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위스키 제조사, 1878년 난파선에서 잊혀진 '호밀' 품종 되살려

2025-08-14     유성호 기자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매머스 디스틸링(Mammoth Distilling)이 140년 전 침몰한 목조 범선에서 멸종된 호밀 품종을 되살릴 수 있었던 것은 법률상의 특이점과 매우 드문 상황 덕분이었다.

1878년, 미국 최초의 상용 전화 교환기가 개설되고 토머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특허받은 해에, 호밀 곡물을 실은 한 선박이 조용히 미국의 오대호 중 하나의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제임스 R. 벤틀리(James R. Bentley)’호는 1878년 11월, 미시간주와 캐나다 국경에 위치한 휴런호에서 폭풍우를 만나 잠수한 모래톱에 부딪혀 침몰했고, 이후 140년간 호수 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한 지역 위스키 증류업자의 집념 덕분에 마침내 그 화물이 쓰일 날이 다가오고 있다.

매머스 디스틸링의 창립자 겸 CEO 채드 멍거(Chad Munger)는 침몰 당시 선박에 실려 있던 3만7,000 부셸의 호밀 중 일부를 복원해, 오랫동안 잊혀진 호밀 품종을 되살리기 위해 과학자들과 협력하고 있다.

멍거는 “이 품종은 토종 육상 재배종으로, 오늘날 미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현대 품종 개량과 교배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성격을 지니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가치 있고, 매우 흥미롭다”고 전했다.

이 호밀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도 복잡한 법적 분쟁 덕분이었다.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잠수부이자 난파선 탐험가 폴 이혼(Paul Ehorn)은 침몰선에서 인양한 목재를 박물관에 기증한 후 기소를 피하기 위해 ‘제임스 R. 벤틀리’호의 법적 소유권 확보에 나섰다. 오대호의 난파선은 일반적으로 주 정부의 소유로 간주되지만, 이혼은 소송에서 승소하여 벤틀리호 난파선은 “희귀한 사례”가 됐다고 멍거는 설명했다. 이후 미시간주에는 “개인이 난파선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새로운 법이 제정됐다.

2023년, 멍거는 이혼에게 연락해 선박 내 호밀 샘플을 채취하기 위한 특수 추출 장치를 이용한 잠수 허가를 요청했고, 이후 미시간주립대 밀 육종·유전학 교수인 에릭 올슨(Dr. Eric Olson)과 협력해 호밀 DNA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올슨 교수는 “곡물 품질이 매우 양호했고, 1800년대 후반과 거의 동일한 상태였다”며, 이 품종을 “역사적 보물”이라 칭하고 “19세기 후반 오대호 지역에서 재배되던 호밀 품종의 정확한 스냅샷”이라고 덧붙였다.

금주법 이전, 미국 위스키의 대부분은 최소 51%의 호밀로 만든 호밀 위스키였다. 멍거는 “150년 전, 미시간은 북미의 호밀 재배 중심지였다”며, 복원된 벤틀리 호밀이 “쇠퇴한 미시간 농업 부문의 한 축을 다시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매머스 디스틸링은 벤틀리 호밀로 만든 상업용 위스키를 출시하기까지 약 3~4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미 난파선 목재를 활용한 풍미의 증류주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