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현수의 프랑스 와인 여행] (10) ‘채소의 마술사’ 셰프 알랭 파사르와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아르페쥬(Arpège)

2025-08-18     마현수 칼럼니스트
레스토랑 아르페쥬(Arpège) (사진=마현수)

올봄,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애정하는 레스토랑 아르페쥬(Arpège)를 방문했다. ‘채소의 마술사’로 불리는 셰프 알랭 파사르(Alain Passard)의 요리를 맛보는 순간 그간 내가 가지고 있던 채소 요리에 대한 모든 편견이 무너졌다.

셰프 알랭 파사르 는 프랑스 미식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가스통 부아예(Gaston Boyer)와 알랭 샹드랑(Alain Senderens)에게 클래식 프렌치를 배우며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1986년, 그의 멘토였던 알랭 샹드랑의 레스토랑을 인수해 아르페쥬를 오픈했다.

알랭 파사르는 오랜 세월 동안 할머니에게서 전수받은 ‘불의 감각’과 ‘저온 로스트’ 철학을 지켜온 세계적인 로티스리(rôtisseur) 전문가다. 그 결과, 아르페쥬는 1996년 미쉐린 3스타에 오르며 파리 최고의 프렌치 레스토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진짜 전환점은 그 이후 찾아온다.

고기 대신 채소를 중심에 둔 요리, 그것이 알랭 파사르가 선택한 새로운 길이었다.

그는 오랜 동료인 정원사 실뱅 피카르(Sylvain Picard)와 함께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는 두 곳의 농장을 관리하며 매일 아침 신선한 채소, 과일, 허브, 꽃이 아르페주에 도착한다.

레스토랑 아르페쥬 테이블 셋팅 (사진=마현수)

테이블위에 놓인 채소가 마치 “아르페쥬에 온 걸 환영해!” 하고 인사하는 듯 느껴졌다.

점심에는 디너 코스인 ‘Parfum des jardins’(420유로) 또는 보다 간결한 구성의 ‘Le Menu Déjeuner’(260유로)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이날은 점심 코스를 택했다.

흥미로웠던 건, 그날그날 정원에서 수확된 채소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는 점이다. 심지어 옆 테이블과도 전혀 다른 요리가 나올 수 있어, 메뉴 판에는 요리 이름 대신 한 편의 시처럼 우아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Déjeuner Cueillette du matin Valse à 8 temps
(점심 식사 – 아침 수확 – 8박자의 왈츠)

“Laissez-vous surprendre par l’inspiration de la brigade.”
(셰프 팀의 영감에 몸을 맡겨 놀라움을 경험해보세요)

“Alain Passard vous propose une balade légumière, un voyage des sens.”
(알랭 파사르가 여러분께 채소와 함께하는 산책, 감각의 여행을 제안합니다)

“Bonne table !”
(즐거운 식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Champagne R. Pouillon & fils "Les Terres Froides" Extra Brut 2017 (사진=마현수)

와인은 페어링처럼 즐기고 싶어 글라스로 주문했다. 첫 시작은 샴페인 R. Pouillon “Les Terres Froides”. 이 샴페인은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 지역의 토시에르-뮈트리(Tauxières-Mutry) 마을에 위치한 "Les Terres Froides" 포도밭에서 재배한 샤르도네 100% 블랑 드 블랑이다.

입안에서는 크리스피한 산미와 섬세한 기포 그리고 은은한 브리오슈, 헤이즐넛의 숙성 풍미가 매력적이었다.

(왼쪽부터) 아르페쥬 정원 샐러드 & 양파 폼, 당근 퓨레, 시금치 (사진=마현수)
(왼쪽부터) 천천히 익힌 대파 & 비트 카르파치오 (사진=마현수)
(왼쪽부터) Roulot Meursault “Luchets” 2018 & Bachelet-Monnot Maranges 1er Cru “La Fussière” 2021 (사진=마현수)

두 번째로 선택한 와인은 뫼르소 마을의 대표적인 생산자, Domaine Roulot Meursault “Luchets” 2018. 늘 어렵게 느껴졌던 와인이었지만, 이번 프랑스 여행을 통해 가장 깊이 빠져든 와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왼쪽부터) 매일 아침 농장에서 올라온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 순무, 당근, 컬리플라워 (사진=마현수)

아르페쥬에는 시그니처 디저트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디저트가 바로 밀푀유다. 오랜만에 맛보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 특별히 루바브 밀푀유를 준비해 주었다.

(왼쪽부터) 루바브가 들어간 밀푀유 & Domaine Huet Vouvray “Le Mont Moelleux” 2009 (사진=마현수)

4시간이 넘는 긴 점심 식사가 끝난 뒤, 셰프 알랭 파사르의 작업실로 향했다.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채소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알랭 파사르 셰프가 직접 그린 작품들이라고 했다. 요리만큼이나 정성스러운 붓질 속에서, 얼마나 채소를 사랑하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식사가 끝나고 파리 거리를 걷던 중 문득 고등하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하신 질문이 떠올랐다.

"현수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당시 셰프가 꿈이었던 나는 그 질문의 답을 찾고 싶어 그 해 여름 프랑스로 떠났고, 어느 날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프렌치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곳의 이름은 바로 레스토랑 아르페쥬(Arpège)였다.

아르페쥬는 화려한 프랑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들과는 조금 다르다. 소박한 인테리어, 육류가 없는 채소 요리 그래서 선뜻 추천하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채소를 좋아하고 알랭 파사르의 철학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는 분명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특별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셰프 알랭 파사르와 함께 (사진=마현수)

마현수 소믈리에

국제 와인 전문가 인증과정 WSET Level 3 취득
Court of Master Sommelier, Certified Sommelier 취득 
(현) 스와니예 헤드 소믈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