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현수의 프랑스 와인 여행] (13) 샴페인 앙드레 보포(André Beaufort)로 떠나는 시간 여행
와인을 배우던 시절 앙드레 보포(André Beaufort)의 1990년대 올드 빈티지 샴페인을 테이스팅을 하면서 느꼈던 전율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입안 가득 퍼지는 에스프레소, 헤이즐넛, 브리오슈 등 수많은 풍미들이 와인의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뜻한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기에 샴페인 앙드레 보포(André Beaufort)를 방문했다.
샴페인 앙드레 보포(André Beaufort) 설명
초창기 앙드레 보포는 다른 샴페인 하우스들과 마찬가지로 제초제와 살충제를 사용해서 포도를 재배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날씨가 안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화학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흔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1969년 화학 제품 사용으로 인해 포도밭의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자신 또한 알레르기 증세를 겪으며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된다.
"더 이상 자연에 반하는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지 않겠다."
-앙드레 보포(André Beaufort)-
결국 1971년 앙드레 보포는 비오디나믹 농법으로 전환했다. 유황과 구리 성분의 비료 사용을 중단하고 직접 개발한 천연 퇴비와 식물 추출물을 사용해 랭스의 그랑크뤼 앙보네(Ambonnay)와 오브(Aube) 지방의 폴리지(Polisy)에서 자연에 가까운 샴페인을 만들고 있다.
랭스의 화려한 샴페인 하우스들과 달리 폴리지(Polisy) 마을은 한적하고 소박한 시골이었다. 길에는 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아 한참을 헤매던 끝에 이웃집에 살던 어르신의 안내로 앙드레 보포(André Beaufort)를 찾을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골든 리트리버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그 순간 이곳은 단순한 와이너리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와인이 숙성 중인 꺄브(Cave)로 향했다. 빛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무려 5세기 전 이탈리아 출신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수많은 예술품을 보관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다행히 1차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받지 않아 오늘날까지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앙드레 보포가 위치한 오브(Aube) 지방의 폴리지(Polisy)는 발레(Valée)라 불리는 완만한 계곡 지형을 이루고 있다. 앙보네(Ambonnay)보다 남쪽에 있어 꽃이 피는 시기가 더 짧고 포도의 생장 리듬 또한 다르다. 덕분에 이곳의 와인들은 부르고뉴와 많이 닮았다고 한다.
"샴페인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뱅 끌레르(Vin Clair)즉 샴페인 이전에 와인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합니다.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면 샴페인은 자연스럽게 완성되죠."
그의 말처럼 뱅 끌레르(Vin Clair) 와인들은 부르고뉴와 보르도 오크통에서 천천히 숙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앙드레 보포는 2023년 빈티지를 테이스팅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60년 넘는 인생 중 2023년처럼 수확량도 많고 퀄리티가 좋았던 해는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은 정 반대였죠 수확량이 너무 적어서 방당쥬(Vendange) 할 때는 사람을 따로 부르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이날 2023년 빈티지의 뱅 끌레르(Vin Clair)를 테이스팅 했다. 특히 오브(Aube) 지역 폴리지(Polisy)의 피노 누아는 네 개의 파셀(Parcel)에서 수확되는데 그중 발레 드 라센(Vallée de la Seine)에 위치한 포도밭은 고도가 높아서 앙보네(Ambonnay)와 닮았다고 한다. 테이스팅을 해보니 와인이 훨씬 더 직선적이고 과실미가 풍성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보르도와 부르고뉴 오크통을 다르게 사용하는 이유를 묻자 흥미로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두 오크통은 프랑스 트롱세 숲 (Forêt de Tronçais)에서 자란 같은 나무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보르도 오크통은 더 강하게 토스팅 되어 훈연(fumé)한 풍미와 와인에 직선적이고 묵직한 인상을 준다. 반대로 부르고뉴 오크통은 보다 섬세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부르고뉴 오크통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앙드레 보포가 추구하는 철학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포도밭에서 일어나는 일은 예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와인을 양조할 때는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죠. 때로는 의도한 방향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도 합니다. 저는 바로 그 예측할 수 없음에서 흥미를 느낍니다. 그 순간, 와인이 살아있다고 느껴지죠. 그래서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여는 듯한 기쁨을 느낍니다.”
뱅 끌레르(Vin Clair) 테이스팅이 끝나고 갑자기 공사 중인 2층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계단을 오르자 안개 사이로 센 강(Seine)이 흐르고 있었는데 고요하고 신비로웠다. 이곳은 이미 두 번의 결혼식이 열렸는데 공사가 끝난 후 연회장으로 꾸며 많은 사람들과 추억을 나누고 싶다고 한다.
이후 우리는 샴페인을 테이스팅 하러 테이스팅 룸으로 향했다.
-Champagne André Beaufort 'Polisy' NV
피노누아와 샤르도네가 블렌딩된 샴페인으로 향에서는 신선한 그릭 요거트, 레몬, 갓 구운 바게트의 고소한 풍미가 느껴지며 입안에서는 섬세한 기포가 매력적이었다.
-Champagne André Beaufort Ambonnay Rosé NV
피노 누아를 마세라시옹(macération)하여 만든 로제 샴페인이다. 향에서는 야생 장미와 세이지, 타임, 딜의 허브 풍미와 신선한 산딸기, 라즈베리의 과실향이 풍성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넓은 버건디 잔에 살짝 온도를 높여 야생 가급류 요리와 함께 페어링하면 좋을 것 같다.
-Champagne André Beaufort 'Polisy' Millésime 2004
폴리지 지역의 키메르지안(Kimméridgien) 토양에서 자란 피노누아와 샤르도가 블랜딩된 샴페인이다.
흥미로운 점은 샴페인의 색이 다소 탁했는데 종종 드물게 데고르주망(dégorgement) 과정에서 0.5초 정도 늦게 병이 터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때 효모의 일부가 병 속에 남게 되는데 이런 병은 판매하지 않고 이렇게 특별한 날 지인들과 테이스팅한다고 한다.
테이스팅을 마친 뒤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약과를 선물로 드렸다. 그는 감동받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딸과 함께 같이 먹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잠시 후 우리들의 생일을 묻더니 조용히 꺄브에서 1998년 빈티지 샴페인을 즉석에서 데고르주망(dégorgement) 해 주었다.
-Champagne André Beaufort Polisy Demi-Sec 1998
향에서는 꿀과 카라멜 그리고 갓 내린 에스프레소, 브리오슈의 진한 풍미가 피어올랐다. 입안에서는 은은한 당도와 산미가 조화를 이루며 와인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앙드레 보포 샴페인을 테이스팅 했을 때의 그 감동과 여운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오랜 시간 앙드레 보포의 샴페인을 테이스팅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들에게 샴페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임을 느꼈다. 다가오는 연말 앙드레 보포 샴페인과 함께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마현수 소믈리에
국제 와인 전문가 인증과정 WSET Level 3 취득
Court of Master Sommelier, Certified Sommelier 취득
현) 스와니예 헤드 소믈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