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분기 고급 와인 시장, 경제 혼란 속에서도 투자 매력도 유지
2025년 초, 세계 고급 와인 시장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와 함께 다시 한번 큰 진통을 겪었다. 급격한 정책 변화와 미·중 무역 갈등 재점화는 금융 시장 전반에 파장을 일으켰고, 고급 와인 시장 역시 이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와인투자회사 WineCap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하락세 속에서도 일부 와인과 지역은 회복 조짐을 보이며, 투자 자산으로서의 고급 와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와인종합지수 Liv-ex의 주요 지수는 1분기 동안 소폭 하락하며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였지만, 전통적인 강세 지역 외에도 이탈리아, 론 등은 비교적 탄탄한 수요를 유지하며 시장 전반의 낙폭을 완화했다. 특히 일부 빈티지는 오히려 강한 상승세를 보이며 시장의 회복 가능성을 시사했다.
1분기 시장의 주요 흐름을 되짚어보면, 먼저 글로벌 금융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S&P 500 지수는 7.2% 하락했고, 일본 니케이 225는 무려 20.5% 급락하며 아시아 시장 전반에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여기에 유가도 13.2% 하락하면서 에너지 시장까지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이와 맞물려 고급 와인 시장 역시 조정을 피하지 못했다. 대표 지수인 Liv-ex 100은 2.0%, Liv-ex 1000은 2.1% 하락했다. 지역별로는 보르도(-2.9%)와 부르고뉴(-2.9%)가 가장 큰 낙폭을 보인 반면, 이탈리아(-0.4%)는 비교적 선방하며 시장의 회복세를 견인했다.
눈에 띄는 점은 일부 와인들이 불확실한 시장 속에서도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론 지역의 Vieux Télégraphe La Crau Rouge 2021은 무려 22.7% 상승했고, Pichon Baron 2013 역시 22.6% 올랐다. 피에몬테의 Bruno Giacosa Barolo Falletto Vigna Le Rocche Riserva 2014는 72.1%라는 놀라운 상승률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1분기 시장 분위기를 결정지은 가장 큰 변수는 단연 지정학적 긴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중국산 제품에 최대 1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전쟁에 다시 불을 붙였고, 유럽 제품에도 20%의 추가 관세를 선언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후에는 비중국 국가에 대해 90일 간 관세를 10%로 낮추는 일시적 유예 조치를 발표해 시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이 같은 급변하는 정책은 유럽 와인 수출업체에 일시적 숨통을 틔워줬지만, 전반적인 불확실성은 여전히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급 와인 시장 내에서는 보르도가 여전히 중심에 서 있지만, 올해 2분기 예정된 En Primeur 캠페인은 시장의 신뢰를 시험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여러 소비자들이 ‘새로 출시되는 빈티지의 가격이 기존보다 매력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내렸던 만큼, 올해는 생산자들이 보다 현실적인 가격 전략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편, 보르도 외 지역에서도 흥미로운 흐름이 감지됐다. La Place de Bordeaux를 통한 봄 시즌 와인 출시는 총 50여 종에 달했으며, 그 중 가장 주목받은 와인은 단연 Latour 2016이었다. 이 와인은 6명의 유명 와인 평론가로부터 만점을 받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출시되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번 봄 캠페인에는 부르고뉴 와인, 샴페인, Promontory 2020, Ao Yun 2021 등 다양한 지역과 스타일의 와인이 포진하면서, 전통적인 보르도 중심의 흐름에서 벗어나 점점 더 다변화되는 유통 구조를 보여줬다.
시장의 조정 흐름에도 불구하고, 고급 와인을 향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자산운용 전문가 96%가 2025년 내 고급 와인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낮은 시장 상관성과 희소성, 장기적인 가치 상승 가능성은 여전히 고급 와인을 매력적인 대체 투자 자산으로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특히 최근의 가격 조정은 오히려 주요 와인을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수 있는 ‘진입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2분기 시장의 향방은 다가오는 En Primeur 캠페인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산자들이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는 가격 정책을 제시하고, 소비자들이 이에 반응한다면 이번 분기는 회복세 전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 글로벌 금리 변동 등 여전히 변수는 많지만, 고급 와인은 변함없이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기적인 가격 변동에 연연하기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와인의 희소성과 브랜드 가치에 주목하는 투자 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