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와인이야기] 진짜 나무, 참나무(Oak)

2025-08-26     김준철
@Wikimedia

‘참나무’라는 나무는 없다. 참나무는 학술적으로 케르쿠스(Quercus) 속에 해당되며, 여기에 여러 가지 종(species)이 있는데 그 수가 250가지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떡갈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여섯 종의 나무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참나무’라고 보면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나무는 단단하고 나무결이 고와서 예로부터 선박이나 고급 가구를 만드는데 쓰였다. 속명의 ‘퀘르쿠스’란 켈트어의 ‘좋은 목재’라는 뜻이며, 우리말의 참나무 역시 ‘진짜 나무’라는 뜻이다.

‘떡갈나무’는 떡을 찔 때 이 나뭇잎을 시루에 깐 데서 유래한 이름이고, ‘신갈나무’는 신발 바닥에 깔고 다닌 데서, ‘상수리나무’는 선조가 피난길에 먹었던 도토리묵을 환궁한 뒤에도 종종 수라상에 올려 ‘상수라’로 부르다가 상수리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며, ‘갈참나무’는 겨울이 깊을 때까지 갈잎이 떨어지지 않아 붙은 이름이고 ‘졸참나무’는 참나무 형제 중 잎과 도토리가 가장 작아서 붙인 이름이며, ‘굴참나무’는 골이 파여서 골참나무로 부르다가 굴참나무로 발음하게 되었으며, 두꺼운 껍질은 물이 새지 않으면서 통기성이 좋아 굴피집의 지붕으로 사용하였고, 한때는 굴참나무껍질을 벗겨 코르크마개용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이 참나무로 만든 통에서 와인을 발효, 저장, 운반하였기 때문에 서양 사람에게 와인의 맛은, 오크통의 냄새를 빼버리면 와인으로서 인정받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와인을 마실 때, 은은한 바닐라 향을 느끼는 것은 바로 오크통에서 우러나온 성분 때문이다. 또, 위스키나 코냑의 숙성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가 된다. 오크통 제작은 나무판으로 선박 제조 기술을 터득한 다음에 나온 것으로, 일정한 크기의 나무판을 불을 이용하여 구부리고,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조여서 밀착시키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전문가에 의하면, 와인양조업자가 포도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오크통 제조업자(Cooper)의 나무선택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오크통 못지않게 와인과 관계가 깊은 참나무는 ‘코르크나무’다. 코르크나무는 껍질을 벗기면 다시 껍질 층이 형성되는 우리나라 굴피나무와 비슷한 나무다. 코르크나무(Quercus suber)는 주로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강우량 400-800 ㎜, 최저 기온 영하 5 ℃ 이상 되는 곳에서 자라므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일부, 이탈리아 등에 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특히, 포르투갈은 세계 코르크의 약 50 %를 공급하고, 코르크마개는 세계시장의 90 %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참나무의 공통점 중 하나는 모두 도토리가 열린다는 점이다. 도토리는 다람쥐 등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며, 유럽에서는 도토리 먹인 돼지고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에서도 흉년에는 산사람들이 도토리를 먹었지만, 풍년에는 돼지에게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옛말에 “도토리나무는 들판을 내다보고 열매를 맺는다.”라고 했는데, 이는 가뭄이 들면 농사는 흉년이 들지만, 바람을 이용해서 수분(受粉)하는 참나무는 풍년이 들고, 비가 많이 오면 도토리는 적게 열리는 대신 농사가 풍년 흉년이면 열매를 더 생산한다는 뜻이니까,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말이다. 도토리는 예로부터 구황식물(救荒植物)로 이용되었지만, 현대인들은 도토리을 주로 묵으로 가공하여, 별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또, 참나무는 탈 때 연기가 많이 나지 않고 오래 잘 타기 때문에 장작으로 애용되었다. 소나무는 송진 때문에 화력은 좋지만 매캐한 연기가 많이 나는 편이다. 옛날부터 땔감 장작으로 인기가 좋은 것은 참나무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숯을 만들 때 참나무를 많이 썼으며, 참나무로 만든 숯을 ‘참숯’이라고 한다. 참숯은 불꽃이 튀지 않고, 화력이 오래 가므로 연료용으로 현대인들도 애용하고 있다.

그리고 참나무는 타닌, 리그닌 등이 풍부해서 버섯이 자라기에 좋은 영양 공급원이 되기도 한다. 특히 나무가 단단하고 내구성이 좋아서, 곰팡이나 해충 피해가 적고 버섯 균사체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자리 잡을 수 있으며, 참나무에서 재배한 버섯은 향과 맛이 진하고 육질이 단단해 상품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하면, 참나무가 산불에 강하다는 점이다. 산불이 나고 가장 먼저 살아서 잎이 나오는 것이 참나무이다. 참나무는 껍질이 두껍고 밀도가 높아서 절연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상부가 불에 타더라도, 뿌리나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올라오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다. 이는 목재 자체도 밀도가 높고 조직이 치밀하여, 내부까지 불이 쉽게 파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5년 SBS에서 실험한 결과를 보면, 참나무는 소나무보다 불붙는 속도가 두 배 더 느리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렇게 참나무는 예전부터 가구 제작, 선박 제조, 술통의 재료, 코르크, 도토리 이용, 버섯 재배에 장작과 숯을 만들어왔고, 산불에도 강하기 때문에 진짜 나무, 즉 ‘참나무’로 불렸던 것이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