유럽 최대 쌀 곡창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광활한 논 가운데 비집고 들어선 기다란 언덕은 늦가을이면 검붉은 열매가 열린 포도밭이 가로지르는 섬 해안을 누렇게 익은 벼의 황금 바다가 적신다. 가비아노는 온난기후대인 북위 45도 선이 통과하는 지점에 놓여있다. 130km 거리에 있는 알프스에서 불어오는 칼바람,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온 리구리아 해풍이 이곳에서 뒤섞이고 기세가 한풀 꺾인다. 온화한 기후의 영향은 순박함으로 치환되어 훈훈한 시골인심으로 되살아난다.

카타네오 아도르노 주스티니아니 후작가문이 가비아노 마을에 정착한 시기는 1624년이다. 가비아노 일대는 원래 만토바 공국의 군주 곤자가 가문의 영토였던 것을 카타네오 아도르노 주스티니아니 가문에 후작작위가 이양되면서 가비아노 성과 260헥타르의 광대한 농토를 다스리게 되었다. 후작 가문은 원래 알바니아 출신으로 14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핍박을 피해 제노바 공화국으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무역과 은행업으로 부를 거머쥐면서 제노바 이인자로 등극한다. 16세기에 설립한 가문의 공식거처인 카타네오 아도르노 팔라초 성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42개 제노바 궁전 중 하나다.

가비아노 일대는 주산물이 쌀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바르베라, 그리뇰리노, 프레이사 와인 산업도 번성했다. 가문의 성채 구조만 해도 생활공간인 상층을 제외하고 영지에서 거둔 전량의 포도를 처리하고도 남을 양조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몬페라토 지방은 집짓기 전에 식품과 와인 저장고를 먼저 들이는 전통이 있었다. 이 저장고를 인페르놋 Infernot이라 하는데 석회석 암반을 곡괭이로 파 내어 만든 지하실이다. 인페르놋을 완성한 후 집 기둥을 세울 정도로 중시했다. 집집마다 인페르놋 한 개씩은 다 갖고 있고 그 안에는 문자가 퇴색한 라벨 위로 두꺼운 먼지가 내려앉은 와인 무더기쯤은 있게 마련이다. 지상 기온이 더위와 추위로 널뛰기를 해도 항시 15도를 넘지 않으며 피부에 와닿는 공기도 쾌적하다. 식문화 보전 지혜의 보고인 인페르놋을 2014년 몬페라토 와인 산지가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지정될 때 함께 등재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페르놋을 개조한 패밀리 소장 올빈 뱅크

아도르노 주스티아니가 사람들은 독특한 와인보관법을 대물림했다. 이곳 통념을 벗어나 인페르놋을 성의 가장 높은 층에 설치했다. 적의 동태를 감시할 수 있고 적과 대치 시 가장 안전한 장소로 와인보관에 이보다 적소가 없다는 데 근거한다. 최근에 인페르놋 내부를 패밀리 빈지티 뱅크로 리모델링했다. 와인의 천적인 태양광이 뚫지 못하게 창문 겉에 나무 덧창을 대어 차단했다. 가장 오래된 와인은 1803년 산, 최근 빈티지는 1957년이다. 작황이 우수한 해만 선별한 리제르바 2천 여 병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가비아노의 블랜딩 기법으로 만든 바르베라, 프레이사 와인이 담겨있다. 다수의 와인은 보관상태가 좋아 음용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한 와인은 병을 세로로 진열해 시음불가를 표시했다.

보통 패밀리 소장 와인은 가족의 특별한 날에만 열기 때문에 당사자가 아니면 그림의 떡이다. 그러나 프라이빗 시음을 예약하면 일반인도 과거가 소환된 맛을 즐길 수 있다. 마침 성의 일부를 호텔로 개조해 호젓한 휴식을 꿈꿔 온 와인애호가라면 시음과 휴가를 엮는 투어를 계획하기 안성맞춤이다. 경내 한쪽으로 식초를 만들던 옛 건물을 개조한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는 데 옛 비법으로 요리한 몬페라토 메뉴를 선보인다. 힐링, 맛, 와인이 만나는 그야말로 휴식천국이다.

인페르놋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나무박스 더미가 천장까지 닿아있는 공간이 다가선다. 박스마다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 아도르네스 병이 가득 담겨있다. 숙성력이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빈티지는 박스에 갇힌 채 10년 더 머무른다. 10년으로 선을 그은 건 그때에 이르면 고른 풍미와 균형미가 자리잡지만 더 보관하면 숙성부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시기라 그렇다. 병마다 이미 라벨이 부착돼있는 것도 독특하다. 박스 자체는 적절한 공간을 형성해 라벨정보가 지워질 염려가 없어서다. 보통 병 숙성 중인 와인은 무(無) 라벨로 두었다가 주문이 있을 때 라벨작업에 들어가는 데 습기나 먼지가 라벨이 훼손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탈리아 3대 희소와인 생산자

가비아노 성이 위치한 언덕은 이탈리아 등급와인 중 면적과 생산량으로 가장 희소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가비아노와 루비노 디 칸타벤나 와인산지로 마치 몬페라토 지방이 최후순간을 위해 숨겨 온 히든카드 같다.

가비아노 와인은 1984년 DOC로 승인이 났고 생산 허용 지역은 가비아노 코무네와 몬체스티노 코무네가 유일하다. 등급와인 생산 면적이 3헥타르로 좁지만 생산자가 오직 후작가문뿐이라 희소성이 더하다. 바르베라(최소 함량 90%~최대 95%)가 주된 품종이고 프레이사 또는 그리뇰리노 품종을 소량(5%~10%) 블랜딩 할 수 있다. 과실풍미와 싱그러움이 가득한 가비아노 타입과 가비아노 리제르바가 있으며 후자는 최소 2년 숙성을 통해 복합미를 끌어올렸다.

가비아노 DOC 리제르바 2017- 1904년에 디자인한 병에 담아 고풍스러운 멋을 살렸다. 바리크 숙성 20개월과 병숙성 1년을 더했다. 가비아노 바르베라는 색이 짙고 신맛도 적당히 지닌다. 체리, 자두, 키나, 초콜릿, 사워 체리의 들큼함이 향기롭다. 5% 비율로 섞은 프레이사는 순한 타닌으로 존재감을 나타낸다.

바르베라는 어원이 야만족을 일컫는 바르바리(barbari)에서 유래한다. 바르바리 부족은 재배가 어렵지 않고 소출량이 풍성한 포도를 가꾸었는데 이를 부족명을 딴 바르베라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 후 좀더 진화된 문명을 갖춘 로마인이 점령하면서 재배가 까다로운 그리뇰리노, 프레이사 품종이 전래됐다.

루비노 디 칸타벤나 Rubino di Cantavenna는 1973년에 도입된 역사가 꽤 긴 DOC 등급이다. 생산지역은 가비아노 코무네로 단일하고 범위는 등급 확정 당시 그대로다. 이 와인에 종사하는 생산자가 다섯 명 내외인 초미니 등급이다. 이 와인을 적극적으로 등급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한 사람은 이탈리아 DOC 규정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올로 데사나 Paolo Desana다. 몬페라토 출신으로 상원의원을 역임했으며 희소성을 들어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의 가비아노 와인처럼 품종은 동일하나 보조품종인 프레이사와 그리뇰리노 비율을 최대 25%까지 늘린 게 다르다.

카스텔로 디 가비아노가 출시한 2018년 산 루비노 디 칸타벤나는 바르베라(75%)와 프레이사(25%)만 사용했고 톤노 12개월 숙성했다. 가비아노와 비슷한 품종을 대비시켜 테루아의 차이를 보여주려 했다. 자두, 라즈베리, 블러드 오렌지, 허브, 단맛 과일 향이 은은하다. 가비아노 보다 산미가 진하고 미네랄 풍미가 두드러진다. 타닌은 소량으로 절제된 느낌과 바르베라의 산미가 균형을 잡아주어 탄탄한 바디를 이룬다.

그리뇰리노 품종은 로제로 착각할 만큼 맑은 루비색과 후추향이 특징인 토착품종이다. 그러나 가비아노와 루비노 디 칸타벤나 땅에서 자라면 익숙했던 맛이 고정관념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몬페라토 카살레 그리뇰리노 Monferrato Casale Grignolino 2022-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숙성한 와인의 순수한 아로마를 보여준다. 붉은빛의 열정, 천도복숭아의 달콤함, 라즈베리, 백후추, 흙 향기가 가득 퍼진다. 알코올 도수가 14도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큼한 산미가 발랄함을 준다. 부드러운 타닌과 미디엄 바디를 갖추고 있어 음식과 페어링해도 손색이 없다.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 아도르네스 Barbera D’Asti Superiore Adornes 2015- 18개월 톤노 숙성한 검붉은 빛과 풀바디를 만끽할 수 있다. 흙의 눅눅함, 버섯, 허브, 후추, 초콜릿에 이어 농밀한 블랙베리, 사워체리, 말린 꽃다발이 향연을 펼친다. 뛰어난 산미의 밸런스, 타닌의 세기보다는 조밀함이나 세밀함 같은 미각에 와닿은 질감에 역점을 두었다.

인간의 손길만 허용하는 제노바 계단식 밭이 낳은 희귀 와인

가타네오 아도르노 주스티아니 가문의 희소와인에 대한 열정은 아펜니노 산 넘어 제노바까지 미친다. 앞서 언급했지만 제노바는 가문의 역사가 시작된 근거지다. 가문의 대물림 공식거처인 제노바 성을 기반으로 17세기에 가비아노와 남 스페인의 그라나다까지 세력을 넓혔다.

후작이 제노바 토착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5년 제노바 외곽 리구리아 만에 4.5헥타르의 포도밭을 인수하면서부터다. 과거에 와인 생산이 번성했으나 전후 불황기에 접어들자 농부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바람에 농토가 심하게 훼손됐다. 1999년에 발폴체베라 DOC등급에 지정되었으나 워낙 방치된 기간이 길어 전란 이전 상태로 복구 작업이 더디다.

밭 매입에 이어 빌라 캄비아소란 이름으로 와이너리를 창립했다. 먼저 밭이 방치되기 전 상태로 재건했고 토착품종인 비앙케타, 베르멘티노, 알바롤라를 가꾸었다. 리구리아 지형특성상 비탈진 해안가 절벽을 십분 활용한 계단식 밭 복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계단식 밭이라 농장비 접근이 불가해 노동력에 대부분 의존한다.

상황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발폴체베라 와인 생산자는 네 명에 불과하며 연 생산량은 3천 5백 병 수준이다. 비앙케타 품종은 제노바 토착화이트로 유전자 검사 결과 바르베라 변종으로 밝혀졌다. 제노바 인근에서는 후작가문 포함 두 명 만이 와인으로 선보이고 있다.

비앙케타 콜리네 델 제노베사토 IGT 2023- 리구리아 해를 마주한 남서향 밭의 태양과 해풍을 맞고 자란 비앙케타를 담았다. 파인애플, 사과, 캐모마일, 고소한 구운 빵, 타임, 살구, 복숭아 향이 피어난다. 산미가 입안에 머무는 동안 새콤함과 미네랄의 쌉싸름한 풍미가 혀를 감싼다.

발폴체베라 Doc 코로나타 2023 -베르멘티노, 보스코, 알바롤라의 블랜딩. 파인애플, 캐모마일, 샐비어, 타임, 레몬, 숲에 감도는 풀과 허브와 뒤섞인 향이 지중해 감성을 펼친다. 여운을 깔끔한 맛으로 마무리하는 똑 부러지는 와인이다.

발폴체베라 에 갈레 베르멘티노 Doc 2023-토스카나 베르멘티노의 복숭아, 레몬향에 진저와 부싯돌의 이국적인 느낌이 교차한다. 입안가득 산미의 상큼함, 미네랄의 감칠맛이 느껴지며 와인이 목을 적실 때 아몬드 향이 아른하게 느껴진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