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현수의 프랑스 와인여행] (5) 부조의 숨은 보석 같은 와이너리, 크리스티앙 끌레흐제(Christian Clerget)
2025년 1월, 본격적인 프랑스 와인 여행을 떠나기 위해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여정에서 들려드릴 첫 번째 이야기는 부르고뉴 부조 마을에 자리한 숨은 보석 같은 와이너리, 크리스티앙 끌레흐제(Christian Clerget)이다.
와이너리 이야기
도멘 크리스티앙 클레제(Domaine Christian Clerget)는 1930년 설립된 이후 4대째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부조를 중심으로 샹볼 뮈지니(Chambolle-Musigny), 모레 생 드니(Morey-Saint-Denis), 부죠(Vougeot), 본 호마네(Vosne-Romanée) 등 총 6ha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크리스티앙 클레흐제 와이너리는 떼루아의 순수한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화학 비료와 농약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유기농 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2017년 ECOCERT(에코서트) 유기농 인증을 획득했다.
현재 크리스티앙 끌레흐제(Christian Clerget)가 와이너리를 책임지고 있으며 그의 아내 그의 아내 이자벨(Isabelle)이 경영, 행정, 영업 관리를 맡아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딸 주스틴(Justine)이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카파(CFPPA, 프랑스 와인 양조 학교)를 졸업한 후,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국가에서 양조 경험을 쌓으며 실력을 다진 후 도멘으로 돌아와 와이너리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와이너리 방문
설레는 마음으로 와이너리에 도착하자, 크리스티앙 클레르제(Christian Clerget)가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그는 다소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지만, 와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와인이 숙성 중인 지하 꺄브(cave)로 향했다. 숙성 중인 오크통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와인의 향과 효모의 내음이 공기를 가득 채웠고, 그 향만으로도 큰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특별한 기회로, 아직 병입되지 않은 2023년 빈티지를 테이스팅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2024년 빈티지 - 가장 힘들었던 한 해
2024년은 가장 어려운 한 해로 기록될 만큼 힘든 해였다. 봄철에는 우박과 서리 피해로 인해 큰 생산량 손실이 발생했다. 여기에 7월의 잦은 강우로 인해 포도나무에 밀디우 곰팡이(Mildew)가 퍼지면서 피해가 더욱 커졌다. 결과적으로, 전년 대비 포도 수확량이 60~80% 감소하는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포도들은 집중도와 농축미가 뛰어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 비록 수확량은 줄었지만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포도나무 수령
이날 와이너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크리스티앙 클레흐제 도멘은 보느 호마네(Vosne-Romanée) 지역에 위치한 "레 비올레뜨(Vosne-Romanée Les Violettes)" 포도밭을 0.37ha 보유하고 있다. 이 포도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1946년에 포도나무가 식재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역사를 간직한 채 남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오래된 포도나무(Vieilles Vignes) 중에서도 80년 이상 된 매우 희귀한 포도나무를 Très Vieilles Vignes"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만 나무가 오래될수록 수확량이 급격히 감소해, 한 그루당 포도 열매가 1~2송이밖에 맺히지 않지만 극도로 농축된 풍미와 복합적인 아로마를 지닌 와인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이날, 2023년 빈티지 레드 와인들이 아직 병입되지 않고 오크통에서 숙성 중이라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기온이 낮을 때 병입을 하게 되면, 차가운 병과 와인이 만나면서 산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와인을 좀 더 숙성시키고 적절한 온도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덕분에 병입 전 2023년 빈티지 와인들을 테이스팅 할 수 있었다.
화이트
Morey-Saint-Denis Les Crais Blanc 2022
모레 생 드니(Morey-Saint-Denis) 지역에 0.23ha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곳의 포도나무는 2003년에 처음 식재되었다. 포도 품종은 Chardonnay (90%), Pinot Blanc (5%), Pinot Meunier (5%)가 블렌딩되었다고 한다.
양조 과정은 포도를 송이째 직접 압착한 후, 오크 배럴에서 천천히 발효를 진행하며, 이후 12개월 동안 오크 숙성을 거친다. 어린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레몬, 사과 배 등 생동감 넘치는 과실미가 풍부했으며, 입안에서는 신선한 산미와 미네랄리티가 조화를 이루면서 은은한 버터리한 풍미가 매력적이었다.
레드
Bourgogne Pinot Noir 2023
GillyLes-Cîteaux 와 Vosne-Romanée 지역의 올드바인에서 수확한 피노누아를 사용하며 18개월 오크 숙성을 거친다. 비교적 어린 와인이지만, 향에서부터 신선한 딸기와 라즈베리 등 잘 익은 붉은 과실 아로마가 인상적이었다.
Chambolle-Musigny 2023
평균 수령 40년 이상 된 샹볼 뮈지니의 6개 작은 파셀(Les Athets, Les Babillères, Les Herbues, Les Nazoires, Les Bussières, Les Condemenes)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했으며, 18개월 동안 오크 숙성을 거쳤다.
샹볼 뮈지니를 대표하는 교과서적인 와인으로, 잔에서 피어나는 우아하고 화려한 장미꽃 향이 인상적이었다. 입안에서는 실키한 탄닌이 부드럽게 퍼지며, 긴 여운을 남기는 와인이었다.
Chambolle-Musigny 1er Cru Les Charmes 2023
샹볼 뮈지니에서 가장 유명한 1er Cru 포도밭 중 하나인 만큼 이름 그대로 매력적이고 화려한 향이 인상적이었다.
풍성한 검붉은 과실의 아로마와 마치 장미밭에 온 듯한 화려한 꽃향기가 매혹적이었다. 입안에서는 복합적이면서도 풀 바디의 구조감이 인상적이었으며, 지금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향후 10년 후의 발전된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와인이었다.
Chambolle-Musigny 1er Cru Aux Croix 2023
단 0.23ha에 불과한 매우 특별한 밭이다. 1975~1980년도에 처음 포도나무가 식재되었으며 18개월 오크 숙성을 거쳤다. 샹볼 뮈지니 레 샴은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스타일이었다면 Aux Croix 와인은 그 반대로 더욱 우아하고 섬세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와인이었다.
Vosne-Romanée Les Violettes 2023
이 와인은 1945년에 심어진 80년이 넘은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양조되었으며, 수령이 오래된 포도나무이기 때문에 한 그루당 단 1~2개의 작은 송이만 맺히지만, 그만큼 깊고 집중된 풍미를 지닌 와인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잔을 기울이자마자 감초와 정향 등 스파이시한 아로마가 피어오르며, 입안에서는 복합적이고 매우 긴 여운이 인상적이었다.
Vougeot Premier cru Les Petits Vougeots 2023
단 0,46ha의 작은 면적을 소유하고 있으며 포도나무는 1978년에 처음 식재되었다.
특히 이 포도밭은 샹볼 뮈지니(Chambolle-Musigny)의 "Les Amoureuses"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그 영향을 받아 더욱 화사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첫 향에서는 감초와 비올레뜨(Violette, 제비꽃)의 향이 끊임없이 피어올라 마치 꽃밭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고 입안에서는 실키한 탄닌이 부드럽게 퍼지며,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Échézeaux Grand cru En Orveaux 2023
이 와인은 1945~1946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심어진 포도나무에서 수확된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이며, 1.09ha 면적의 포도밭에서 탄생했다.
그랑 크뤼답게 강건하고 깊은 구조감과 복합적인 아로마를 보여주며, 최소 10~20년 이상 숙성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는 와인이었다. 잘 익은 검붉은 과실의 농축미와 감초, 정향 등 스파이시한 풍미와 더불어 강한 힘과 긴 여운을 가진 와인이었다.
이곳의 와인을 테이스팅 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향이 마치 향수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매력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와인을 사랑하는 가족들의 진심과 열정이 와인 한 병 한 병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한다면, 도멘 크리스티앙 클레흐제의 와인은 꼭 한번 테이스팅 해보길 추천한다.
마현수 소믈리에
국제 와인 전문가 인증과정 WSET Level 3 취득
Court of Master Sommelier, Certified Sommelier 취득
(현) 레스토랑 MUOKI Head Sommelier 근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