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갑자기?” 이제 유럽산 위스키에는 ‘이것’ 명칭 볼 수 없어
- 유럽산 라이 위스키, 더 이상 ‘라이 위스키’로 표기 불가
유럽연합(EU)과 캐나다 간 20년 전 체결된 협정이 갑작스럽게 시행되면서, 유럽의 위스키 제조업체들은 자사 제품에 ‘라이 위스키(Rye Whisky)’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주류전문매체 더스피릿비즈니스에 따르면 이 협정은 2004년에 체결되었으나 오랜 기간 잊혀져 있다가 4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다. 만우절에 시행되었지만, 이는 결코 농담이 아니다. 이로 인해 덴마크의 스타우닝(Stauning)과 티(Thy), 핀란드의 키뢰(Kyrö), 독일의 스토르크(Storck), 오스트리아의 루오트커스(Ruotker’s) 등 유럽 전역에서 라이를 원료로 한 위스키를 생산해온 증류소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키뢰 증류소는 링크드인(LinkedIn)에서 이번 사태를 ‘outryegous’(outrageous와 rye를 합친 단어)라고 표현하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스타우닝 위스키의 공동 창립자이자 마케팅 최고 책임자인 알렉스 먼치(Alex Munch)도 “EU가 이러한 협정을 체결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며 비판했다.
먼치는 “여러 국가에서 위스키의 원료로 사용되는 라이를 특정 국가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것은 마치 프랑스를 제외한 국가에서 ‘포도(grape)’나 ‘와인(wine)’이라는 단어를 제품 설명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보호 명목의 규제, 실효성 의문
해당 법률은 캐나다산 라이 위스키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나, 정작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라이 위스키는 반드시 라이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먼치는 “샴페인(Champagne)이나 파르메산 치즈(Parmesan)처럼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호 체계를 적용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며 “캐나다산 라이 위스키를 보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현재 협정의 형태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스타우닝은 앞으로도 덴마크 서유틀란드(West Jutland)에서 라이 위스키를 생산할 것이며, 비록 라벨 표기를 변경해야 할 수도 있지만, 위스키의 품질이나 제조 방식에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년 된 협정, 아무도 몰랐다
이 협정은 유럽의 위스키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캐나다 측에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 협정이 체결될 당시 유럽에서는 라이 위스키 생산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논의 없이 방치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치는 “20년 동안 아무도 이 협정을 알지 못했으며, 캐나다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승인 절차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국 시장에서는 오히려 ‘라이 위스키’라는 명칭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의 모순을 지적했다.
스타우닝은 EU의 규정을 준수하겠지만, 내년에 있을 협정 재협상 과정에서 이를 수정하기 위해 EU와 협력할 방침이다. 이번 규제가 유럽 전체 위스키 제조업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정부 및 기업 단체, 협정 개정 촉구
라이는 유럽, 특히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수천 년간 식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이에 따라 먼치는 덴마크 정부가 2004년 협정의 해당 조항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덴마크에서는 정치권에서도 규제 개정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고 있으며, 유럽 전역의 여러 제조업체들도 협정 개정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덴마크 중소기업 협회(SMV Danmark) 역시 이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고 있으며, 덴마크 정치권이 나서 해결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SMV Danmark의 산업 담당자인 캐스퍼 문크 라스무센(Kasper Munk Rasmussen)은 “이 규정은 캐나다에 거의 실질적인 이익을 주지 않으면서도 유럽의 소규모 생산자들에게는 불필요한 장벽이 되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폭넓은 관심이 모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타우닝, 항의 의미로 ‘검열된’ 위스키 출시
스타우닝은 이번 사태를 알리기 위해 ‘라이 위스키’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는 대신, 라벨에 ‘검열됨(Censored)’이라는 단어를 삽입한 특별 한정판 위스키를 출시했다.
먼치는 “우리는 위스키에 ‘라이(Rye)’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을 검열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산 라이 위스키 정의
캐나다는 위스키 관련 규제가 세계에서 가장 느슨한 국가 중 하나로 유명하다. 캐나다산 위스키는 블렌디드, 싱글 그레인, 싱글 몰트, 캐스크 피니시드, 가향 위스키 등 어떤 형태든 ‘라이 위스키’라고 부를 수 있다. 즉, 캐나다에서는 ‘위스키’와 ‘라이 위스키’가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캐나다산 라이 위스키의 공식 정의에 따르면, 해당 위스키는 캐나다에서 맥아화, 증류,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하며, 최소 3년 동안 작은 나무통에서 숙성되어야 한다. 또한, 생산 과정에서 알코올 도수가 40%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추가적으로, 캐나다 위스키는 캐러멜 색소를 사용할 수 있으며, 블렌디드 위스키의 경우 전체 용량의 9.09%까지 외국산 와인이나 2년 이상 숙성된 외국산 위스키를 첨가할 수 있다. 또한, 특별히 ‘스트레이트(Straight) 라이’로 표기되지 않는 한, 무해한 색소, 향료, 혼합 재료(HCFBM)도 사용할 수 있다.
이번 EU 협정의 갑작스러운 시행으로 인해 유럽산 라이 위스키 업계는 큰 혼란에 빠졌으며, 향후 협정 개정을 위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