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의 우리술 이야기] 우리에게도 ‘전통주 옥토버페스트’가 필요하다

2025-09-24     이대형 칼럼니스트

가을을 흔히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부른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표현은 단연 ‘축제의 계절’일 것이다. 선선한 날씨와 풍요로운 수확 철이 맞물리는 가을은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 시기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2025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자체가 25년에 준비하는 축제만 1,214개에 달한다. 여기는 2일 이상의 축제를 조사한 것이기에 더 짧은 행사나 작은 규모의 마을 축제까지 합치면 연간 1,500개를 훌쩍 넘어선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 평균 3.3개의 축제가 열리는 셈이다. 특히 날씨가 좋은 가을철에는 전국 어디서든 축제를 찾아볼 수 있어 ‘축제의 계절’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최근 이러한 축제 중 술을 주제로 한 축제가 많아지고 있다. 9월에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주류 축제만 세종한글 술술축제(9.13), 안동전통주박람회 (9.12~14일), 2025 춘천 술 페스타(9.26∼27일), 2025 청주 미식주페스타(9.24~25일), 2025 고양시 전국 막걸리 축제 (9.20~21일), 2025 경기술페스타(9.25~27일),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9.25~27일) 등 매주 여러 지역에서 술 관련 축제가 개최된다. 사실 술은 축제와 뗄 수 없는 요소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흥을 돋우며, 지역의 특색을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해외의 사례를 보더라도 술이 주인공이 된 축제는 각 나라의 대표 문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9월의 다양한 전통주 축제들

술 축제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다. 바이에른주의 뮌헨에서 9월에 열리는 이 맥주 축제는 단일 주류인 맥주 하나로 세계 3대 축제로 불리며, 매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수십 개의 대형 텐트 안에서는 음악과 맥주가 어우러지고, 사람들은 국적과 언어를 넘어 함께 잔을 부딪치며 어울린다.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술과 음악이 만들어내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힘이 축제를 하나로 묶는다. 일본의 ‘니가타 사케노진’도 좋은 사례다. 사케의 주요 산지인 니가타현에서는 수백 종의 지역 사케를 한자리에서 시음할 수 있는 이 축제가 매년 3월에 열린다. 현지 양조장과 소비자들을 잇는 중요한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중국의 청도 맥주 축제, 영국의 위스키 축제도 마찬가지다. 특정 지역과 술의 이미지를 결합해 세계적인 관광 상품으로 성장했다.

옥토버페스티벌의 파울라너 텐트안 @이대형

반면 우리나라의 술 축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와 같은 대회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과거 옥토버페스트를 표방한 ‘가평 자라섬 전국 막걸리 페스티벌’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막걸리를 한자리에서 즐겁게 마시는 행사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받았다. 현재는 여러 사정상 개최가 되고 있지 않다. 현재 개최되는 대부분의 술 행사는 술을 마시고 즐기는 행사라기보다는 부스에서 시음하고 구매를 해나가는 박람회 형태로 술을 즐기는 행사와는 거리가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축제의 횟수도 많아지고 규모가 점차 커지고 참여하는 양조장도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적, 예산상 제약과 기획력 부족으로 일반 대중의 관심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5년 자라섬 막걸리 페스티벌 @이대형

이제 우리도 시음 행사 이상의 축제가 필요하다. 술을 매개로 음악, 음식, 관광, 지역 문화를 결합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노원수제맥주축제’가 개최되었다. 전국 33개 브루어리 200여 종 수제맥주, 7개국 세계맥주를 시음할 수 있었으며 많은 공연과 버스킹 등을 통해 맥주를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 주었다. 방문 인원만 12만 명이라고 하니 성공한 행사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통주도 이러한 즐기고 마시고 놀 수 있는 행사가 필요하다. 술은 시음을 통해 홍보하는 행사도 필요하기도 하지만 즐기기 위한 행사도 필요하다. 우리 술 행사들은 그동안 너무 정적인 행사에 머물러 있었던 듯하다. 조금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료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다가오는 가을, 전국 곳곳의 전통주 축제를 즐겨보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옥토버페스트처럼 긴 안목으로 한 장소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 진행되는 행사가 필요하다. 이러한 행사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한국의 술은 한식과 잘 어울린다. 한류의 확산과 맞물려 글로벌 인지도를 확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여기에 ‘전통주 옥토버페스트’라 할 수 있는 대형 축제가 생긴다면, 전통주 산업과 관광 산업 모두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가 그랬듯, 축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방문객이 즐겁고, 그 즐거움 속에서 문화를 담는 그릇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이제 우리에게도 ‘모두가 함께 즐기는 전통주 축제’가 만들어질 때가 되었다. 언젠가 막걸리, 약주, 한국와인, 증류식 소주 등 다양한 술을 아우르는 대형 축제, 나아가 세계인이 찾는 ‘전통주 옥토버페스트’가 만들어질 때, 우리 술은 비로소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단순한 전통주 축제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축제가 될 것이다.

AI가 그린 전통주 옥토버페스트를 즐기는 사람들 @Firefly

이대형박사는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전통주를 연구 하는 농업연구사로 근무중이다. ' 23년 인사혁신처 대한민국 공무원상 대통령 표창, 15년 전통주 연구로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 진흥 대통령상 및 '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수상, 우리술품평회 산양삼 막걸리(대통령상), 허니와인(대상) 등을 개발하였으며 개인 홈페이지 www.koreasool.net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