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답이다] (110) 2025 푸드위크 코리아, 밥의 미래를 짓다

2025-11-11     박성환

지난 10월 29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5 푸드위크 코리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간은 의외로 USA Rice(미국 쌀 협회)의 부스였다.

그곳은 단순한 수입 쌀 홍보관이 아니라 “쌀로 지속가능한 식문화를 바꾸는 방법”을 제시하는 교육의 장이었다.

반면 국내 여러 부스는 여전히 ‘가루쌀’과 기술 시연 중심에 머물러 있었다. 그 차이는 마케팅 기법의 차원이 아니라, 쌀을 바라보는 철학의 간극이었다.

미국, 쌀을 ‘소비자의 언어’로 재해석하다.

USA Rice는 ‘미국산 쌀을 먹어야 하는 아홉 가지 이유’라는 메시지로 환경·건강·지속가능성을 한눈에 보여줬다.

GMO‑free, 저탄소 농법, 심혈관 건강, 음미와 조리의 다양성 등 키워드를 소비자가 바로 납득할 수 있게 구성했다.

그들은 단순히 ‘제품’을 팔지 않았다. 요리 레시피북엔 한국식 볶음밥과 불고기볶음밥이 등장해 수입쌀이 한국 식탁에 스며드는 방법을 보여줬다.

동시에 품질 검사율·농법 효율 같은 데이터로 소비자의 신뢰를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쌀은 ‘외국산 저가 쌀’이 아닌 ‘기술로 만들어진 농업 산물’로 인식되었다. 소비자 중심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시장 내 입지를 재구성한 것이다.

UAS RICE 전시장

한국, 아직 ‘가루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쌀 홍보는 여전히 실험실 안의 기술 중심 사고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농협, 농진청이 앞다퉈 ‘가루쌀(분질미)’을 미래 대체 원료로 내세우고 있지만, 소비자 시장으로의 연결은 약하다.

정부는 가루쌀을 통해 밀 일부를 대체하고 쌀 수급을 조절하겠다는 목표로 생산단지를 빠르게 확충하고, 제품화 지원사업을 통해 수십 종의 신제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2025년 국정감사에서는 재고 누적과 시장성 검증 부재가 지적됐다. 목표 물량은 하향 조정되고, 실적이 공개되지 않은 기업도 다수였다.

특히 지난 9월 농식품부가 추진한 ‘가루쌀 제품화 패키지 지원사업’에 108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실질적인 성과는 미비하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가루쌀 수매 등 관련 예산 규모는 총 1,780억 원에 달하지만, 투자 대비 시장 반응은 거의 없었다.

문제는 방향이다. ‘가루쌀’ 자체의 기술력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어떤 경험을 주는가가 핵심이어야 한다.

가루쌀은 분명 가공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원료지만, 소비자는 ‘쌀가루로 만든 무언가’보다 **‘맛있는 밥’**을 원한다는 단순한 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캐데헌 열풍으로 김밥과 밥 자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홍보는 산업 중심적이고, 미국은 소비자 중심적이다.

한국이 기술의 언어로 말한다면, 미국은 감성의 언어로 설득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미국은 더 ‘맛있게’ 쌀을 팔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의 쌀 산업은 아직 “농민을 위한 산업”에 머물러 있지만, 시장은 “소비자를 위한 브랜드”를 원한다.

이제는 ‘가루쌀의 기술력’보다 ‘쌀의 가치와 감성’을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미국이 쌀을 ‘테크놀로지의 언어’로 신뢰를 쌓았다면, 한국은 여전히 ‘농업의 언어’로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밥상은 기술보다 감성, 산업보다 이야기, 효율보다 철학으로 움직인다.

그나마,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끈 또 하나의 흐름은 Local Stock(Refeely)의 종이팩 쌀이었다. 우유팩 같은 친환경 카톤에 담긴 유기농 잡곡·현미는 디자인뿐 아니라 기능성 측면에서도 도전적이었다.

포장공학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차단성: 알루미늄 포일이 삽입된 다층구조는 산소·수분·빛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현미·잡곡의 산패를 지연시킨다.

접합·밀폐성: 초음파 접합 방식은 분진·입자 오염을 막고, 에너지 사용량도 낮아 곡물 포장에 적합하다.

사용성과 구조: 캡이 달린 카톤+S‑bottom 설계는 소분/보관/비주얼 측면에서 강점이 있으나, 낙하 충격·코너 찢김 등에 대한 물류시험(예: ISTA 기준) 결과는 미공개여서 실효성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보관수명 주장: “최대 36개월 보관”이라는 문구가 보였으나, 이는 원물 수분·온도관리·해충관리 등 조건과 함께 제시돼야 기능적으로 우수함을 증명할 수 있다.

이 제품은 단순히 ‘예쁜 포장’이 아니라, 쌀을 소비자가 직접 고르고 경험하는 생활재로 끌어올린 시도였다.

특히 이유식을 준비하는 주부층이 고가임에도 이 제품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은, 기능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철학’에 반응한다는 방증이다.

이 포장은 밥맛보다 가치와 철학을 판다.

환경을 아끼고, 디자인을 소비하며, 지역 생산자를 응원하는 — 새로운 밥 소비의 언어를 제시한 것이다.

카톤 팩 쌀

세계 각국의 쌀 협회에서 배울 점

여기서 또 한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다른 나라의 ‘쌀 협회’는 무엇을 잘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쌀”을 단순한 농산품이나 가공식품이 아닌 ‘문화 상품’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미국(USA Rice) : USDA 수출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 30개국 이상에 레시피·교육 콘텐츠를 제공, ‘GMO-Free·건강·지속가능성’ 메시지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일본(JFOODO/MAFF) : ‘일식과 함께하는 일본쌀’ 해외 캠페인을 지속하며, 농림수산성이 수출 목표·예산을 명문화해 정책과 홍보를 연계한다.

이탈리아(Ente Nazionale Risi) : 정부 산하 기관이 품종·품질·유통 통계를 관리하며, ‘리소 이탈리아노’ 브랜드로 유럽 내 신뢰도를 높인다.

스페인(DOP Valencia·Calasparra) : 원산지보호제(DOP)를 내세워 파에야 전용쌀의 조리적합성과 테루아를 홍보, 지역 관광과 연계한 마케팅을 펼친다.

태국(TREA·Thai Hom Mali GI) : 수출업협회가 가격·물량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부 GI 인증으로 자스민쌀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고착시켰다.

공통점은 “국가 스토리 + 조리 문화 + 품질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며 소비자 언어로 번역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농산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요리와 경험을 함께 수출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한국 역시 “밥맛과 스토리, 데이터와 신뢰”를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이 필요하다.

밥의 철학으로 나아가야 할 때

푸드위크 2025는 이 변화를 분명히 보여줬다.

쌀은 더 이상 흰 곡물이 아니라, 한 나라의 식문화 수준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이제 한국도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로 밥을 팔아야 할 때다.

밥은 기술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짓고, 산업이 아닌 문화로 완성될 때 소비자는 그 밥을 선택하게 된다.


박성환 밥소믈리에

왜 밥을 먹어야하나?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밥의 속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