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와인이야기] 와인을 좋아한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2025-04-27     김준철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현재 독일의 튀링겐 지방의 작은 도시인 아이제나흐의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나, 바이마르, 쾨텐을 거쳐 라이프치히에서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일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당시 라이프치히는 국제 무역의 진원지였다. 상인들이 극동, 중동, 남부 및 동부 유럽에서 상품을 가져 오는 곳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바흐는 커피와 와인을 비롯한 세련된 문화권에 둘러싸여 있었다.

당시 유럽은 커피의 장단점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있었을 때였다. 이는 오늘날의 마리화나 논쟁과 같은 것으로, 바흐가 라이프치히에 있는 동안 여러 시점에서 커피는 금지되고, 합법화되고, 다시 금지되었다. 그러나 바흐는 커피에 대한 끊임없는 옹호자였다. 그가 진정한 커피 감정가였으며 많은 커피 장비와 도구를 수집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또 커피를 자신의 음악 활동을 홍보하는 플랫폼으로 사용했다. 교회와 다른 장소에서 콘서트를 여는 대신 그는 라이프치히의 커피 하우스 중 한 곳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커피 하우스는 종종 홍등가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대담한 일이었다. 그는 유명한 커피 하우스인 짐머만스(Zimmerman's)에서 모든 학생들을 소집하고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콘서트를 발표하곤 했다. 경건한 신앙심과 작곡기법에서의 장인기질, 음악의 아버지라는 별칭 등등 여러 가지 때문에 바흐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바흐는 쾌활하며, 왕성한 대식가로 미식을 즐기며, 다혈질적인 면도 있었다. 즉 바흐는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바흐가 커피 애호가로 ‘커피 칸타타’를 작곡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와인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바흐가 마신 와인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지만, 그가 현금으로 지불하도록 되어 있는 계약을 그가 탐내는 라인와인이 담겨있는 나무통으로 대체해 줄 것을 요구하는 기록이 있다. 이 와인은 당시 라이프치히에 들어오기도 어려웠고 매우 비싼 것이었다. 바흐는 말년에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 대학생 연주단체)에서 받은 큰 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방이 15개나 있었다. 그리고 1750년 그가 죽었을 때 기록을 보면 두 개의 방은 맥주, 와인, 증류주 저장 전용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흐가 어떤 와인을 즐겨 마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바커스와의 연애는 부인할 수 없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