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철학, 그리고 마을 전체를 바꾼 한 병의 와인, '콜로메(Colomé)'
아르헨티나 고산지대의 외딴 마을에서 한 병의 와인이 한 기업가의 인생을 바꾸고, 한 마을의 미래를 일으켰다. 세계 최고 고도에서 탄생한 와인 ‘콜로메(Colomé)’는 단순한 와인을 넘어 자연, 사람, 공동체를 연결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98년, 스위스 출신 기업가 도널드 헤스(Donald Hess)와 그의 아내 우르술라 헤스(Ursula Hess)는 아르헨티나의 한 시골 식당에서 마신 한 잔의 로컬 와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한 잔은 부부를 안데스 고산지대에 위치한 와이너리, 콜로메로 이끌었다.
도널드 헤스는 스위스 대표 생수 브랜드 ‘발서(Valser)’를 성장시켜 코카콜라에 매각한 후, 제2의 인생을 ‘와인’과 ‘예술’에 걸었다. 미국 진출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마신 나파밸리 와인이 그의 인생 방향을 바꾸었고, 그는 생수 사업 부지를 와이너리로 전환해 ‘헤스 콜렉션 와이너리(Hess Collection Winery)’를 설립했다. 그때부터 와인은 그에게 자연과 문화, 사람을 잇는 매개체가 되었다.
당시에는 고지대 재배에 대한 인식이 미미했지만, 헤스는 척박한 환경이야말로 가장 강인한 와인을 만든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는 나파 밸리의 마운트 비더(Mount Veeder)를 미국 공식 재배지구(AVA)로 지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고도 높은 포도밭의 가능성을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1998년, 아르헨티나 여행 중 마신 와인의 출처를 찾아 직접 발걸음을 옮긴 그는 해발 3,000m 안데스 산자락에 자리한 ‘콜로메’ 와이너리를 만나게 되었다. 1831년 이사스멘디-다발로스(Isasmendi-Dávalos) 가문이 설립한 콜로메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였지만, 당시에는 낙후된 시설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조용히 운영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와인 생산지로 불렸다.
헤스 부부는 이 특별한 테루아에 매료되었고, 단순한 와이너리 인수를 넘어 마을 전체를 함께 변화시키겠다는 비전을 갖고 콜로메를 인수했다. 이후 마을에 정착해 학교, 교회, 커뮤니티 센터를 세우고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인터넷조차 연결되지 않았던 외진 마을은 그들의 헌신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동체로 거듭났다.
콜로메의 중심에는 언제나 헤스의 철학이 있었다. 그는 ‘엘 아레날(El Arenal)’ 빈야드를 개간해 고지대 와인 생산을 본격화했고, 아르헨티나의 관개 금지법에 따라 직접 수맥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쳐 ‘알투라 막시마(Altura Máxima)’ 와인을 완성했다. 세계 최고 고도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진 이 와인은 유기농을 넘어 바이오다이내믹 인증까지 획득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고산 테루아의 가치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헤스는 서브 브랜드 ‘아마라야(Amalaya)’를 선보였다. ‘기적에 대한 희망’을 뜻하는 이 이름은 엘 아레날의 수맥을 발견했을 때 원주민이 외친 말에서 따왔다. 말벡을 중심으로 다양한 품종과 블렌딩을 시도한 아마라야는 살타(Salta)의 고지대 와인을 보다 합리적이고 캐주얼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브랜드다.
도널드 헤스는 한 병의 와인을 통해 철학을 실현하고, 공동체를 변화시키며, 고도를 향한 신념을 세계에 증명했다. 콜로메는 오늘날에도 그 철학을 이어가며, 자연과 사람, 그리고 예술이 하나 된 와인의 진정한 가치를 세계에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