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영의 바롤로 신발견] ⑧ 도시오 비녜티의 바롤로를 바롤로답게 하는 비결

2025-06-30     백난영
맨 왼쪽이 양조 컨설팅의 귀재 잔프란코 코르데로, 중앙이 오너家 남매 중 키아라 란치, 그녀 우측은 도시오 양조팀 수장인 안드레아 아우티노

한 달 전 도시오 비녜티(Dosio Vigneti) 와이너리는 새로 구성된 양조팀 공개 행사를 가졌다. 팀 원 교체에 따른 변화된 양조절차 소개와 이를 적용한 바롤로의 향미를 음미하기 위한 시음회도 함께 마련되었다.

일단 양조팀의 면모를 살펴보면 도시오 와인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보인다. 먼저 내부 양조팀과 외부 컨설턴트를 축으로 하는 이원체제를 들 수 있다. 사내 팀은 토리노 대학교 양조학과 수료 후 주요 와이너리를 거치면서 양조 감각을 키운 안드레아 아우티노가 수장이다. 또한 양조 컨설팅 분야에서 관록을 쌓은 잔프랑코 코르데로를 영입해 기존 스타일과 최신 흐름의 접점을 찾았다. 잔프랑코 코르데로는 적기 수확, 오크통의 분별 있는 사용과 의존도 낮추기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바롤로 언덕을 발 밑에 둔 도시오 비녜티

와이너리 이름인 도시오 비녜티는 도시오 포도밭이란 뜻이다. 설립자인 벱페 도시오의 성에서 따 왔다. 도시오의 태동은 1974년 세라데나리 언덕에 방치된 18세기 농가 인수와 맞닿아 있다. 도시오는 원래 구조를 헤치지 않으면서 당시 유행하던 품질 기준에 맞게 양조시설을 갖추었다. 농가에 딸린 산출량을 소화할 정도의 크기로 단출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와인의 품질을 보장하기에 충분했다. 세월이 흘러 건물 주변에 양조실과 시음실이 들어선 것 빼고는 50년 전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세라데나리 MGA

도시오 뒤에 따라오는 비녜티 (포도밭)가 의미하는 곳은 라 모라 마을 서쪽에 솟아있는 세라데나리 언덕이다. 현지인들은 도시오와 세라데라니를 동의어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도시오는 세라데나리를 손금 보듯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도시오의 모체이자 와인명가 반열에 올린 와인은 모두 세라데나리에서 왔다.

세라데나리는 라 모라 코무네 남서쪽에 자리 잡은 약 100헥타르 크기의 구릉지다. 포도밭 크기는 60여 헥타르로 해발고도 455~535 미터에 몰려 있다. 정남, 남서, 남동쪽 경사면은 바롤로 MGA에 지정됐고 바롤로 밭 중 해발고도로 줄을 세웠을 때 3위 안에 든다.

도시오 비녜티 시음실. 바롤로 언덕 중 해발고도로 3위 안에 드는 세라데나리 뷰를 감상할 수 있다.

서늘한 기운과 아삭한 산도, 거울처럼 선명한 아로마 덕분에 20년 사이에 포도 재배 면적이 확장세다. 바롤로 라벨에 세라데나리가 자주 눈에 띄는데 밭 소유자의 의식이 바뀐데 있다. 단일밭으로 출시해도 가치를 알아볼 정도로 소비자 인지도가 높아졌다. 16 군데 와이너리가 밭 소유자인데 도시오 포함 6군데가 세라데나리를 출시하고 있다.

30년 전 만해도 상황은 달랐다. 서늘함이 포도에겐 독이었다. 차가운 기온은 네비올로의 정상적 성장을 방해했지만 저온에 익숙한 돌체토 품종은 우후죽순처럼 잘 자랐다. 지금은 상황이 반전해 돌체토 밭의 70%가 네비올로로 대체됐다(2023년 기준). 기후변화로 기온이 상승하자 30년 전 바롤로 기후가 고지대로 이동한 것이다.

퍼스널 컴퓨터의 경영귀재 란치 가문의 등장

벱베 도시오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2010년 노쇠해진 그는 잔프란코 란치에게 가업을 넘기고 은퇴했다. 당시 벱페의 은퇴소식은 와인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갑작스러운 오너 교체와 새 오너 잔프란코 란치에 관한 경력 때문이었다. 란치는 에이서, 레노보 등 글로벌 퍼스날 컴퓨터 업계에서 최고 경영직을 두루 거친 뼛속 깊은 경영자다. 그러나 란치의 바롤로 입성은 한때 살얼음판 경쟁에서 살아남은 은퇴자의 노년 대비를 위한 로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년시절 부모와 함께 보낸 랑게, 몽페라토 언덕이 그의 기억에 각인시킨 추억이 직접적 동기였다.

인생의 3분의 2를 세상과 부대끼며 익힌 순발력과 지도력은 도시오 와인의 큰 흐름인 전통색을 확고히 했다. 도시오 인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포 Coppo 와 합병이 이루어졌다. 코포는 샴페인 방식 스푸만테가 전무했던 19세기 이탈리아에 이 방식을 시도해 성공을 거둔 스푸만테 거인 중 하나다. 이어 바르베라 다스티 와인도 선전하자 스푸만테와 스틸와인 분야 중심에 섰다. 코포 인수도 결코 우연은 아니며 추억 속 몽페라토가 현실화한 거다. 이렇게 도시오 비녜티와 코포를 기반으로 도시오 그룹이 탄생했고 규모 80헥타르에 연 실적 70만 병으로 성장했다. 2023년 란치는 지병으로 세상을 타계했고 도시오 비녜티는 마씨모와 키아라 남매한테 승계됐다.

기술과 상생하는 전통이 바롤로를 바롤로 답게 한다

란치가 새로 꾸린 양조팀의 화두는 바롤로를 바롤로 답게 만드는 가에 있다. 원칙은 전통 스타일을 고수하되 방법은 하이엔드 기술을 포옹하는 거다. 기후변화 탓에 포도나무는 과도하게 당을 축적하고 과숙위험이 노출됐다. 이런 열매로는 만든 바롤로는 전통의 맛을 내기 어렵다. 30년 전 바롤로는 알코올이 13도에 미치지 못했고 색깔도 더 흐렸음을 상기하면 이해가 쉽다. 따라서 새 바롤로는 적당한 무게를 지니며 중심이 꼿꼿하고 산도의 품질이 최우선이다. 산도의 각이 예리하면 타닌의 건조한 느낌이 덜하고 붉은빛 과일향이 또렷해지는 효과를 얻는다.

트롱코코니치 티니 발효탱크

알코올 발효 탱크를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에서 50 헥토리터 트롱코코니치 티니 (Cone Shaped Vats이하 티니 탱크)로 교체했다. 티니는 꼭짓점 부분이 잘려나간 원추 모양으로 와인이 닿는 면은 굽지 않은 참나무로 조립했다.

티니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발효통의 단점을 보완했다. 자연소재라 기공을 통한 산소 유입이 활발하여 발효 초기부터 무 스트레스 상태로 타닌 추출을 유도한다. 타닌 함유량이 높은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타우라시, 사그란티노의 발효 탱크로 촉망받고 있는 이유다. 숙성목적으로 제조된 오크통과 달리 온도조절 장치가 장착되어 있어 섭씨 25~26도를 유지하여 균일한 발효 환경을 보장한다.

또한 발효 중 아로마와 페놀 성분 추출을 촉진하는 펌핑오버를 중단하고 피에몬테시 스테카투라(steccatura) 침용기술로 대체했다. 펌핑오버는탱크 상부에 뜨는 캡(포도껍질과 씨)을 기계적으로 순환시키는 방법으로 추출을 촉진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이점이 있으나 아로마 성분의 파괴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 스테카투라는 탱크 지름 크기와 같은 원형 철판으로 표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나있다. 탱크 뚜껑과 줄로 연결돼있어 뚜껑을 닫으면 그 무게로 캡 층이 와인 속에 잠긴다. 마치 티백을 잔 속에 담근 것 처럼 아로마와 고급 타닌을 우려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피에몬테 생산자들이 개발해서 피에몬테시 스테카투라라 불린다. 부차적으로 알코올 발효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막을 형성해 산화로 인한 와인 변질에 대비할 수 있다.

비녜티 소유 밭은 11헥타르고 이중 7헥타르를 세라데나리가 차지할 정도로 브랜드 이미지에 절대적이다. 해발 455~500미터 언덕을 세분하여 저지대부터 랑게 네비올로, 소비뇽 블랑, 돌체토, 코무네 바롤로, MGA바롤로 순서로 고도별 장점을 활용했다. 도시오의 또 다른 바롤로는 포사티 Fossati 밭에서 온다. 세라데나리에서 남서방향으로 3km 거리에 있다. 최근에 세라룬가 달바 코무네에 속한 메리아메Meriame 밭을 인수하여 바롤로 라인을 강화했다.

로에로 아르네이스 2024 Roero Arneis Docg

2024년은 봄~여름에 잦은 비와 기온저하로 포도 완숙에 난황을 겪어야 했다. 성장 지체는 물론 저온고습한 대기는 노균병을 확산시켜 생산량 감소로 이어졌다. 랑게나 로에로 지역 생산자들은 2024년을 기억에서 지워야 할 빈티지라 했을 정도다. 2022년, 2023년의 고온과 가뭄에 이은 반전이라 여파는 컸다.

도시오는 아르네이스의 수확량을 대폭 줄이는 대안으로 품질을 지켜냈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발효, 숙성, 병숙성으로 아르네이스 고유의 특징을 살려냈다. 흰꽃, 골든사과, 복숭아, 시트론, 진저, 샐비어 향의 조화로움과 부싯돌 향의 그윽함이 배어있다. 산도가 원만하고 미네랄 맛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랑게 소비뇽 올리비아 2024 Langhe Sauvignon Olivia Doc

랑게 땅에도 소비뇽 블랑이 자란다는 사실. 단 품종의 제맛을 살리려면 서늘한 기온과 심한 일교차를 전제로 하는데 세라데나리는 입지조건을 충족한다. 선선한 날씨와 바롤로 이회토의 매칭이라 할까. 소비뇽 블랑 특유의 허브, 스파이시함과 단단한 바디가 미묘하게 교차한다. 핵과일, 향신료, 백후추, 말린 토마토와 아스파라거스의 아릿함이 감돈다. 미네랄이 혀에 남긴 쌉쌀한 맛, 산미의 깔끔함이 소비뇽 블랑의 매력을 물씬 풍긴다. 입안에서 잠시 굴리면 미디엄 보디의 무게감이 전해진다.

랑게 네비올로 2023 Langhe Nebbiolo Doc

세라데나리의 하부(480미터), 바롤로로 밭에서 자라나 수령이 4년인 네비올로를 담았다. 2023년 날씨는 덥고 건조했지만 아삭한 산도와 붉은 과일의 생생한 조합을 자랑한다. 조기 수확과 열매 주위를 잎 그늘로 드리운 게 비결이다. 수확 직전까지의 네비올로의 신선함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발효, 숙성, 병숙성 방식으로 지켰다. 투명한 루비색, 체리, 산딸기, 라즈베리 향이 직관적이며 뒷 맛이 청아하다. 입을 살짝 조일 정도로 타닌이 순하며 상큼한 산미가 혀를 감싼다.

바르베라 달바 수페리오레 2021 Barbera D’Alba Superiore Doc

바르베라는 당 축척력이 여타 품종을 불허한다. 오죽하면 당 제조기란 별명이 붙을 정도다. 2021 여름처럼 무덥고 건조한 해는 바르베라에게는 시한폭탄이다. 거기다 오크 숙성 12개월까지 더하면 풍미는 무게에 압사당하고 만다. 도시오 바르베라는 산과 당의 적절한 밸런스의 접점을 찾아내 산뜻함과 풍부한 과일향을 끌어냈다. 흑자두, 블랙베리등 검붉은 과일의 농후함, 바닐라, 말린 꽃다발향이 우아함을 보탠다. 잔에 놔둘 수 록 다채로운 층을 한 겹 씩 보여주는 깊이를 지녔다. 깊지만 무겁지 않으며 밸런스를 잡아주며 품종개성을 생동감있게 표현한다.

바롤로 델 코무네 디 라모라 2021 Barolo Del Comune di La Morra Docg

세라데나리 밭 한가운데에 심어진 25년 수령 네비올로를 티니 발효 후 슬라보니아 보테 숙성을 24개월 해 완성했다. 통상적으로 델 코무네 바롤로( Del Comune Barolo) 자격은 밭 소재를 코무네 경계 내로 제한하며 여러 군데 밭을 섞는다. 세라데나리 상부는 이미 MGA로 선보이는 까닭에 델 코무네 바롤로에 양보했다. 바이올렛, 장미의 화사함과 라즈베리, 레드커런트 등 붉은빛 과일이 가장 신선할 때 매력을 음미할 수 있다. 옅은 타바코 향에서 아로마가 부케로 진화하는 단계임이 감지된다. 타닌이 순해서 부드럽게 넘어간다. 산미가 잘 배어들어 균형 있는 바디와 상큼한 여운이 감돈다.

바롤로 세라데나리 2021 Barolo Serradenari Docg

2015년, 2016년, 2021년은 역대급 바롤로를 탄생시킨 다이아몬드 수저 빈티지다. 그 아우라는 빈틈없는 구조, 경쾌하고 투명한 산도, 힘으로 표출된다. 도시오의 바롤로 밭 대부분은 산타가타 포실리 이회토 토양에 놓여있다. 바롤로를 양분하는 북동-남서축의 북동쪽이다. 석회석, 점토가 주된 성분이며 소량의 모래가 섞어있어 직관적인 향기, 어려도 타닌이 뻑뻑하지 않고 말리는 정도가 순해 음용감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산타가타 이회토의 매력 병기는 ‘첫맛에 반하고 첫 느낌이 바롤로 여운처럼 오래간다’다. 밭 고도, 경사도, 일조량, 방위, 양조가의 기량 같은 변수와 만나면 다채로운 변주곡을 들려준다.

세라데나리 키워드가 선이 가늘고 유연한 바디, 품종 아로마가 선명한 바롤로다. 거기다 티니 탱크 발효와 만나 산도의 각은 더 예리해지고 바디가 산뜻해져 다층구조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앞의 델 코무네 바롤로 보다는 타닌 짜임새가 치밀해졌고 산미는 긴장감이 상승했다. 사랑스러운 감초, 라즈베리, 산딸기, 레드커런트, 바이올렛 내음이 피어난다.

바롤로 포사티 2021 Barolo Fossati Docg

포사티는 바롤로 코무네와 라 모라 코무네에 걸쳐있다. 도시오 포사티는 바롤로 코무네에 속하며 약 1헥타르 크기에 해발은 430~450미터다. 남동향에 회색, 하늘색 석회석과 점토로 이루어졌다. 평균 수령은 30년이고 90년 된 고목도 자란다. 포사티 총넓이는 34헥타르인데 18개의 와이너리가 점유하고 있으며 각자 MGA를 출시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포사티의 지명도가 뛰어나 굳이 바롤로란 수식어가 필요 없다는 뜻이다. 벱베 도시오는 2010년 MGA규정이 실효되기 전인 1982년에 포사티를 출시했다. 작황이 뛰어난 해는 리제르바를 안겨준다.

바이올렛 꽃다발, 라즈베리, 체리, 자두의 달콤한 향이 코를 감싼다. 산도의 밸런스가 압권이며 시간이 경과할수록 와인이 풀어놓는 향기는 과일, 꽃, 스파이시를 넘나 든다. 타닌이 혀에 닿는 순간 치밀한 입자, 긴장감이 첫 느낌이나 곧 과일향을 머금은 산도로 채워져 질감이 상승한다. 씹히는 질감, 강인한 타닌의 조합은 감각을 한 곳으로 모아주어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바롤로 포사티 2015 Barolo Fossati Docg

감초, 타바코, 흙내음, 유칼립투스, 흑자두, 블랙베리, 타르, 낙엽, 말린 꽃다발, 버섯등 묵직한 향이 향연을 벌인다. 전통 스타일 바롤로의 치밀한 타닌 조직, 중후한 질감이 몰입감을 높인다. 산미가 중심에 버티고 있어 탄탄한 골격을 잡아주고 아로마에 생기가 돈다. 새 양조방식 적용 전의 엄격한 풀바디, 혀 밑에서 입 전체로 퍼지는 타닌의 웅장함 등 도시오의 고전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위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 First Le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