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비하인드] 물과 언어에서 공통점을 찾은 언어학 박사 출신 워터소믈리에 올리버 뤼(Oliver Lu)

2025-07-24     김하늘 기자

김하늘 워터소믈리에가 만나는 워터 인터뷰, 워터 비하인드

물과 관련된 제조, 기술, 유통 뿐만 아니라 환경, 지질, 건강, 문화 등 다양한 요소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각 분야 전문가를 만나 그 뒷 이야기를 조명하고 탐구합니다. 물이 단순히 생필품이 아니라 우리 삶과 문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임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합니다.


광저우국제워터품평회에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 옆자리엔 뉴 페이스가 앉았다.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영어 교사가 워터소믈리에로 전향한 올리버 뤼(Oliver Mingchang Lü)의 사연을 안 들어볼 수 없었다.

2025 광저우 국제 워터 품평회에 심사위원으로 필자와 함께 참석한 올리버 뤼. 왼쪽부터 홍콩의 아이반 리, 미국의 마이클 마샤, 대만의 올리버 뤼, 대한민국의 김하늘

Q. 안녕하세요, 올리버.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저는 대만 출신의 올리버 뤼입니다. 처음에는 관광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이후 영어 석사와 언어학 박사 과정을 거치며 오랫동안 영어 교육과 연구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특히 맛과 언어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더 커졌어요. 2025년에는 워터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했고, 광저우 국제 워터 테이스팅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초청받는 영광도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언어와 물, 아주 다르지만 둘 다 깊은 표현력과 의미를 담고 있는 세계를 오가고 있어요.

Q. 이렇게 큰 커리어 전환을 결심한 용기는 어디서 나왔나요?

A. 사실 저는 그걸 ‘용감한 도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 같았죠. 감각적인 경험과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 늘 흥미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물은 그런 관심을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는 주제였어요. 저를 끌어당긴 건, 물이 지닌 조용한 복합성이었어요. 너무 익숙하고 필수적인 존재이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아주 미묘하고 표현력 넘치는 성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워터소믈리에로서 저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시 새롭게 경험하게 도울 수 있어요. 그게 저에게는 무척 보람 있는 일이에요.

올리버의 언어학 관련 논문

Q. 언어와 물 사이에 연결점이 있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언어와 물은 모두 ‘매개체’예요. 겉보기에는 투명하고 별것 없어 보이지만, 실은 우리가 처음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죠. 우리는 이 둘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오다가, 어느 날 문득 멈춰서 느껴보게 되는 거예요.

언어는 문화, 기억, 정체성을 담고 있어요. 이야기를 전하고, 지식을 나누고, 의식을 기록하는 도구죠. 한 문장은 인류 역사의 일부를 엿보게 합니다.

물도 마찬가지예요. 물은 흘러온 땅의 발자취를 담고 있어요. 그 안에는 흡수한 미네랄, 겪어온 압력과 깊이, 지하에서 기다린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요. 천연 미네랄 워터 한 모금은 지구 역사의 일부를 마시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유사성은 더 깊이 들어갑니다. 언어도, 물도 '맥락'에 따라 달라져요. 같은 단어라도 누가, 어떻게, 어디서 말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변하죠. 물도 똑같아요. 온도, 고도, 심지어 어떤 유리잔에 담느냐에 따라 그 질감과 맛이 달라지니까요.

무엇보다 우리는 경험을 해석할 때 언어에 의존해요. 물을 마실 때도 감각은 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해보는 순간 비로소 진짜 인식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게 언어와 물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는 매체’예요. 주의를 기울이면 훨씬 많은 것을 보여주는 존재들이죠.

Q. 훌륭한 물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인가요?

A. 저에게 훌륭한 물이란 ‘균형’을 갖춘 물이에요. 과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분명한 정체성이 있어야 하죠. 부드러운 질감, 선명한 미네랄감, 혹은 오래가는 여운 등이에요. 물의 원천도 물론 중요해요. 물이 형성된 지질적 연대, 채수 깊이, 유속 등을 봐요. 그리고 TDS, 미네랄 조성, pH, 병입 상태도 체크하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질문으로 귀결돼요 "이 물을 계속 마시고 싶게 만드는가?" 단순히 갈증이 아니라, 마셨을 때 몸이 편안한 느낌이 드는가? 그게 바로 특별한 물이에요.

Q. 대만의 병입수 및 프리미엄 워터 시장은 현재 어떤 상황인가요? 앞으로의 전망은요?

A. 대만 시장은 여전히 정수수나 기능성 워터(RO, 알칼리수, 수소수 등)에 크게 집중돼 있어요. 물의 떼루아, 미네랄 밸런스, 입안 질감 등을 즐기려는 문화는 아직 초보 단계죠.

그렇지만 건강에 관심이 많거나 해외 여행을 자주 다니는 분들, 커피나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금씩 관심이 생기고 있어요.

다만 가장 부족한 건 ‘접근성과 교육’이에요. 밸런스 좋은 천연 미네랄 워터를 실제로 마셔본 사람들은 기존에 마시던 물과 얼마나 다른 지 금세 알아차려요.

저는 사람들이 물을 단순한 수분 보충이 아닌 감각적, 문화적 경험으로 인식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올리버 뤼가 대한민국 대표 파인 워터인 지리산 1915를 들고 있다.

Q. 앞으로 대만의 물 시장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비전이 있다면요?

A. 저는 ‘물에 대한 인지 문화’를 조금 더 가시화하고 싶어요. 대만에는 정말 풍부한 음식 문화가 있지만, 물은 늘 그 뒤에서 조용한 역할만 해왔거든요. 그걸 바꾸고 싶어요. 화려하게 만들자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가 마시는 물을 ‘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거죠. 식당에서 워터 메뉴가 생기고, 물의 품질과 맛에 대한 교육이 확대되고, 더 나은 리테일 선택지가 생기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저 스스로도 계속 글을 쓰고, 맛보고, 대화를 이어나갈 거예요. 물을 새롭게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물과의 페어링 경험은 무엇인가요?

A. 가장 기억에 남는 페어링 중 하나는, 대만식 연회 요리와 여러 가지 천연수의 테이스팅이었어요.

예를 들어, 루로우판(돼지고기 덮밥) 같은 기름진 요리에는 TDS가 높은 탄산수가 기름기를 잡아주면서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줘요.

반면 참기름 닭고기탕처럼 따뜻하고 약초향이 나는 요리에는 미네랄이 낮고 부드러운 스틸 워터가 잘 어울려요. 국물의 따스함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함께 흐르는 느낌이죠.

물 페어링은 단순히 ‘대조’나 ‘조화’에 그치지 않아요. 식사의 흐름, 질감, 한입 한입 사이 몸의 반응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Q. 마지막으로 모든 분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형태를 바꿉니다. 당신에게 물은 어떤 형태인가요?

A. 정말 아름다운 질문이네요. 제게 물은 ‘쉼’의 형태를 하고 있어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물은 제가 속도를 늦추는 순간이자 공간이 됩니다. 테이스팅을 하든, 글을 쓰든, 그저 의식적으로 한 모금 마실 때든 그 사이에 물이 있어요.

그래서 물을 사랑하게 되었나 봐요. 조용하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