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선의 샴페인 여행] <4> 윈스턴 처칠이 사랑한 샴페인, 폴 로저(상)

승인2018.01.22 14:39:15
▲ 윈스턴 처칠은 폴 로저 샴페인의 굉장한 애호가였다. <사진= 김지선>

샴페인은 와인 중에서도 유명인사와 관련한 이야기가 특히 많은 와인이다. 매일 아침 파이퍼 하이직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마릴린 먼로부터 영화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마신 볼랭저, 미국 셀럽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르망 드 브리냑까지 유명인과 함께 언급된 샴페인은 다양하다. 폴 로저도 여기서 빠지면 섭섭할 만큼 중요한 인물과의 이야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그가 매일같이 마신 와인이 바로 폴 로저의 샴페인이다.

▲ 작지만 단정하게 꾸며진 정원, 경쾌한 분위기의 주황색 벽과 그 앞의 에메랄드색, 검은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세련미를 뿜어내며 나를 맞이했다. <사진= 김지선>

폴 로저 하우스는 샴페인의 도심인 에페르네의 심장부에 있다. 이 핵심지에 폴 로저가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이나 있다. 방문 계획을 짜며 둘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으나,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직접 하우스 측에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구글 지도에 올라온 사진을 보며 한 곳이 본사일 거라 추측하고 무작정 가버렸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불확실성은 때때로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주지만, 아쉽게도 이날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폴 로저 본사일 거라 믿고 간 곳에는 곧 해외로 나가려는 듯 튼튼하게 포장된 샴페인 상자들만 잔뜩 쌓여 있었다. 잠시 그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그곳에서 일하시던 분을 만났더니, 이곳은 하역장이고 하우스는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걸어서 5분이 채 안 되어 진짜 하우스에 도착했다. 하역장이 폴 로저와 가까이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 폴 로저 하우스의 응접실 <사진= 김지선>

작지만 단정하게 꾸며진 정원, 경쾌한 분위기의 주황색 벽과 그 앞의 에메랄드색, 검은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세련미를 뿜어내며 나를 맞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폴 로저의 색채가 물씬 풍겼다. 홀의 왼편에 있는 응접실은 19세기에 쓰였을 법한 가구로 장식되어 있었고, 응접실 오른편의 벽면에는 구리로 만들어진 윈스턴 처칠 동상이 서 있었다. 하우스에 발을 들인 순간 이곳의 당당하면서도 기품있는 분위기에 이끌려 '과연 젠틀맨과 어울리는 샴페인 하우스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옛날 처칠이 마신 샴페인 하우스를 둘러볼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젊은 청년이 만든 샴페인, 그리고 윈스턴 처칠과의 우정

훤칠한 키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온 매튜 블랑(Matthieu Blanc)씨가 나를 반겼다. 매튜씨는 폴 로저에서 무려 8년간 근무했으며, 현재 마케팅 부서를 담당하고 있다. 그와 함께 본관에서 빠져나와 와인 양조장으로 이동하여 폴 로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폴 로저 하우스는 1849년, 우리나라로 치면 이제 갓 대학생이 될 무렵의 젊은 청년 폴 로저가 지은 와이너리다. 당시 최초로 지어진 하우스는 아이(Aÿ)에 있었는데, 2년이 지난 1851년에 현재의 하우스가 있는 이곳, 에페르네로 하우스를 옮겼다. 이후 폴 로저는 30년 만에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명성을 지닌 샴페인 하우스로 성장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이 하우스에도 언제나 햇빛만이 들지는 않았다. 1900년에 일련의 자연재해로 하우스가 무너져 무려 500개의 오크통과 150만 병이 유실되었다. 당시 운영을 책임지던 폴 로저의 두 아들은 힘을 합쳐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해냈다. 그리하여 다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쯤에는 샹젤리제 거리의 최고 레스토랑에 폴 로저가 판매될 정도로 명성을 이어갔다.

▲ 1975년부터 윈스턴 처칠의 이름을 따 '퀴베 서 윈스턴 처칠(Cuvée Sir Winston Churchill)' 샴페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진= 김지선>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는 판매는 어려워졌으나, 1900년도 초부터 이어진 윈스턴 처칠과의 관계는 지속됐다. 처칠은 1908년부터 폴 로저 샴페인을 마시기 시작했고, 1944년에는 오데트 폴 로저(Odette Pol Roger)를 만나 우정을 쌓았다. 처칠은 굉장한 폴 로저 애호가여서 그가 타고 다니던 말의 이름까지 폴 로저라고 지을 정도였다. 그와 폴 로저 하우스의 우정은 처칠의 사망 이후에도 이어졌는데, 폴 로저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영국으로 수출되는 넌빈티지 샴페인의 라벨에 검은색 테두리를 넣었다. 또 1975년부터는 그의 이름을 따 매그넘 사이즈의 '퀴베 서 윈스턴 처칠(Cuvée Sir Winston Churchill)' 샴페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10년을 숙성하여 이 샴페인을 내놓은 해는 1984년이다. 현재 이 와인은 폴 로저의 최상급 샴페인이고, 블렌딩 비율은 대대로 폴 로저 구성원의 일부에게만 전해지고 있다. 매튜씨에게 윈스턴 처칠의 블렌딩 비율을 아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저으며 폴로저 내에서도 오직 셀러 마스터만 아는 비밀이라고 대답했다. 비밀이라니 더 알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인가. 집에 돌아와 여러 책을 뒤적이다 힌트 하나를 찾았다. 내게 도움을 준 책은 피터 리엠의 Champagne이었는데, 그에 따르면 윈스턴 처칠 샴페인에는 피노 누아가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처칠과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와 비밀스러운 마케팅으로 폴 로저는 '처칠의 샴페인'이라는 분명한 이미지를 획득했다.

에페르네에서 자라는 포도로만 만드는 샴페인

▲ 폴 로저는 에페르네에서 생산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든다. <사진= 김지선>

샴페인 생산자 중 직접 재배한 포도로 샴페인을 생산하는 사람은 레콜탕-마니퓔랑(Récoltant-Manipulant), 줄여서 'RM'이라고 불린다. 반면 포도 재배자들로부터 포도를 사서 샴페인을 만드는 생산자는 네고시앙-마니퓔랑(Négociant manipulant), 즉 'NM'으로 불린다. RM과 NM 중 어느 한 편의 샴페인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RM은 포도밭까지 정성스레 돌보기 때문에 테루아를 살리는 쪽을 선호하고, NM은 여러 포도 생산자로부터 포도를 구매하기 때문에 하우스의 일관된 개성을 유지하는 쪽을 선호한다. 규모가 큰 샴페인 생산자 대부분이 NM에 속하며, 폴 로저 역시 NM으로 분류된다. 현재 폴 로저는 92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이 포도밭에서 나오는 포도는 전체 샴페인 생산에 사용되는 포도의 55%를 차지하고, 나머지 45%는 에페르네에 있는 포도밭에서 포도를 사 온다. 매튜씨는 폴 로저가 소유한 포도밭과 포도를 구매하는 포도밭이 모두 에페르네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빠르게 양조장으로 옮김으로써 포도의 신선도를 최상으로 유지할 때 폴 로저만의 스타일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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